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축구땀 속에 정을 나누고 꿈을 키우고…
’축구부자’ 김현철 씨-김성신 군
축구황제 펠레(브라질) 버금가는 경탄을 자아낸 축구신동 마라도나(아르헨티나)의 작은 키는 핸디캡이 아니었다. 상대 선수들에겐 신경질나는 무기였다. 안그래도 작은데 땅에 착 달라붙은 듯한 낮은 자세로 요리조리 휘젓고 휘도는 바람에 멀대같은 마크맨들이 맨날 뒤땅을 쳤다.
김성신-. 학교(프리몬트 워싱턴하이) 대표팀에서, 서른몇개 클럽에서 알짜만 추려만든 프리몬트시티 언더16 올스타팀에서, 성인들과 뒤섞인 북가주한인
축구동아리 일맥A팀에서 센터포워드 등 부동의 주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갓 열다섯살 9학년생 성신이도 작디 작다. 5피트2인치, 135파운드.
그러나 실력은 훌쩍 크다. 가능성은 훨씬 더 크다. 덩치 큰 선수들이 겹겹이 버티고 선 수비숲을 낮은 포복으로 비집고들어가 공의 길을 닦고 골의 길을 트고, 기어이, 허탈해하는 상대 골키퍼와 수비수들을 뒤로 한 채 멋쩍게 히죽 웃으며 달려나와 동료들 품에 안기는 그의 모습은 이제 그가 있는 축구장의 낯익은 풍경이 됐다. 외곽에서는 드리블로, 문전에서는 동물적 위치선정과 침착한 마무리 터치로 속속 상대 급소를 찌르며 05-06시즌 고교리그 팀내 최다득점(16골)을 기록했다. 그중 8골을 머리로 빚어냈으니 허탕친 키다리 수비수들은 키라도 줄여서 말하고플
수밖에.
아버지-6년째 막강 일맥팀 감독, 아들-가주 청소년리그 팀내 득점왕
어린이교실을 들락거리던 아장아장 사커키드에서 어느덧 캘리포니아주 전역을 주름잡는 무서운 10대로 성장한 김성신을 두고 프리몬트시티 언더16 올스타팀 감독은 슛감각 좋고 많이 움직여주고 거기다 노력형이라고, 워싱턴고교팀 감독은 한술 더떠 축구만 잘하는 게 아니라 공부까지 잘한다(입학때 성적 올4)고
칭찬 또 칭찬이다. 그러나 아버지(김현철, 건물리모델링업) 눈에 비친 아들은 다듬을 곳 많은 미완의 재목이다.
샌드위치 마크를 자주 당하니까 어깨싸움도 더 해야 되고, 그러려면 체력을 좀더 보강해야 되겠고, 경험도 더 쌓아야 되고요…
알고보니 김성신의 축구유전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1997년 미국이민 이전까지 물에서는 수상스키를, 뭍에서는 조기축구로 몸을 단련한 스포츠맨 김현철 씨는 다름아닌 일맥에서 6년째 감독을 맡고 있다. 성신이와 축구의 만남 또한 ‘아빠 따라 축구구경, 아빠 흉내 축구놀이’에서 시작됐다. 일맥 자체평가전 때는 수비수나 미드필더로 뛰는 아버지와 붙박이 스트라이커인 아들이 딴 편이 돼 부자의 정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 뚫으랴 막으랴 에누리없는 공방을 펼치기 일쑤다.
김성신의 사커드림이 아버지 그늘에서만 자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가주 청소년리그가 열리는 주말이면 휴식을 마다한 채 먼길 고행을 마다한 채 샌디에고다 어디다 아버지와 함께 원정응원을 가 박수를 쳐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김은경)와 여동생(김성은)도 변함없는 산소공급원 에너지공급원이다. 김현철 씨는, 그런 와중에도 일맥선수단 유니폼빨래 등을 맡아주는 등 덤터기 내조까지 군말없이 해내고 있는 부인에 대해 고마워하면서도, (우리식구) 기사가 너무 크게 나가면 부담스러우니까 웬만하면 쓰지 말고 (쓰더라고) 작게 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코앞에 닥친 한국대표팀 월드컵전망을 묻는 질문에도 제가 말하기가 좀…느낌은 좋은 것 같은데…라고 말을 아꼈다. <정태수 기자>
사진/ 아버지 김현철 씨와 아들 김성신 군.
<연재>
인류의 대제전 월드컵 76년사⑤
◆제8회 잉글랜드월드컵(1966년)
축구종주국 잉글랜드에서 열린 이 대회는 북한과 에유세비오(포르투갈)를 위한 무대였다. 북한과 포르투갈은 둘 다 월드컵 본선 처녀출전팀. 평균키 165cm의 땅딸이에다 우승확률 1%의 북한은 데뷔전에서 소련에 0대3으로 져 예상대로 동네북이 되는가 했으나 둘째판 칠레전 1대1 무승부에 이어 동양의 진주 박두익 결승골로 우승후보 아주리군단(이탈리아)을 1대0으로 격파하고 8강에 진출, 세계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이변을 연출했다.
