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파도 못간다고 마음접고 있었는데
SF축구협회 조행훈 회장-문대우 선수
현대차USA 그랑프리 행운권 당첨돼 꿈같은 독일행
’까짓것, 가게는 누구한테 좀 맡기지 뭐.’ 샌프란시스코한인축구협회 조행훈 회장은 정초부터 그렇게 별렀다. 독일월드컵 원정응원 패키지를 상품으로 내건 LA 어느 여행사에 알아보기도 했다. 아니 그런데 돈은 3,000불이나 되는데 토고전밖에 개런티가 안된다잖아. 그 돈 내고 거기까지 가 그것만 보랴 싶어 꾸역꾸역 마음을 접었다. 대신, 소속 축구동아리 SF상록수 회원들과 소속 상항순복음교회에서 다함께 응원전에 참가할 셈이었다.
대학까지 선수로 뛰었고 지금도 끼니는 걸러도 축구는 거를 수 없는 문대우 선수는 조 회장의 후배이자 팀동료. 04년 전미한인선수권 장년부 MVP에 빛나는 철벽수비수로 05년 필라체전 때 오른무릎을 다쳐 아직껏 보호대로 칭칭 휘감은 채 그라운드를 누비는 그는 그러나, 비단 직장일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월드컵도 직접 못본 처지에 독일월드컵 원정응원은 생각조차 못했다. 다만, ‘언젠가 한번만이라도’ 하는 기약없는 꿈만 꾸었을 뿐.
그런 중년의 두 축구사나이가 듀엣으로 심봤다. 무료 월드컵 기행! 남들 알면 배아플 그 사연은 이렇다. 지난 2월11일 오클랜드 콜리시엄에서 열린 본보 주관 한국-코스타리카 평가전 때 응당(?) 그곳을 찾은 둘은 붉은 티셔츠 한 장만 구해달라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다. 그 시간에 그걸 어디서 구하나 두리번거리던 그들 눈에 띈 건 현대자동차 미주법인 부스. 줄서기는 후배몫. 마침내 차례가 돼 티셔츠를 받아들기 전에 문 선수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었다. 행운권 추첨용 서류작성. 그랑프리 당첨자(동반자 포함 2명)에게 독일관광+월드컵관전 어쩌고 했지만 문 선수는 그저 티셔츠 받을 생각에 직원 요구대로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조 회장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리고 둘 다 까맣게 잊었다.
한달 전인가, 당첨됐다고 연락이 왔는데 못믿겠더니, 그 다음에 몇번 더 전화가 오고 (신상명세 등) 이것저것 체크하고, 얼마전에 스케줄을 받고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4,000명 가까이 냈는데 한장만 뽑았대요.
5일 저녁 팀훈련장에서 만난 둘의 얼굴에는 그 말만 나오면 구슬땀 속에서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20일 샌프란시스코 출발, 21일 영국 런던 경유 독일 함부르그 입성, 22일 베를린 등 관광, 23일 한국-스위스전 관전, 24일 SF귀환으로 이어지는 난생처음 월드컵나들이동안 이들은 본보에 현장분위기 등을 전하는 객원특파원 역할을 겸한다. <정태수 기자>
삼촌초청 받아놓고 가는날만 꼽았는데
본보기고 고교생축구평론가 한재욱 군
주정부견학 등 ‘보이스스테이트’ 선발돼 고심끝 단념
월넛크릭에 있는 명문 노스게이트하이 11학년 한재욱(영어이름 유진) 군은 못말리는 축구광이다. 어머니(이정옥) 말마따나 그는 홍명보를 끼고 살았다. 지금은 잉글랜드의 지칠 줄 모르는 산소폭탄 제라드 선수에 홀딱 반했다. 응원만이 아니다. 학교팀 공격수로 뛰(었)고 본보에 평론을 기고하는 등 이론까지 겸비한 전방위매니아다.
축구공과 축구서적, 스타선수 사진이나 자료는 물론 한국대표팀 붉은 유니폼이며 박지성이 뛰는 세계적 명문클럽 맨체스터U 유니폼이며 축구관련 온갖것을 한무더기 품고 사는 재욱이가, 평소 축구와 담쌓고 살았더라도 축구바이러스에 감염되기 딱 좋은 월드컵의 해가 닥쳤는데도 축구를 꾹 참았다.
(독일이웃) 오스트리아에 외삼촌(유엔산하 국제원자력기구 근무)이 사시는데요, SAT 잘 보면 그리 가서 외삼촌 하고 사촌동생 하고 독일로 월드컵 보러 가기로 했거든요. 축구에 빠진 아들을 건져내려다 어느새 이운재(골키퍼)가 2002년만 못한 것 같아, 요즘. 살이 쪄서 그런지 순발력이 떨어졌어 등 웬만큼 축구시력이 좋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꿸 정도로 되레 아들을 닮아가는 아빠(한창수, 한양공대 교수, 현재 UC버클리 교환교수)도 동행하기로 했다.
원정응원 큰기쁨을 위해 자잘한 축구재미를 참아낸 재욱이는 시험을 잘 쳤다. 외삼촌으로부터 ‘응원준비 이상무’ 귀띔까지 받았다. 그런데 웬걸, 떠날 날을 손꼽아 헤아리던 지난달 재욱이를 즐거운 시험에 빠뜨리는 통지서가 날아들었다. 캘리포니아 전역 고교에서 한명씩 900여명이 1주일동안 합숙하며 주정부 주의회 요모조모를 배우는 등 리더십 체험교육인 ‘제69차 연례 아메리칸 리전 캘리포니아 골든 보이스 스테이트(The American Legion California Golden Boys’ State)에 선발됐다는 것이었다. 날짜는 하필 6월17일부터 24일까지.
