과거사 청산 등 각종 위원회의 난립으로 국가예산을 엄청나게 낭비하는데 이골이 난 노무현 정권의 위원회 중에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게 소위 신문발전위원회가 아닌가 한다. 워낙 편가르기를 좋아하는 노무현씨의 언론관은 2002년 대선후보 경선과정 때 “집권하면 메이저 신문들을 국유화하겠다”는 언필칭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로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태연자약하게 한 것으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한겨레 등을 포함한 군소 신문들, 그리고 인터넷 매체들은 KBS, MBC 등의 방송과 함께 노무현 씨 편이었기에 “손볼 대상”으로 꼽히는 게 조선, 동아, 중앙일보다. 신문발전위원회(이하 신발위)의 모법인 ‘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 등에 관한 법률’(신문법) 자체가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에 대한 소청이 계류중인 데도 문화관광부가 서둘러 그 위원회를 설치한 이유는 노 대통령의 뜻에 따라 보수신문들을 위축시키고 친노 신문들에게 혜택을 베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신발위가 얼마 전 각 신문사에 공문을 보내 각 신문의 발행부수와 유가부수, 구독료 수입과 광고 수입, 자본 내역과 지분 내역 등의 경영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그에 대한 논설에서 이같이 결론 맺었다. “더 황당한 것은 신문발전위가 경영자료의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신문사를 상대로 검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모든 신문사를 호령하는 ‘홍위병’이 등장할 판이다. 신문발전위는 이런 일을 벌이면서 올해에만 혈세 250억원을 쓴다.”
그 같은 논설을 쓴 논설위원은 신발위의 위원장인 장행훈 씨가 자기보다 까마득한 동아일보의 선배였다는 사실에 대해 아이러니를 느끼면서 그리 했을 것이다. 사실 장행훈 씨는 나도 잘 안다. 1959년 동아일보에서 견습기자 제1기생을 공채 했을 때 뽑힌 열두 명 가운데 우리 둘이 포함되어 있었고 1964년 필자가 미국에 올 무렵까지 둘 다 외신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장 씨가 당시 동아일보 주필이었던 고재욱 씨의 주례로 결혼을 했을 때 사회를 내가 맡았던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다.
견습기자 시험에서 1등을 한 장행훈 씨는 동아일보로부터 노른자위를 다 섭렵하는 행운아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장 씨는 대단한 향학열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불어와 중국어를 자습하여 회화까지 유창해질 정도라서 당시 나는 대학 재학중이라는 핑계도 있었지만 공부하는 면에서 그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기억이다. 내가 떠날 무렵 정치부로 간 장 씨는 1970년대 말부터는 주불 특파원, 그리고 소련과 국교수립 이후에는 주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있었다. 주불 특파원 시절 그는 그 어렵다는 불란서 국가 박사학위를 받았으니까 결국은 동아일보 돈으로 박사가 된 사람이다. 그리고 신문사의 꽃이랄 수 있는 편집국장도 역임했던 장 씨는 이사 자리까지 올랐다가 퇴직했으니까 동아일보에서 단물을 많이 마신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내가 아는 장 씨는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부터 군사혁명 초기에 이르기까지 신문의 자유의 중요성을 늘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언론의 자유는 정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에서.
그런 장 씨가 헌법재판소의 신문법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 변론에서 “언론의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자본가, 광고주, 언론사주 등이기 때문에 국가는 이들로부터 언론자유를 확보하도록 해야한다”고 주장했다니 나로서는 대경실색할 노릇이었다. 물론 밖에 있을 때와 안에 들어가서의 관점이 달라지는 것은 흔히 보는 현상이다. 폭스 뉴스의 평론가였을 때는 부시 정책을 얼간이 정책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던 토니 스노우가 백악관 대변인이 되면서 말이 달라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렇지만 장 씨가 “신문사는 다른 자유의 기초가 되는 표현의 자유를 실현하는 곳인데 이를 사기업으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했다니 그에게는 “메이저 신문을 국유화하겠다”는 노 씨의 언론관이 꼭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장 형, 1기생 중 남시욱, 박경석 씨와 함께 나에게 저녁을 사주던 2003년 말에도 그런 낌새를 못 챘는데 언제 그리 변했소?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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