인민군 특수부대에서 단련된 강철같은 체력과 정신력, 조직력으로 체격열세를 만회한 북한은 포르투갈과의 준준결승에서도 3대0으로 앞서나가다 긴급투입된
에유세비오에게 4골을 허용하며 3대5 역전패, 아시아최초8강에 만족해야 했다. 웃지 못할 신화도 수두룩했다. 사다리전법. 키가 작아 문전 뜬공을 다툴 때 북한
선수들이 잽싸게 몸사다리를 만들고 한 선수가 그 위로 뛰어올라 공을 따낸다는 것이었는데 실은 공중크로스 때 문전에 늘어선 북한선수 서너명이 차례로 뛰어올라
헤딩모션을 취해 수비수들을 헷갈리게 하는 전법이 와전된 것이었다.
또 하나는 ‘북한선수단 그후’에 대한 소문. 포르투갈전 패배원인이 전날밤 술판을 벌인 때문이었다느니, 귀국길 비행기에서 여승무원들에게 치근덕댔다느니, 자본주의에 물들었다느니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는 소문들이 주로 한국에서 ‘제작돼 유포됐다.’ 그러나 몇년전 영국 BBC방송의 확인결과 그들은 공훈체육인에 걸맞은 생활을 해왔다. 속좁은 남북대치가 빚은 촌극은 그뿐 아니었다. 북한 낭보에 뒤틀린 한국 나으리들의 심사를 헤아려 한국 언론에는 8강팀이 북한 빼고 7팀만 소개됐다.
이탈리아선수단은 한밤중에 로마 대신 제노바공항을 통해 귀국했지만 썩은 토마토세례를 피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이탈리아에서는 악몽의 패배를 당하면 Another Korea란 용어를 쓰곤 했다. 그런데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진짜
another Korea에 1대2 역전패를 당했으니….
한편 잭 찰튼-바비 찰튼 형제를 앞세운 잉글랜드는 홈텃세에다 심판의 오심까지 업고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연장사투 끝에 4대2로 승리, 대망의 우승컵을 차지해 비로소 축구종가의 체면을 차렸다.
사진/ 66월드컵 돌풍의 주역 북한축구.
◆제9회 멕시코월드컵(1970년)
다시 펠레를 위한 무대가 펼쳐졌다. 62년과 66년 월드컵에서 부상으로 이름값 기회를 좀체 잡지 못했던 펠레는 토스타오 자일징요 리벨리노 등 기라성같은
스타동료들과 함께 연전연승을 주도하며 브라질에 사상 3번째 우승을 안겼다. 발은 믿어도 말은 못믿겠다는 소리를 들어도 쌀 정도로 펠레의 은퇴후 예언능력은 꽝. 그런데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을 앞두고 한 그의 말은 제법 쪽집게 예언이었다. 물은 항상 수평을 찾는다. 브질은 예정된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줄리메컵은
브라질의 영원한 국보가 됐다(74년부터는 새로 제작된 FIFA컵).
66월드컵 돌풍의 팀 북한은 지역예선에서 이스라엘과의 경기를 거부해 애당초 본선출전길이 막혔고 한국은 아시아오세아니아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69년 여름, 북중미 예선을 치르면서 감정이 깊어진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는 수천명의 사상자를 내는 축구전쟁까지 벌이는 등 월드컵축구의 빗나간 광기를 소름끼치게
보여줬다. 선수교체 제도와 옐로카드제 레드카드제가 도입된 것도 70월드컵이다. <계속>
<미니박스>
붉은 악마라니? 붉은 악마는요!
며칠전 기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북가주 한인사회에서 매우 유명한 태권도인 M 사범이었다. 그는 붉은 악마란 명칭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적어도 미국에서는 그런 명칭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개탄조로 말했다. 기독교의 땅 미국에서 저주받을 악마를 국가대표팀 응원단 이름으로 쓴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한국축구대표팀 서포터스클럽의 공식명칭인 붉은 악마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주로 기독교계에서 문제제기를 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친다. 그러나 붉은 악마란 용어는 한국의 비기독교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AP통신 등 미국에
뿌리를 둔 세계적 언론들이 만들어 붙여준 이름이다.
1983년 멕시코에서 세계청소년축구대회때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붉은 유니폼을 입고 쉴새없이 그라운드를 누비며 4강에 오르자 ‘붉은 악령들(Red Furies)’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그것이 한국언론의 번역과정에서 ‘붉은 악마’로 됐고 90년대 중반 출범한 한국대표팀 응원단의 공식이름이 됐다.
한편 MLB(야구) NHL(아이스하키) 등 미국의 인기 스포츠리그에서도 ‘악마’ 이름을 붙인 팀들이 있고, 하위리그에 내려가면 수없이 많다. ‘지옥의 사자’니 ‘약탈자’니 ‘폭격기’니 하는 유명선수들의 무시무시한 별명들도 대개는 미국이 키를 쥐고 있는 유력 언론매체들이 작명을 하거나 세계로 전파하는 것들이다.<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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