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예술인 출신… 60~80대 학생… 오지의 선교사 꿈꾸며 …
한의과 대학은 다른 대학들에 비해 유달리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많이 모인다. 예전에 비하면 학생들이 젊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만학도가 많다. 나이 들어 입학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다. 남가주의 한의과 대학에 입학하려면 최소 2년제 대학졸업이나 60학점 이상의 학력소지자여야 한다. 연령층은 20대 초반에서 60대 이후까지 매우 다양한 분포. 졸업시즌을 맞아 만학도 비율을 알아보고, 졸업과 함께 새 인생이 펼쳐지는 만학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양한 배경·사회 경륜
졸업후 환자진료에 도움
선교목적 만학도의 경우
학업 중단도 거의 없어
#주 연령층은 25~40세 사이
백그라운드도 다양
샌타모니카 소재 황제 대학은 재학생의 70%가 25~35세 사이다. 한희선 어드미션 디렉터는 “2년제 대학을 갓 졸업한 20세 미만부터 60~80세까지 학생은 다양한 분포를 보이며 백그라운드도 의사, 간호사, 카이로프랙터 등 전문직 종사자부터 교계 종사자, 변호사, 심리학자, 예술인 등 매우 다양하다”고 한다.
동국로얄대학교 엘리자베스 진 프로그램 디렉터는 “학생은 30~40대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올해 250명 중 5명 정도가 60대였다”고 전했다.
사우스 베일로 한의과대학은 25~35세 학생이 70%, 35~45세 15%, 나머지가 25세전 또는 45세 이후로 집계됐다. 권태운 부총장은 “BA, BS등 학사 학위 소지자가 약 80%”라며 “다양한 백그라운드는 한의과를 수료한 뒤 전문인이 되면 환자 진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가주 한의과대학은 20~30대가 60%, 40대 이후가 40%로 나타났다. 남가주 한의과대학 윤동희 프로그램 디렉터는 “60대 이후는 많지 않고 쿼터마다 1~2명 정도”라고 한다.
삼라한의대 정진석 학장은 “학생은 40대가 평균연령으로 60대 이후는 2% 정도, 최고령으로는 73세 할머니도 공부한 바 있다”면서 “최근에는 토플이나 영어 시험쪽이 강화돼 앞으로 만학도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민권자여도 2년제 이상 풀타임 정규대학 공부 기록이 없으면 토플시험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
선교를 목적으로 목사, 전도사, 선교사 등이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 목사, 선교사가 50%를 차지한다는 경산한의과 대학에서는 30~40대가 주 학생층. 50대 이후도 20%정도를 차지한다. 엄귀자 총장은 몽고, 남미 등 의료 선교를 목적을 위해 한의대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며 선교목적의 중장년층은 오히려 젊은 사람보다는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고 귀띔했다.
#만학도에게는 본인 건강을 위한 공부
황제대학의 한희선씨는 “노년층은 보통 체력이 딸리지만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사우스 베일로 임상클리닉 수퍼바이저 최락완 교수는 “본인의 의지만 충분하다면 나이는 공부에 문제가 될 게 없다”며 “한의학은 형이상학적 학문으로 노년층에게는 마음을 다스리며 인격완성이나 건강관리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한의학은 눈이 아프다고 눈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보는 학문으로 그동안 살아온 인생 경험이 환자 진료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삼라한의대 정진석 학장은 “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만학도의 경우 굉장히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의학은 생활의학이라 재미가 있으며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지만 한번 그 매력에 빠져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이 공부나 봉사활동에 매진하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30대 못지않은 학구열·겸손
졸업땐 부총장상까지 받아
‘만학도의 인간승리’66세 데이빗 조
올해 66세의 나이로 지난 6일 사우스 베일로 한의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데이빗 조씨(한국명 조동헌)는 대표적인 ‘만학도의 인간승리’ 사례라고 할 만하다. 그는 60대 만학도였지만 한의사의 꿈을 안고 한의대에 입학한 지 3년만에 우수한 성적, 기쁨의 졸업장과 함께 활동이 뛰어난 우수 모범학생에게 수여하는 부총장상까지 받았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40년만에 그것도 아들, 딸 같은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하려니 너무 힘들었지요. 강의실에서 첫 수업을 들을 때는 교수가 하는 말이 귀에도 안 들어오고, 당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를 정도였다니까요.
그는 그러나 1년 정도 지나니까 비로소 공부에 자신이 붙게됐다고 한다. 공부를 하다보니 녹슨 삽이 다시 농번기에 반짝반짝 윤이 나듯이 마비됐던 뇌세포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는 그는 GPA도 3.73~3.87를 받았고, 특히 지난해 2005년 여름학기에는 최고학점인 4.0을 기록하기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집이 치노힐스이어서 학교도 멀었다. 매일같이 LA로, 오렌지카운티 캠퍼스로 한 시간 이상 운전해 젊은이도 힘든 한의학 공부를 마칠 수 있었다.
대학은 외국어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지요. 인문계 출신으로 생소한 자연계 학문을 배우려니 아예 지식이 없어 힘들기도 했고, 500가지가 넘는 혈자리 외우기, 해부학, 각종 약초 외우기 등도 참 벅찼어요라 말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체력이 딸리기 마련. 매 학기마다 중퇴생이 3~5명에 이른다.
“공부를 하다보니 나이는 못 속이겠더군요. 저보다도 10년 젊은 50대 학생은 중풍으로 쓰러지기도 했어요.”
데이빗 조씨는 다행히 만성지병도 없었고 긍정적이며 항상 즐거워하는 성격이 공부에 매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 매일 한 시간씩 LA 피트니스센터에 나가 각종 기구 운동과 수영, 사우나를 하면서 체력과 건강관리를 한 것도 나름의 비결이다.
그를 지도한 사우스베일로 임상클리닉 수퍼바이저 최락완 교수는 “하나라도 더 알려고 노력하면서 질문도 자주, 열심히 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평했다.
최 교수는 “연세도 있으신데, 건강관리도 잘 하신 데다가 30대 못지 않은 열정과 겸손한 태도로 새벽부터 실습실에 나오곤 하셨다. 이번 졸업생 중 최고령으로 나이 어린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셨다”고 칭찬했다.
한국에서 고급 장교로 오랫동안 군대생활을 한 조씨는 럭키 유통라인 대표 이사를 역임했으며 웰빙 한방센터 ‘영어게인’의 이사로도 활동했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공부에 큰 힘이 됐다는 그는 부인 조효실씨와 3남2녀, 손자 2명도 두고 있다.
“‘영어게인’을 운영하면서 한의사를 고용했으나 이제 한의사의 꿈을 이루게 됐다. 한의학은 건강을 위해서는 나를 위한 학문이기도 하지만 남을 위한 학문으로 쓰고 싶어 입문하게 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와 한편으로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가 출석하고 있는 은혜한인교회 근처인 풀러턴 쪽에 한방병원을 개원할 계획인 그는 “60평생 남을 위해 봉사를 하지 못했다. 현재 신학대학원도 다니고 있는데,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되면 한의사로서, 선교사로서 봉사의 삶을 제2의 인생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정이온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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