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대회를 맞아 한인사회의 화두는 온통 축구 이야기로 모아지고 있다. 언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이렇게 축구 매니아가 됐는지 모르나 한국을 뒤덮고 있는 월드컵 광풍은 축구시합에 모든 것을 건 사람처럼 보인다. 신문, 방송사는 서로 경쟁이나 하듯 대서특필과 매 시간대 전파로 월드컵 바람을 이끌고 있으며 기업체와 은행도 놓칠 새라 티셔츠 등 각종 판촉물로 홍보활동을 펼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월드컵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축구를 꼭 좋아하기보다는 월드컵 이야기를 안하면 소외감이 들 정도로 집단의식에 빠져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월드컵대회에서 4강에 드는 호 성적을 거뒀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3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에다가 특히 ‘붉은 악마’라는 특별난 응원부대와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인 길거리 응원 때문에 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현재 한국의 월드컵 열기는 지나칠 만큼 들떠 있는 상태이다. 시합에서 응원은 으레 있게 마련이며 조미료처럼 관전의 맛을 더해 준다. 조직적인 대규모 응원전은 상대팀의 응원도 곁들여야 재미가 증폭되고 파인 플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경기 장소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곳에서 우리만 모여 함성을 지르고 흔들어대는 것이 과연 응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응원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벤트 성 놀이마당으로 결국 우리끼리의 일방적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참가자들이 “대~한민국”을 외친다고 애국심이 절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목청껏 “필승 꼬레아”를 노래한다고 한인들이 하나로 단합되는 것도 아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길거리 응원이 무슨 큰 아이디어나 새로운 문화인 것처럼 치켜세우는데 선뜻 찬동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체제선전원으로 전락한 소위 미녀응원단과 대규모 군중들이 기계처럼 일사분란하게 보여주는 북한의 카드섹션에서 친근미보다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응원은 응원다워야 한다. 정도와 룰을 벗어난 응원은 이미 응원이 아니며 한갓 선전도구로 이용될 뿐이다.
응원도 경기의 한 부분이므로 응원 역시 시합과 마찬가지로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행해져야 한다. 응원은 자기 팀의 시합장소인 경기장 안에서 벌이는 것이 원칙이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것이 어려울 때에는 상대팀이나 제3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운동경기란 원래 이기고 지는 시합이다. 전쟁에서 패하는 일도 병가지상사라고 하는데 하물며 일개 스포츠의 승패를 가지고 온 나라와 국민이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지 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단체응원 같은 군중심리에 빠지면 개개인의 사고는 전체에 묻혀 오도된 선동에 쉽게 동조하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 휩쓸려 놀기 좋아하고 분별력이 약한 10대, 20대의 한국 젊은이들이 혹시 부적절한 응원 때문에 다원사회인 미국의 여타 사람들로부터 부정적 이미지로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한인사회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우리의 자녀들에게 운동을 좋아하고 재미있게 보도록 해서 건전한 스포츠 정신을 심어주도록 하자.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면 좋고 설사 진다해도 실망치 말고 더욱 열심히 기량을 쌓아 다음에 얼마든지 도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응원을 위해 할 일도 놔둔 채 꼭 따로 모일 필요가 있을까? 집에서나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한국팀의 선전을 응원할 수가 있을 것이다. 굳이 함께 모일 당위성이 있으면 실내나 허가 받은 특정 장소에서 하면 될 것이다. 차량시위를 한다든가,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행태는 다민족사회에서 한인동포를 고립시키게 만들 것이다.
이번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을 위한 진정한 응원은 물리적 응원이 아니라 시합기간에 동포 각자가 발휘해야 할 시민의식인 것이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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