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한마디에 와인업체‘울고 웃고’
전문 매거진‘애드보케이트’창간
공정 평가 20여년 ‘신화’로 군림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사진)란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와인을 살 때 전문가가 매긴 점수를 보고 구입하는 일이 많은데 그때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이름이 로버트 파커이다.
로버트 파커는 와인시음 전문가로, 그가 평가한 점수에 따라 곧바로 와인 가격이 오르고 내리고 할 정도로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 영향력이 어찌나 큰지 전세계 와인업계에서 파커를 모르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그가 와인의 역사를 바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분야에서 한 개인의 비평이 이처럼 직접적이고도 대단한 파워를 갖는 일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그 때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은 파커에 대해 이중적 태도를 갖고 있다. 수백년동안 와인을 마셔온 프랑스 인들은 자기네들이 언제나 무시해온 미국인이 감히 자기네 와인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는 사실이 무척 자존심 상하지만, 결국 그의 한마디로 와인의 가격이 치솟았다 곤두박질 쳤다 하고 있으니 도저히 그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활동한 지는 20여년 되었는데 요즘에는 심지어 와인메이커들이 파커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그의 입맛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파커화된’(Parkerized) 와인을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살아있는 신화’로 여겨지고 있다.
로버트 파커는 1947년 생으로 메릴랜드 대학에서 역사와 미술사를 전공하였고 73년 메릴랜드 법대를 졸업한 후 10년여 동안 변호사로 일했으나 84년 주위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법조계를 떠나 와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것은 67년 크리스마스 무렵, 프랑스 알사스의 스트라스버그 대학에 다니고 있는 걸프렌드(지금 아내인 패트리샤)를 만나러 가서 한달간 머물 때였다. 와인의 미묘한 향과 맛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와인을 사서 마셨고 보르도 등 와인 산지를 찾아다니며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때만 해도 미국인들은 와인에 대해 잘 모를 뿐더러 특히 프랑스 와인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절이라 파커는 소비자에게 믿을 만한 와인 정보를 주는 컨수머 가이드를 하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78년 ‘와인 애드보케이트’(Wine Advocate) 매거진 첫 호를 발행하면서 업계에서 처음으로 와인 맛을 평가하는 100점 만점의 점수제도를 만들었는데 600명에게 무료 발송했던 이 격월간 잡지는 지금 4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갖고 있으며 세계 37개국 언어로 발행되고 있다.
그때 이후 파커는 세계 각국의 유명 와인잡지들에 비평을 쓰기 시작했으며 85년 나온 첫 저서 ‘보르도’(Bordeaux)는 전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그 외의 저서들 ‘와인 바이어스 가이드’(Wine Buyer’s Guide), ‘론 밸리와 프로방스의 와인’(The Wines of the Rhone Valley and Provence), ‘버건디’(Burgundy) 등도 증보와 수정을 거치며 총 11권이 발행됐는데 모두 대단한 인기와 반향을 일으켰다.
그가 받은 상만도 헤아릴 수 없지만 다른 것은 다 관두고 93년 프랑소아 미테랑 대통령이 수여한 내셔널 메릿 훈장(Chevalier dans l’Ordre National du Merite)과 99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수여한 레종도뇌르 명예훈장(Chevalier dans l’Ordre de la Legion d’Honneur) 등 그는 프랑스의 가장 명예로운 2개의 훈장을 수여한 미국인이 되었다.
파커는 도저히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빨리, 많이, 정확하게 시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년에 무려 1만여 종류의 와인을 시음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하루 평균 28가지를 마셔본다는 말이다. 그렇게 많이 시음할 경우 보통은 코와 혀의 팔레트가 점차 마비되어 정확한 냄새와 미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파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발달된 미각과 후각으로 한번에 수십가지 와인을 테이스팅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 오랜 세월동안 한결같은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는 ‘청렴결백’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영향력을 가졌으면 와이너리들의 청탁을 받거나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줄 만도 하건만 언제나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비평하는 것은 물론이요, 잡지 ‘와인 애드보케이트’는 광고주의 프레셔를 배제하기 위해 광고 없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그는 와인을 사고 팔지도 않고, 모든 경비는 자신이 해결하며, 선물이나 혜택도 일체 받지 않고 있다. 오리건주에 매제와 함께 운영하는 보 프레레(Beaux Freres)란 작은 와이너리가 있지만 그것은 와인 양조에 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비평하는 일을 삼가기 위한 방편 정도로만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파커의 평가에 대해 누구나 동의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파커와 그의 점수 제도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 중에는 그가 나쁜 점수를 매겨 와인판매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다른 비평가들과 와인전문가들이다. 이들은 “한 인간의 혀가 전세계의 와인에 횡포를 휘두르고 있다”고 개탄하면서 “파커는 진하고 강렬하며 단순한 맛의 와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테루아가 중요한, 오래 숙성해야 제대로 맛을 내는 섬세한 와인들에 대해 정확히 평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특히 요 2~3년새 파커에 대한 공격이 고조되는 느낌인데 최근에 그는 보르도 생떼밀리옹 지역의 와인 시음 결과를 놓고 영국의 유명 시음가들과 한판 붙었다. 그 사건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문제의 와인은 2003년산 샤토 파비(Pavie)였는데 파커는 “아주 우수하다”고 평가한 반면 잰시스 로빈슨은 “우스꽝스런 와인”이라고 했고 클라이브 코우츠는 “이 와인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뇌와 혀의 이식수술을 받아야할 것”이라고 혹평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파커는 비평가들의 비난이 와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매우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명성은 자신이 원한 것도 아니고 아직도 와인을 마실 때마다 매일 소비자의 입장, 그야말로 와인 애드보케이트가 되곤 하는데 왜 자신을 독재자 취급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파커는 그와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메릴랜드의 시골집에서 두 마리의 개와 함께 홈타운 보이로 살고 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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