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토맥 칼럼
▶ 장세규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5학년 짜리 작은 아이 숙제를 봐주었다. 과학 숙제였다. 아이는 과학 실험 연구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제대로 못 배운 연구 기법에 대한 수업이었다. 돌이켜보면 암기 위주로 시험 잘 보는 공부만 하느라 연구와 탐구를 위한 기본 바탕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유학 와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제 5학년 아이가 공부하는 연구 기법에 대한 숙제를 보면서 내가 이 어린 나이에 이런 공부를 제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를 생각해 본다.
아이는 과학 실험에서 변수와 상수를 구별하지 못해서 힘들어 했다. 한때 과학도였던 아빠가 열심히 설명해주는데 잘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았다. “실험을 할 때는 일부러 모든 변수를 고정해 두고 한 가지 변수만 바꿔 가면서 관찰을 해야 과학적인 사실을 명확하게 찾아낼 수 있는 거야.” 그래도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이리 저리 예를 들어 간신히 설명을 마치자 아이는 뭔가 석연치 않은 얼굴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도 아빠의 애타는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고 이해한 척 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가 나름대로 변수와 상수에 대해서 정리하는 답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속에는 씁쓸한 생각이 하나 들었다. 한국민 전체가 5학년 수준의 기초적인 훈련이 안 되었다 보니 한국 사회 전체가 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하인스 워드 열풍이 한국과 미국의 한인 사회를 쓸고 지나갔다. 한국인들이 가진 혼혈인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 의식을 규탄하는 소리가 높았다. 이번 기회에 혼혈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의식 수준을 높이고 제도적으로 또한 법적으로 혼혈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목소리를 드높였다. 혼혈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봇물처럼 솟아진 또 화두가 있었다.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더 심하게 표출된 관심사로서 한국인의 혈통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한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남다른 특별한 성공을 이룬 듯이 말하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가 세계적인 스포츠 수퍼 스타가 된 것이야 말로 타 민족에 비해서 한국인의 혈통이 훨씬 더 우수하다는 증거인양 흥분한 것이다.
하인스 워드 현상을 이해하는 데 수 많은 지식인 조차도 합리적인 진실을 찾는데 적용해야 할 변수와 상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던 것이 아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한국인의 피가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양한 혈통을 변수로 잡고 사회 환경을 상수로 잡아야 한다. 동일한 사회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민족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성공하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 미국이라는 개방된 사회 환경을 상수로 잡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혈통의 사람들이 어떤 성취를 이루는지를 봐야 한다. 아프리칸 어메리칸과 타이 사람의 혼혈인 타이거 우즈를 비롯해서 미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인종이 신기에 가까운 탁월함을 보이면서 살고 있다. 미국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인종적인 배경을 가진 다양한 혈통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공 신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인의 혈통이 특별히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오히려 변수와 상수를 바꿔 보라. 상수를 하인스 워드와 같이 한국인의 혈통을 가진 혼혈인으로 설정하고 변수를 사회 환경으로 바꿔 보라.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들로 하여금 한국 사회, 미국 사회, 유럽 사회, 동남아시아와 호주에서 살게 해보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그들이 이루는 성취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하인스 워드가 세계적인 수퍼 스타가 된 것은 그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인스 워드 현상은 한국인의 혈통이 우수한 것을 입증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경쟁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뒤집어 본다면 한국인의 혈통에게도 바른 환경만 주어진다면 이 지구상의 어떤 혈통에도 뒤지지 않는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자유, 인권, 기회, 평등, 노력에 대한 공정한 보상, 인간성과 진정성에 대한 존경심, 다양함을 무한히 허용할 수 있는 여유, 위대함에 대한 경외감, 가정의 소중함 등이 보장되는 사회 환경에서라면 한국인들은 인류를 감동시키는 위대한 성취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한민족은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움츠러들고, 침략의 역사를 통해서 기가 죽고, 가난의 천형으로 쇠약해져서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가능성을 꽃피우지 못하고 살았다. 이제 한민족을 얽매고 있던 제도적인 굴레, 의식의 굴레, 정신의 굴레, 지역적인 족쇄를 벗어 버리고 전 세계 인류가 감격할 만한 놀라운 일을 이루는 시대가 찾아 왔다. 날로 더한 감격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장세규 <한빛지구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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