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테이스팅의 기본 배우기
‘와인 테이스팅’ 혹은 ‘와인 시음’이라 하면 뭐 대단한 일인 줄 알고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글자 그대로 와인을 맛보는 것(wine tasting)이다. 우리가 음식을 맛볼 때 이것저것 씹어 먹어보면서 음식의 냄새와 혀에서 느껴지는 맛과 질감을 음미하듯이 와인도 그렇게 향을 맡고 무게감을 느끼며 맛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든 맛을 볼 때는 비교의 대상이 많아야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듯이 와인 시음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이 좋다. 적어도 서너명 이상이 모여 테이스팅 하면 여러 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 와인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 와인 시음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와인 테이스팅의 기본을 만들어보았다.
▲품종별 시음: 첫 단계에서는 와인의 종류를 익히는 것이 기본이므로 품종 별로 사다놓고 조금씩 마셔본다. 화이트 와인의 대표적인 몇 종류(리즐링, 소비뇽 블랑, 샤도네 등)와 레드 와인의 대표적인 종류들(피노 누아, 멀로, 시라, 카버네 소비뇽)을 놓고 색깔, 향, 맛, 무게감(body)을 비교하며 마셔본다. 인원수가 적을 때는 먼저 화이트 와인들만 시음하고, 다음 번에 레드 와인들을 시음하면 된다. 괄호 안에 열거한 품종의 순서대로 연한 맛에서 진한 맛으로 옮겨간다. 색깔과 향과 무게감도 마찬가지 순서로 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역별 시음: 일단 와인의 종류를 익혔으면 다음부터는 자유롭게 시음해본다. 같은 품종의 와인이라도 생산된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므로 그 차이를 알아보는 테이스팅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노 누아의 시음을 한다면 프랑스 부르고뉴, 캘리포니아 소노마, 오리건, 샌타마리아 등에서 나온 비슷한 가격대의 와인들을 고루 마셔보는 것이다. 카버네 소비뇽도 나파 밸리, 워싱턴주, 칠레, 프랑스 보르도, 남아공화국 산 등 여러 종류를 마셔본다.
▲국가별 시음: 그 다음은 나라별 와인들을 공부한다. 구세계에 속하는 프랑스 각 지역에서 나오는 여러 품종의 와인들을 마셔보거나 이탈리아 여러 산지의 와인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화이트 와인들을 마셔본다. 신세계인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칠레, 뉴질랜드, 남아공화국의 와인들도 차례차례 시음한다. 이 국가별 시음은 대표적인 포도주 생산지역과 와이너리의 이름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와이너리별 시음: 복합적인 와인의 풍미를 이해하게 됐다면 좀더 섬세한 시음을 할 수 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해에 나온 같은 품종의 와인을 각각 다른 와이너리의 것으로 마셔본다. 예를 들어 보르도의 2000년산 와인들을 마셔보거나 나파 밸리의 2001년산 카버네 소비뇽들을 비교하는 것이다. 이 시음은 각 와이너리의 양조 스타일을 알게 해준다. 진하고 풍만한 스타일인지, 가볍고 우아한 스타일인지 알 수 있다.
또 같은 와이너리에서도 각각 다른 땅(vineyard)에서 수확한 포도로 빚은 와인들을 맛보는 시음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니클&니클(Nickel & Nickel) 같은 곳에서는 자기네 소유의 각각 다른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도들로 매년 7~8종류의 카버네 소비뇽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런 와인들을 함께 맛보면 토양에서 나오는 미묘한 맛의 차이를 공부할 수 있다.
▲연도별 시음: 버티컬(Vertical) 테이스팅이라고 불리는 시음으로 같은 와이너리의 같은 품종 와인을 빈티지 별로 마셔보는 것이다. 이 시음은 날씨가 좋았던 해와 나빴던 해의 차이를 알 수 있고, 와인의 숙성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재미있는 테이스팅이다. 요즘 나파 밸리에 가보면 많은 와이너리들이 버티컬 테이스팅을 제공하는데 가격은 좀 비싸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 맨 마지막 단계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다. 여러 사람이 각자 비슷한 가격대의 와인을 한병씩 사온 후 병을 완전히 종이로 싸서 레이블을 가리고 시음하는 것이다. 맛을 보면서 이 와인이 어떤 품종이며 어떤 지역에서, 어떤 해에 나온 것 같다는 것을 추측하여 말한 다음 나중에 레이블을 공개하고 누가 가장 근접하게 맞췄나 보는 것이다. 재미도 있고 스릴도 있으며 그동안 공부한 것을 복습하는 효과도 있다.
이 외에도 시음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수준에 따라 여러 종류의 테이스팅을 창조해낼 수 있다. 음식과 페어링하는 테이스팅, 오크 향의 정도를 가리는 테이스팅, 특이한 품종의 와인들을 맛보는 테이스팅 등… 당연한 얘기지만 와인은 많이 마셔볼수록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맛도 즐길 수 있고 더 재미있어진다.
시음전 껌씹기·양치질·향수 금물
와인 종류·맛 기록해야 비교 쉬워
맛보기 준비
와인 시음을 할 때는 각자 와인 글래스를 2~3개씩 준비한다. 글래스마다 다른 와인을 따라 맛을 보면 색과 향과 맛의 비교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공책을 하나 준비하여 와인의 이름과 맛을 노트한다. 여러 종류를 마시다 보면 생각보다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와인 맛보기를 할 때는 입맛의 상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입 속과 혀의 상태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기 직전에 양치질을 하거나 껌을 씹으면 정말 나쁘다. 당연히 너무 맵거나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에도 절대로 좋은 시음을 할 수가 없다. 우리 한국사람은 식사도중 뜨거운 국을 먹는 일이 많은데 나의 경우 라면이나 순두부를 먹으면서 아주 살짝만 데어도 혀와 입천장이 얼얼해져 몇시간 정도는 입맛이 영향을 받는다.
심지어 예민한 사람이라면 물을 마신 후 얼마동안 입에서 물비린내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와인 시음 중간에 입맛을 중화시키려 할 때는 물을 마시지 말고 크래커나 바게트 빵, 혹은 치즈 같은 것을 조금씩 먹는 것이 좋다.
무엇이든 맛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라고 한다. 텁텁하기 그지없는 그때가 가장 순수하게 음식의 미각을 접할 수 있기 때문으로, 와인이나 위스키 코냑의 블렌더들은 그때 맛을 보면서 싱글 몰트의 원액들을 섞는다고 들었다.
한편 향수를 많이 뿌리는 것도 와인의 향을 맡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진지한 와인 시음회에 참석할 때는 삼가는 것이 좋겠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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