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토맥칼럼
▶ 장세규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대한민국은 더 이상 못 먹고 못 살던 가난한 나라, 가난한 국민이 아닙니다. 초고속 성장을 통해 세계 11대 무역국에 도달한 것처럼 이제 생존을 위해 뛰었던 의식구조가 부국의 국민다운 의식구조로 바뀌는 것도 늦은 감이 있지만 초고속 성장을 해야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국민의 인식 변화에는 기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습니다.
이전에 국민 과반수가 1차 산업에 종사하고 나머지 대부분이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부의 축적을 보장했습니다. 1차 산업이 지배하던 시대에 대표적인 기업 형태는 대규모 지주이거나 방앗간, 양조장, 염전과 같이 1차 산업과 관련된 기업이었습니다. 이런 기업은 한번 자리 잡으면 경쟁자도 없고 원자재와 판로가 항상 보장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자연히 기업주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거의 불로소득이라고 부를 만한 소득이 엄청나게 쌓입니다. 이런 기업주를 향해 비난과 공격이 늘어납니다. 부의 사회환원이 중요해집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 초기에도 벌어집니다. 특혜를 입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한 기업과 기업가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철도, 철강, 석유, 대규모 농축산 등을 중심으로 록펠러와 카네기 같은 거물들이 활동하면서 급격하게 산업화가 진행되던 19세기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거대 기업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더 이상 30년 전의 기업관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기업이 무서운 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한번 사업을 차려놓으면 별로 크게 고생하지 않아도 이익이 보장되는 상황이 아닙니다. 선점한 기업이건, 통폐합한 기업이건 간에 항상 새로운 경쟁을 예상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자유로운 통상과 사업 환경 속에서 극심한 경쟁에 처한 기업에게 있어서 생존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었습니다. 간신히 한 주 한 주 연명하는 중소기업이나 수만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는 대기업이나 처한 상황은 비슷합니다.
새로운 경제 환경에서 기업에 대한 사회의 기대는 달라집니다. 기업이 돈을 벌어서 사회에 환원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생존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기업이 공장을 외국으로 옮기지 않고 머물러 있으면 감사한 것입니다. 기업이 고용을 줄이지 않고 인구증가 만큼이라도 고용을 증가시키기만 해도 사회적으로 엄청난 기여를 하는 것입니다. 월급날 월급 줄 돈이 떨어지지 않으면 됩니다. 기업이 돈을 무더기로 벌어서 사회를 위해서 펑펑 쓰기보다는 기업 자체가 성장하고 고용을 늘리는데 투자하는 것이 사회에는 더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한인 교포 사회도 이제 혐오업종으로 생존하던 초기이민 시대를 지나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리 잡힌 단계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민 한 세기라고 하지만 대량이민 시대가 열린 70년대를 기점으로 하면 이제야 30대가 된 2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리 잡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백 개의 단체와 조직이 생겼습니다. 먹고 살던 시대와는 달리 성숙한 교포사회로서 삶의 질과 의미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생존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시기가 지나고 나면 교포 사회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찾는 접근도 많이 달라집니다.
특히 생존을 위한 초기 정착기에 교포 사회의 종합적인 구심점 역할을 하던 교회의 역할에도 새로운 인식이 생겨야 합니다.
아주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20여 명의 작은 교회나 수만 명의 교인이 다니는 초대형 교회나 형편은 비슷합니다. 교회의 자원이 항상 부족합니다. 자체 유지를 위해서도 항상 부족합니다. 건강한 교회일수록 부족한 현상은 더합니다. 인력이 부족합니다. 재정이 부족합니다. 항상 교회가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합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교회의 기본 사명을 수행하는데도 자원이 항상 부족합니다.
이제 교회에 대한 기대도 성숙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는 자기 사명에 충실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영적인, 정신적인 도움과 격려를 받기 원하는 구성원들에게 그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돌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항상 소수의 예외는 있겠지만 절대 다수의 교회들은 돌봐야 할 교인들에게 빠짐없이 충분한 돌봄의 손길을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인적 자원과 재정적인 자원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교계에서 할 일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민 인구의 30-40%에 달하는 교인들과 그들의 가정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고통 받을 때 위로해주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의지할 곳이 되어 주고, 영적으로 방황할 때 희망을 주고,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할 때 갈 길을 보여주며 자녀 문제로 고민할 때 안내자가 되어 주고 어린 자녀들과 청소년 자녀들이 건강한 인격을 갖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회봉사 조직의 역할을 대신하면 교회의 역할을 대신해 줄 기관이 없습니다. 교회가 정치 신장을 위해서 뛰면 교회의 목양을 대신해 줄 정치 조직이 없습니다. 교회는 교회의 사명에 충실할 때 지역 사회에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장세규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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