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초 독일은 세계 과학계와 사상계를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초 강대국이었다. 노벨상이 제정된 1901년에서 1932년까지 수여된 100개의 노벨상 중 33개는 독일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반면 같은 기간 영국은 18개, 미국은 6개를 수상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1933년에서 1960년 사이독일 과학자들이 수상한 노벨상은 8개에 그쳤다. 독일 과학계는 왜 이처럼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나? 답은 히틀러의 단일 민족주의와 순혈주의, 그리고 이것이 수반한 반유태주의 정책이다.
1932년에 집권한 히틀러는 19세기부터 일기 시작한 인종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그는 ‘순수’한 아리안 혈통을 기타 ‘잡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백년 전부터 독일에 정착해온 유태인들을 색출해 내기 시작하였고 급기야는 1,500명에 달하는 유태계 과학자들을 해외로 추방하였다. 이중에는 앨버트 아인슈타인, 에드워드 텔러(수소폭탄의 아버지), 엔리코 페르미(최초로 핵분열에 성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에 정착하여 미국과 영국을 세계 최강의 과학대국으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이들 독일 과학자가 아니었다면 미국과 영국은 그처럼 빨리 과학대국으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또 카알 포퍼,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사상가들도 나치를 피하여 영국과 미국 등지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활발한 강의와 저술활동으로 영국과 미국의 과학철학과 사회사상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열린사회와 그 적들’(포퍼), ‘전체주의에 대하여’(아렌트)등의 저술을 통하여 히틀러의 나치주의와 전체주의, 인종차별주의의 위험성을 폭로하고 그 이론적 기반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국 히틀러의 단일민족주의와 인종적 순혈주의는 타민족과 인종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독일 학계에도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가하였다.
한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강력한 단일민족주의를 배태시켰다.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배경이 유사한 일본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의 특수성과 순수성을 더욱 따지게 되었다. 정치적 독립을 상실한 상황에서 민족적 동일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만이 민족이 생존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큰 흐름을 타면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한국이 배타적인 인종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으로 이주해가고 또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주해서 정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일민족을 내세우고 타민족과 인종을 차별한다는 것은 히틀러의 경우와 같이 국가와 민족차원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 한국이 서서히 이러한 순수혈통주의 단일민족주의에서 탈피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고 있고 국내에서 결혼 상대를 찾을 수 없는 농촌 총각들이 외국 처녀들을 색시로 맞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와중에 북한이 단일민족주의를 들고 나왔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4월27일자 글에서 “남조선의 친미 사대 매국세력이 운운하는 ‘다민족, 다인종사회’론은 민족의 단일성을 부정하고 남조선을 이민족화, 잡탕화, 미국화하려는 용납 못할 민족말살론이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왜 이 시점에서 다민족주의를 비판하고 나서는 것일까?
우선 체제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밖에 없다. 그리고 외세와의 격리를 지상과제로 삼고 있는 주체사상을 뒷받침해 주는 이념도 단일민족주의 밖에는 없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이제 남북한을 엮어줄 수 있는 것은 이념도 체제도 아닌 오직 맹목적인 단일혈통주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와 다민족주의는 역설적으로 한민족이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이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로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문화와 민족적 동질성은 ‘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가치와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남북이 통일을 해야되는 당위는 그저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라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여야 한다. 바로 자유,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와 같은 인류 공통의 가치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서도 다문화주의와 다민족주의의 개방적인 이념은 필수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