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대회 결승에서 페더러를 꺾은 뒤 우승컵을 한입 무는 나달.
세계 남자 테니스 최강자 페더러가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여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는 나달이란 벽을 넘어야 포효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세계 남자 테니스 최강자 로저 페더러가 이를 악물었다. 지난해 US오픈을 시작으로 올해 첫 번째 메이저인 호주 오픈까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3개 잇달아 독식한 그는 “호주오픈이후 줄곧 프랑스 오픈을 준비해 왔다”며 강한 의욕을 숨기지 않는다. 28일 개막하는 프랑스오픈에서만 이기면 모든 메이저 대회를 석권한 5명의 테니스의 전설들과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 생애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해본 선수는 프레드 페리, 단 벗지, 로이 에머슨, 로드 레이버,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는 안드레 애거시뿐이다.
로저 페더러,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 슬램
‘막강 테니스’ 불구 붉은 코트서는 번번이 분루
이번에도 라파엘 나달 높은 벽 넘어야 가능
▶목전의 그랜드슬램
이보다 더한 영광이 또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US오픈과 윔블던, 그리고 올해들어 호주 오픈을 우승했기 때문에 프랑스오픈만 삼키면 4개 대회를 잇달아 석권하는 커리어 그랜드슬래머가 된다. 오픈시대(1968년)가 열린 이후 레이버(62, 69년 2회에 걸쳐 한해 그랜드 슬램 달성)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꿈을 이뤄보지 못했다. 피트 샘프라스가 93-94년 3개 대회를 석권해본 것이 마지막 위업이다.
페더러는 최근 메이저 대회에 11번 참가해 7번을 우승했고 2005년 이후 119승7패일 정도로 남자 테니스를 압도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톱 랭커 자리를 완벽하게 틀어쥐고 있다. 그러나 이런 막강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오픈은 페더러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벽이다. 지금까지 7번을 도전해 3번 1라운드 탈락하는 등 총14승7패의 페더러 답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이렇기 때문에 프랑스 오픈이라면 페더러보다는 디펜딩 챔피언 라파엘 나달이 더 주목을 받는다.
몇주 지나면 20세가 되는 이 어린 선수는 클레이코트에서는 이미 테니스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위업을 달성하고 있다. 2주전 이탈리아오픈에서 타이브레이크 두 번을 잡히는 혈전 끝에 또다시 페더러를 꺾고 우승하며 기예르모 빌라스가 보유했던 클레이코트 53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6-7 (0-7), 7-6 (7-5), 6-4, 2-6, 7-6 (7-5)로 페더러에 4연승을 거뒀다는 점이 프랑스 오픈과 관련해 더 의미있을지도 모른다.
페더러(24)도 클레이코트에서 무척 강하다. 나달 외에는 클레이코트 탑클래스 선수들을 모조리 꺾었다. 어릴 때 클레이코트에서 자랐고 지금까지 일류 대회인 매스터스 시리즈 대회 3번을 포함해 모두 5번을 클레이코트서 우승했다.
“페더러는 모든 무기를 다 가졌다”고 미국 데이비스컵 감독 패트릭 매켄로는 극찬한다. “스피드와 기동성, 코트 센스를 가졌다. 수비도 잘하고 (클레이코트서) 슬라이드도 잘한다. 단 한가지가 막고 있는데 그것은 클레이코트가 아니다. 나달이라는 존재다”라고 그는 지적한다.
▶프랑스 오픈은 스타들의 무덤
프랑스 오픈은 느리고 특이한 코트 성격으로 인해 역사에 빛나는 테니스 거장들이 줄줄이 수모를 당했던 곳이다. 잔 뉴컴, 잔 매켄로, 지미 코너스, 보리스 베커, 스테판 에드버그와 같은 대가들이 롤랑가로에서는 눈물을 흘려야 했다. 샘프라스는 그랜드슬램대회 14회 우승이란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지만 프랑스오픈에서는 단 한차례 준결 진출이 가장 좋은 성과였다.
공이 느리게 튀어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 물먹은 솜처럼 돼 버려 맥을 추지 못한다. 보리스 베커는 클레이코트서 자랐고 본인도 상당한 자신을 갖고 있었지만 롤랑가로에서는 이빨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3번 준결 진출로 고배를 들었던 베커는 “나는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기보다는 적극적인 공격을 즐기지만, 클레이에서는 실수를 덜하는 쪽이 이긴다”고 말한다.
▶높은 나달의 벽
베커의 지적은 나달이 왜 클레이에서 강한지 어느 정도 설명한다. 루프를 그리는 높은 탑스핀이 코트에 맞으면 더 높게 튀어오른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아주 처리하기가 힘들다.
그의 루프성 높은 탑스핀은 클레이가 아닌 하드코트에서도 페더러에게는 상당한 어려움을 안긴다. 그는 올해 페더러를 꺾은 유일한 선수인데 3월 두바이와 4월 몬테칼로, 그리고 2주전 이탈리아에서 연파했다. 지난해 프랑스 오픈 준결승을 포함 지금까지 상대전적에서 총 5승1패로 앞선다.
왼손잡이인 그의 인사이드 아웃 포핸드는 페더러를 코트 밖으로 밀어낼 뿐 아니라 페더러의 백핸드가 수비적일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다.
페더러의 백핸드를 공략하는 나달의 포핸드가 살인무기인 셈이다. 공격의 날카로움과 다양성에서야 페더러가 월등하지만 머리까지 높게 튀어 오르는 묵직한, 처리하기 아주 곤란한 공을 풀지 못하는 한 어렵다.
심리적 징크스 마저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롤랑가로 91-92년 우승자인 짐 쿠리어는 “승인은 그의 머리속에 있다”고 말한다. 주눅들었다는 말에 페더러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반발한다. “레이턴 휴잇이나 데이빗 날반디언도 한때 이기기 어려웠던 상대지만 결국은 극복했다”며 “나달도 여러번 상대해 봄으로써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랜드슬램 달성 가능성
“이번에 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하면 가장 위대한 선수가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맥켄로는 내다본다.
페더러는 지난 4개월동안 코치 토니 로체와 함께 프랑스오픈을 철저히 준비해 왔다. 붉은 클레이 코트에 대한 심리적 적응 훈련도 했다. 건조하고 뜨거운 날씨는 페더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나달-페더러가 결승에서 만나는 드림 매치가 이뤄진다면 페더러는 공격적 입장을 취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네트 공격의 승패의 관건이다. 페더러가 4세트로 졌던 몬테칼로에서는 페더러는 네트로 73번 나가 52번을 성공시켰다. 71%의 높은 성공률이었지만 졌다.
페더러는 자신의 경기방식을 극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좀 더 느긋한 자세를 취할지도 모른다. “나달을 꺾기 위해 더 공격적이어야 하고 서비 앤 발리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식으로 심리적 압박감을 갖지는 않는다. 그런 스타일로는 붙기도 전에 질 것이다“. 페더러도 나달에 대한 요령이 점점 생기는 모양이다.
<케빈 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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