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골퍼 미셸 위가 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일진 광풍을 일으키고 돌아왔다. 국내 남자프로 골프대회에 출전하여 예선을 통과했다는 것도 큰 뉴스였지만, 그보다는 이 17세 소녀가 열흘간 한국에서 번 돈이 370만 달러에 달한다는 얘기가 더 놀라왔다.
생각할수록 골프란 게임은 한국인들과 아주 묘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셸 위가 한국에 가서 골프 스윙을 할 때는 많은 사람이 감탄사와 찬사를 연발한다. 또 미국 프로골프대회인 PGA나 LPGA에서 한국선수가 선전하면 모두 환호한다. 그런데 다른 경우 다른 상황에서 골프는 한국에서 몹쓸 것, 문젯거리, 골칫거리, 애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골프에 얽힌 비리, 스캔들, 웃지 못할 얘기들이 자주 들린다. 원정골프, 로비골프, 황제골프, 골프공화국, 공무원 골프 금지령 같이 골프에 관련된 이상한 말들도 많이 있다. 골프가 한국에서 자주 공공의 적이 되는 까닭은 원천적으로 골프는 부유층의 호화, 사치의 대상일 뿐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는데다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권력과 부패의 연결고리이고, 또 정당치 못한 접대용 게임이라는 인식이 퍼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골프를 치는 한국사람들은 골프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한국인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골프를 치는가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한국에서 골프장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이고, 새벽부터 골프장에 나오는 사람, 겨울 눈 덮인 골프장에서 골프치는 사람, 골프치다 강도 당하는 사람, 골프 치다 벼락에 맞아 죽는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라는 얘기다.
또 딸을 LPGA의 유명 골프 선수로 키우겠려로 일찍부터 골프학교에 유학 보내고 훈련을 ‘강제’하는 사람들도 한국의 부모들이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도 얼마 전 ‘골프광 한국인들’에 관한 기사를 실었고, 또 급기야 미국내 한인 밀집지역의 일부 골프장에 ‘한인사절’이라는 문구가 나붙기 시작했을까.
그래서 생각해 본다.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 골프에 집착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우선 한국에서 골프 칠 기회가 어렵다는 사실을 그 이유로 든다. 한국에 골프를 자주 치는 사람이 약 350만 명인데 골프장은 230개 안팎이라니 수요에 비해 골프장이 크게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만 해도 골프장이 3,000여 개가 되고, 미국에는 자그마치 1만6,000여 개나 된다. 그것도 미국의 골프장 가운데 회원제는 4,000여 개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대중 골프장이다.
따라서 한국 안에서 골프 치고 싶어 안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골프치기가 훨씬 쉽고 편한 미국에 와서도 한인들은 여전히 골프에 목숨 건 듯 극성을 보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최근 한국인들의 골프 집착성향을 연구한 어떤 외국학자는 그 이유가 좁은 땅, 비극적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명쾌한 설명은 되지 않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치는 이유를 체격, 손재주, 승부근성이나 독불장군 성향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또 한국인들은 논리나 이성을 통제하는 왼쪽 뇌보다 감각, 직관을 관장하는 오른 쪽 뇌가 더 발달돼 있는데 그것도 골프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골프병(病)’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권위주의, 명분주의, 형식주의 같은 한국인 특유의 성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많은 한국인들이 ‘골프를 쳐야 한다, 그리고 잘 쳐야 한다’며 집착하는 것은 권위와 명분을 앞세우며 체면과 외관에 신경을 쓰는 형식주의에 뿌리를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회가 과소비, 명품선호, 과시욕, 일류병, 부동산투기, 조기유학, 학력 인플레이션 같은 사회풍조를 보여온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뭐가 좋다’하면 성형수술부터 값비싼 골프채에 이르기까지 목을 매는 현상과도 맞물려 있고 외환위기 당시 금 모으기 운동이나 월드컵의 붉은 악마, 촛불시위 행태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에서 한 번 골프장에 나갈 때마다 쌀 한 가마니 돈을 쓴다는 것은 미국적 합리성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바로 그것이 한국인들을 골프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는 다소 역설적인 주장이다.
한국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성향이 골프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결국 골프 과소비, 골프명품 선호, 골프 과시욕, 골프 전시효과, 골프 일류병, 그리고 골프 거품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다. 권위와 명분과 형식은 집에 놔두고, 가끔씩 싸구려 골프채라도 들고 나가 꼭 잘 쳐야 된다는 부담없이 골프를 즐기는 점잖고 예의바른 한국골퍼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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