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오(43)·브래드 버틀러(44)씨 부부에게는 간절히 원하는 아기가 없는 대신 ‘애기 같은 두 어른’을 모시고 산다.
심장병과 당뇨,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팔순의 미국인 시아버지와 폐 기능을 거의 상실한 78세의 친정 아버지가 이들에겐 기쁨이 되고 삶의 보람이 되기도 한다.
14년째 모시고 있는 시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몇 번씩 받고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거의 거동을 못한다. 대소변도 혼자 가리지 못해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다.
친정 아버지는 99년 모시고 왔다. 젊은 날 과다한 흡연으로 인해 폐기능을 거의 상실, 6개월을 넘기기 힘들 거라는 의료진의 진단을 받은 후였다. 친정 아버지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살며 호흡곤란으로 한 달에 1-2회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중환자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씩 김씨는 고집 센 시아버지와 한바탕 전쟁을 치루기도 한다. 젖은 기저귀를 갈고 씻겨 드리려는 김씨와 싫다는 시아버지와 실랑이가 벌어지는 것. 때로 청력도 거의 상실한 시아버지와의 의사소통은 마치 싸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두 아버지의 병 수발을 귀찮아 해 본 적이 없다. “부모잖아요. 우리를 낳아 기르실 때도 그렇게 하셨잖아요. 힘없고 병든 부모님이지만 곁에 계시다는 그 자체가 축복 아닌가요?”라고 김씨가 반문한다.
더구나 김씨는 어릴 적 앓았던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김씨는 인터뷰 요청에 “그저 한 집에 모시고 살며 자식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상 받고 칭찬 받아도 되는 지 모르겠다”며 몇 번을 사양했다.
훼어팩스 스테이션 자택은 두 아버지를 위해 개조했다. 휠체어가 편하도록 마루를 깔고 나란히 방을 배치했다.
한쪽 방에는 시아버지가 누워서 투병중이고, 한쪽 방에는 산소호흡기를 낀 친정아버지가 지낸다.
델리 샵에서 하루 4시간 정도 파타임으로 일하는 김씨는 두 아버지 수발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두 분 식사는 직접 만들어 꼭꼭 챙겨 드린다. 환자식이지만 두 분이 맛있게 식사하시는 걸 볼 때가 가장 기쁘다.
“그저 두 분이 더 아프시지 말고 사시다가 고통 없이 하나님 곁에 가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나이 드시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그 말이 맞아요. 저렇게 병들고 힘이 없으셔도 자식 사랑하고 의지하는 걸 아는데 어떻게 나 편하자고 너싱 홈에 보내드려요”
친정 어머니는 김씨가 8살 때, 시어머니는 김씨가 버틀러씨와 결혼하기 전 돌아가셨다.
김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그의 집을 찾은 13일, 시아버지와 남편은 집에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남편이 휴가를 이용해 아버지에게 바깥바람을 쐬어 드리고 아내를 쉬게 해 주기 위한 배려에서 머틀 비치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 전에는 김씨의 친정 아버지도 함께 모시고 다녔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엔 한 분만 모시고 갔다.
친정아버지 김응만씨는 “딸 덕분에 덤으로 인생을 살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결혼 후 아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아기 대신 두 아버지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아요. 성경 십계명 다섯 번째 항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건데 제 이름이 바로 경오에요. 두 아버지를 모시는 게 제게 주어진 십자가인 것 같아요”
무뚝뚝하고 고집이 세 거의 표현을 안 하는 시아버지가 3년 전 심장수술 들어가기 직전 수술이 잘못될 경우 깨어나지도 못할 수 있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김씨의 손을 잡았다.
“네가 매일 나를 정성껏 돌봐 줘 정말 고마웠다.”
시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였고 며느리 김씨의 뺨에도 눈물이 흘렀다.
인터뷰 내내 씩씩하고 명랑했던 김씨는 “두 아버지가 위중할 때마다 잘못한 것만 생각나요. 더 잘해 드려야겠다고 하면서도 늘 아쉬움만 남아요” 라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가 출석하고 있는 버지니아 한인침례교회의 양성원 목사는 “한 사람도 섬기기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 몸이 성치 않은 80의 시아버지와 친정 아버지 두 분을 동시에 섬기는 일이 효의 마음을 가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면서 “그의 효행은 한인사회와 미 주류사회에 잃어버린 가족 사회를 재건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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