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은 ‘현대 환경 보호 운동의 어머니’로 불린다. 1962년 그녀가 쓴 ‘조용한 봄’(Silent Spring)은 환경 오염으로 봄이 와도 새가 짖지 않는 세상을 그린 환경 보호 운동의 고전이다. 2년 뒤 카슨은 죽었지만 그 정신은 수많은 환경 보호 단체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여러 환경 문제 중 현재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지구 온난화 현상이다. 이 주창자들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공해 물질, 특히 이산화탄소의 배출로 지구 온도가 나날이 높아가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머지 않아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고 해변가의 주요 도시들은 물에 잠기게 되며 태풍과 폭우, 가뭄이 점점 더 심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 서 경종을 울리고 다니는 사람이 앨 고어 전 부통령이다. 2000년 대선에서 진 후 전세계를 누비며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재앙에 대해 경고해 온 그의 활약상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가 지난 주 LA와 뉴욕에서 공개됐다. ‘불편한 진리’(An Inconvenient Truth)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고어가 강사로 나온 슬라이드 쇼 형식으로 만든 이 작품은 “당신이 볼 가장 겁나는 영화”라는 선전 문구가 말해주듯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사태를 충격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2000년 대선 때 “딱딱하고 언행에 진실성이 없다”는 평을 받은 고어가 지난 6년간 수련을 통해 자신을 완전히 뜯어고친 듯 자신감에 넘친 웅변가로 나온다. 강연 내내 위트와 유머가 넘치며 자신에 대한 풍자도 가끔 곁들여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최근 타임지는 이 작품 개봉이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2008년 대선을 향한 고어의 포석일 수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고어는 이 영화에서 지구 온난화가 우리 모두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불편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여기 나오는 각종 도표와 함께 사라지는 빙하 사진, 얼음이 없어 한없이 헤엄치다 익사한 북극곰 이야기 등 수많은 자료들은 이 이슈에 무관심했던 일반인들로 하여금 온난화의 심각성을 숙고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이것이 ‘진리’냐 하는 점이다. 고어가 설득력 있는 지구 온난화 주창자의 한 사람이라면 그 반대편에는 마이클 크라이턴이 있다. 공전의 베스트셀러 ‘주라식 파크’의 저자인 그는 그냥 소설가가 아니다. 하버드 영문과와 인류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하버드 의대를 나온 그는 자연 과학 분야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공포의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그린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내노 테크놀로지의 위험성을 경고한 ‘프레이’ 등 첨단 기술과 스릴러를 결합한 작품을 써 ‘테크노 스릴러’의 창시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그의 최근작 중 ‘공포의 상태’(State of Fear)라는 게 있다. 극렬 환경 보호주의자들이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연 재해를 조작하고 테러를 일삼는 와중에 전직 MIT 교수를 중심으로 한 정의파가 진실을 파헤친다는 게 줄거리다. 수백 페이지의 긴 분량에 주석과 도표로 가득 찬 이 책은 어째서 지구 온난화가 허구인지 자세히 밝히고 있다.
고어와 크라이턴의 입장은 정반대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언론이 사태의 실상을 알리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어에 따르면 과학자의 절대 다수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데 미디어에서는 마치 이에 대한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크라이턴은 믿을만한 자료들은 지구 온난화가 허구임을 보여주는데 언론이 일부 환경론자에 휘둘려 사실인양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판이다.
대다수 과학자들에 따르면 지난 150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섭씨 0.3~0.6도 정도 오른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이 중 어느 만큼이 인간이 초래한 것이며 어느 만큼이 자연 현상인가 하는 점이다. 850~1350년 사이 지구 온도는 섭씨 2.5도 올랐는데 일부 해안 지역이 침수되기는 했지만 농업 생산 등 경제는 오히려 성장했다며 기온이 오르는 것이 반드시 재앙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인가. 어렵고도 어렵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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