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를 계기로 독일을 비롯한 유럽으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독일은 전국이 대회장이 되어 외국 선수들과 손님들을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학생 시절에 가 보았던 고색 창연한 뉴른베르크나 학생 도시 하이델베르크, 올림픽을 열었던 뮌헨 등지에도 관광객이 많이 모여 축제 분위기일 것이다. 나도 다시 유럽에 가고 싶어진다.
프랑스 유학 시기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한 여행 수단은 남의 차에 동반 승차를 하는 오또 스톱(auto-stop)이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학생이나 청소년들이 많이 쓰는 여행 방법이었다. 대개 큰 도로가 시작되는 도시 외곽의 고속 도로 입구에서 손을 들면 운전자들이 차를 세워 준다. 표지판이 있어서 어느 방향인가는 알 수 있지만 그래도 창문을 열고 대화를 한다. 어느 곳까지 간다고 서로 행선지를 밝히면, 그럼 어디까지 동행하자고 합의를 하고 승차를 한다.
차를 세워 주는 사람들은 혼자 출장을 가는 사람이 많지만 부부나 애인들도 있고, 여자 운전자들도 용감하게 세워 준다. 짧은 대화 동안에 벌써 서로의 인상과 어조를 통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와 직업과 교육 정도까지 파악을 한다. 그래서 멀리 가는 긴 여정도 몇 번만 갈아타고 여행을 할 수 있다. 운전자들도 혼자 졸지 않고 여행을 하고 대화도 하려면 건전한 학생들이 동반자로 안성맞춤이다. 여학생들은 둘이 같이 오또 스톱을 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다.
이런 방법으로 당시 한국 유학생들은 유럽 각국을 여행했고, 프랑스 국내와 여기 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차를 태워 주는 운전자들은 우선 여행하는 젊은이들을 돕고 대화도 좀 하려고 하는 선량한 시민들이어서, 가다가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할 때가 되면 의례 우리들을 초대하여 사 먹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국 사람을 만난 것이 기뻐서 서울 인구가 얼마나 되며 어떤 나라인지 물어보고, 아울러 중국이나 동양 전체에 대해서도 질문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지방의 주 생산품이며 지리와 생활, 관광해야 할 곳을 안내해 주고, 무엇보다 길을 잘 가르쳐 주었다. 밤이 되면 호텔도 소개해 주고 안전한 곳에 내려 주어 다음 행선지로 잘 갈 수 있음을 확인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 덕으로 나는 유럽 각국 지방과 시골까지 다니며, 내가 읽어야 하는 예술 비평에 나오는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들을 많이 구경하고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운전자들과의 문화 토론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민간 외교도 했고, 유럽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돈이 안 드는 이 여행 수단은 문화적 교류를 하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운전자들과 한국이나 그들 나라의 사회 정치 문제, 학생 생활, 역사, 장래의 희망 등 수없이 많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얘기가 잘 통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토론을 하다가 행선지에 도착하여 아쉬운 작별을 하는 적도 많았다.
프랑스를 비롯해 이태리, 스페인, 독일, 네델란드, 영국 등지도 모두 이렇게 여행을 했다. 뮌헨에서는 운전자의 안내로 예정에 없던 올림픽촌까지 구경하고 슈바빙에서 맥주까지 대접을 받았고, 여러 곳에서 싸고 친절한 호텔과 식당을 소개받았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유럽인들의 따뜻한 인정과 그들의 박식함과 어느 나라 사람과도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문화적 열망을 알 수 있었다. 우리의 기쁨은 그들이 먼 동양에서 유학 온 우리를 진정으로 환영하고 존중하고 손님으로 맞이해 주는 것 뿐 아니라,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온 우리들과의 대화를 통해 역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으며 기뻐하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70년대의 유학 생활은 돈 안 들이고 유럽인들의 환대를 받으며 문화를 배우는 것으로 일관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런 분위기가 변치 않았기를 바라면서 아무쪼록 이번 월드컵 행사도 그들의 환대 속에서 순조로이 즐겁게 끝나기를 바란다.
이연행
불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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