물론 월드컵이 더 보고싶지요…랩탑컴퓨터 가져가서 그거 보면서 응원할래요. 고민고민 거듭하다 대학진학 쓰임새로 보나 그 이후 삶에 끼칠 영양가로 보나 일생에 한번뿐인 보이스 스테이트를 거르지 말라는 카운슬러의 조언에 따르기로 한 재욱이는 지난해 한국전래동화 9편을 손수 번역해 책을 엮고 입양아가족과 도서관 등에 무료로 나눠져 화제를 모은 치과의사 지망생이다. <정태수 기자>
<미니화제>
토고식 주술공격에 한국식 주술반격?!
본보 편집국에 5일 오전 이색전화가 걸려왔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미스터 박’이라는 분으로부터였다. 열렬축구팬인 듯한 그의 제안은 훨씬 더 이색적이었다. 토고에서 한국선수들이 맥을 못쓰게 주술을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그런데, 우리 한국에 주술하는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닌데 우리도 뭔가 해야 돼요. 순전히 미신으로만 여기지 말고 우리도 하면 효험이 있을 수 있어요. 나는 무당은 아니지만 그 비법을 알고 있어요. 비법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닫았지만, 십중팔구 해괴하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하지만, 한국축구 승리를 기원하는 애틋한 그의 마음만은 절절이 짚혀졌다.
<기획연재>
인류의 대제전 월드컵 76년사⑦
◆제12회 스페인월드컵(1982년)
벼르고 별렀건만 한국은 또 물먹었다. 그 사연이 기막혔다. 스페인행 티켓이 걸린 아시아예선 쿠웨이트전에서 심판이 이태엽의 완벽한 헤딩골을 무효로 선언하고 항의하는 이태호를 퇴장시키는 등 농간을 부렸다. 심판은 이태엽이 상대 골키퍼를 밀었다고 했지만 녹화테이프는 이태엽과 골키퍼가 5미터가량 떨어져 있어 밀기는커녕 접촉자체가 불가능했음을 보여줬다. 한국의 김이 샌 것은 불문가지, 0대2로 졌다. 당시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날리던 차범근은 본선용으로 아껴두고 있었다.
한국선수들이 오일달러의 더러운 위력을 탓하며 그라운드 대신 다시 TV앞에 눈을 모은 이 대회에서는 비뚤어진 길을 걷다 정신을 차린 파올로 로시(이탈리아)가 화려하게 부활한 반면, 더 화려한 등극을 예고했던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는 성질을 못참아 스타일을 구겼다. 승부조작 스캔들 출장정지에서 해금된 로시는 소크라테스 지코 카레카 등 기라성같은 스타군단 브라질과의 준준결승전에서 해트트릭, 동유럽축구의 전설 보니에크가 지휘하는 폴란드와의 준결승에서 2골, 루메니게와 푈러 등이 포진한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도 선제골을 넣는 등 중대고비마다 비수를 꽂으며 이탈리아에 3번째 우승컵을 안기고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79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마라도나는 세인의 주목을 받았으나 남미라이벌 브라질 선수들의 교묘한 반칙에 이성을 잃고 발길을 했다가 퇴장당하는 등 예고된 이름값을 4년 뒤로 미뤄야 했다.
◆제13회 멕시코월드컵(1986년)
본선진출을 목마르게 외쳤던 한국이 마침내 32년만에 심봤다. 4년 전 로시처럼 성질을 죽이고 마인드컨트롤에 성공한 마라도나도 심봤다. 그 덕분에 아르헨티나도 78년에 이어 8년만에 또 심봤다.
한국의 첫 상대는 하필 아르헨티나. 비록 1대3으로 졌지만 박창선의 25미터 중거리포로 본선사상 첫골을 수확한 기쁨도 컸다. 동유럽강호 불가리아와의 둘째판에서는 조광래의 어시스트에 이은 김종부의 마무리포로 1대1 무승부를 기록, 본선사상 최초 승점을 챙겼다.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와의 최종전에서는 최순호와 허정무의 득점으로 승리같은 패배(2대3)를 안고 귀국했다.
태극전사들의 태권사커(당시 세계언론은 허정무의 거친 태클을 태권도킥이라고 비꼬았다) 속에서도 3골을 직간접 어시스트하는 등 천재성을 보인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준준결승에서 신의손 논란을 일으킨 헤딩골에 이어 월드컵역사상 가장 현란한 60여미터 단독드리블로 쐐기골을 박아 신의 경지에 이른 축구예술을 보여줬다. 잉글랜드 선수 6명은 무엇에 홀린 듯 아르헨진영 센터서클 부근에서 자기문전까지 차례차례 그를 따르기만 했을 뿐. 마라도나는 또 벨기에와의 준결승에서도 곡예를 방불케하는 드리블과 득점감각으로 2골을 넣었고, 베켄바워 감독이 이끄는 서독과의 결승전에서는 2대2 균형을 깨는 송곳 어시스트로 축구제왕 등극과 함께 팀우승을 견인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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