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선고 받았던 김태준씨의 경우
“장내시경 결과가 나쁘게 나왔어요” “조직검사 결과 그 종양이 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나는 순간 전기충격을 받은 것 같이 머리가 아찔했다. 눈에 검은 반점이 얼룩거리는가 싶더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곧 나의 의식은 돌아왔다. “아니 내가 암에 걸렸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때 함께 있던 아내는 내 얼굴이 백짓장 같이 새하얘지더라는 것이었다. 내 보잘것없는 인생도 끝이구나. 이제 내 운명이 다 된 것 같았다.
나는 직장 근방에 혹이 있다는 비뇨기과(윤환) 의사의 통보에 따라 닷새전 장내시경 검사를 받고 오늘 그 결과를 알려고 LA 내시경센터를 찾았다. 검사과정 중 항문 안 5cm 지점에서 두 개의 종양(9/7/5mm, 8/6/5mm)을 잘라냈다고 했다. 그것을 검사실(lab)에 보낸 결과 암 조직으로 판명 난 것이었다.
초죽음이 된 심정으로 병원을 나와 두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LA에 있는 작은아이는 놀라 말을 잇지 못했고 샌프란시스코의 큰딸은 울먹이며 나를 위로하려 애썼다. “걱정 마 아빠, 우리가 병원 다 주선할 테니.”
자각증상은 없으니 운전해서 글렌데일의 외손녀를 보러 갔다. 이제 막 돌이 지난 그 아이는 우리에게 한없는 즐거움과 시름을 잊게 해주었다. 해맑게 웃는 손녀를 뒤로하고 집에 돌아온 날밤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손을 잡고 닥쳐올 고통과 죽음 후를 곰곰이 짚어보았다.
우선 나는 80까지는 연명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나는 은퇴 후 삶이 지루하다는 말을 가끔씩 해온 터였다. 막상 암 진단을 받고 나니 몇 년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것이 간절한 소망으로 다가왔다. 하잘 것 없는 민초로 살다가는 내 인생. 사회나 이웃에 아무 도움도 못되고 실언과 실수로 얼룩졌다는 회한만 남았다. “당신 죽으면 나도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며 아내는 한숨만 쉰다.
큰딸은 방사선과 전문의인지라 최신식 기계가 비치된 베벌리힐스의 시더스 사이나이(Cedars Sinai) 병원에서 CT 스캔을 촬영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약물 먹고 40여분 등 세 시간 후에야 촬영할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난 10여분 후 여분의 CD를 건네주었다. 딸이 이미 부탁해 두었다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한 딸은 컴퓨터에 CD를 넣고 30여분을 읽은 후 다른 부위에는 전이되지 않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적어도 말기증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딸은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눈치다. MRI 상으로 멀쩡해야 할 사람이 죽었는가 하면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어야 할 환자가 산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었다.
직장암 수술전문의를 수소문한 결과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의 닥터를 추천 받을 수 있었다. 내진을 거쳐 수술 일이 나흘 후로 정해졌다. 수술을 기다리는 시간은 매우 지루했는데 창문 너머에는 봄비를 맞은 아담한 집들과 정원수, 푸른 잔디와 길거리의 우산 행렬 등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정겨우며 부러웠다.
드디어 호명, 수술대에 누워 마취된 후 한시간여만에 깨어나니 간호사가 사과주스를 권했다. 너무나 포근하고 편안해서 이대로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병마와 싸울 고통을 두려워 한 나머지 죽음을 택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이다. 타이레놀을 먹으니 통증은 참을 만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5일 후 작은 딸에게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다.
드디어 결과를 알려줄 날은 밝았다. 아내는 전화 받기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 내가 받기로 했다. 닥터들의 일정으로 봐 오후에 통보될 것 같았으나 아침나절의 전화에도 촉각이 곤두섰다. 오후 두 시쯤, 벨이 울렸다. 딸이었다. “아빠, 수술 안 해도 된대. 그리고 방사능 치료도 필요 없어.” 서투른 한국말이지만 천사의 소리였다. “아!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는 눈물이 팍 솟았다. 목이 메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두 달여만에 집안에 웃음기가 돌았다. 70여년 동안 나는 장·위내시경을 한번도 받지 않고 지내왔다.
이번 일은 나 자신에게 우주를 만든 빅뱅(big bang)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얼마를 더 살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분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더 겸손하게 모든 것을 대하고 싶다. 정말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하고 내 자신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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