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아브 그라이브 감옥에서 미국 헌병 간수들이 발가벗긴 이라크 죄수들을 고문하면서 희희낙락하던 사진들은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실패의 대명사처럼 쓰여졌었다. 이제 그 대명사가 하디타로 바뀌어질 지도 모른다. 작년 11월 19일 하디타에서 미기엘 테라자스 란 미 해병 중사가 노변에서 ‘즉석에서 만든 폭발물’(IED: Improvised Explosive Device)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처참한 죽음을 당한데 대한 동료군인들의 눈 뒤집힌 보복인지 24명의 민간인들을, 그것도 70세의 휠체어 사용 노인과 어린아이들을 포함해서 학살했다는 보도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내용이다. 열세 살 짜리 소년이 동생의 시체에서 나오는 피바다에서 죽은 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증언 앞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처음에는 반란군 진압 정도로 보고 처리되었다가 거의 넉 달이 지난 3월에 가서야 미 해병대가 조사에 임했다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 된다. 미군이 이라크 참전군인 15만 명에게 ‘전쟁행위에 있어서의 윤리관’ 교육을 서둘러 시키려 한다든지, 부시가 조사결과 사실임이 발견되면 해당 군인들이 처벌될 것이라고 언명한 것으로 보아 이라크의 새 수상이 범죄라고 규정한 이 사건을 미국 정부도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학살무기도, 또 사담 후세인과 알 카에다와의 관계도 발견되지 않아 이라크와 주변지역의 민주화, 또 인권신장이 새 명분으로 등장한 판에 하디타 학살 보도가 진실이라면 미국의 위선이 벌거벗겨지는 결정적 순간이 될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비극이다. 살인은 죄악이다 라는 선천적 양심이 개개인들에게 있지만 국가가 요구할 때에는 군대라는 이름으로, 그것도 적군이라면 많이 죽일수록 훈장 수가 많아지는 근본적인 모순은 인류역사의 오점이자 비극이다. 더군다나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이래 전방과 후방의 개념이 모호해진 총력전 상황 아래서 예전 전쟁들과는 달리 군인들만 사상자들이 되는 게 아니라 군사목표물이 아닌 도시들마저 폭격 대상이 되는 것 등으로 더 많은 숫자의 민간인들이 희생되어 왔었다.
나치 독일의 끔찍한 인종 말살 정책과 일본 군국주의의 잔인한 전쟁 수행방법 등은 특히 천인공노할 조직적 반인류적 범죄다. 민주자유 진영이었던 영미를 주축으로 하는 연합군들은 나치와 일제의 침입을 저지한다는 명분이 있었기에 소위 정의의 편에 있었던 것으로 역사가들은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 수행 과정에 있어서의 과잉대응으로 인한 민간인들의 피해는 연합국 쪽에 의해서도 벌어졌었다. 독일 드레스덴 지역의 불바다를 이룬 연합군의 폭격,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도 그런 예로 일부 역사가들이 손꼽는다. 그리고 군 전체의 정책은 아니지만 일부 일선 지휘관들이나 병사들이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사건들도 전쟁의 와중에 곧잘 일어난다. 예를 들면 월남전에서 베트콩과 양민들을 구별하기 어려웠기에 공비를 죽인다는 것이 양민들을 죽이게 된 경우라든지, 월남의 밀라이에서처럼 육군 중위의 지휘 아래 부락민 수백 명이 집단 학살되는 범죄행위도 있었다.
이라크에서의 부시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얼마 전 토니 블레어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자기의 이라크 정책에 있어서 반란군에게 “덤빌 테면 덤벼 보라”라고 했다든지, 사담의 실각 후의 시나리오를 제대로 구성하지 않고 전쟁에 임했다든지 하는 실수가 있었음을 부시는 자인했다. 그렇다고 이라크에서 급작스럽게 철군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난국에 봉착한 것이다. 금년 중간선거 후에는 이라크 전쟁의 핵심계획자랄 수 있는 체니 부통령의 사직 카드도 등장할 것이라는 설 마저 있지만 그렇다고 사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어려움이 있다.
유엔 본부 앞에 가보면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이사야 2; 4)라는 돌판의 글귀가 있다. 언제나 그런 세상이 오려는지….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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