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하퍼 리의 소설 「머킹버드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는 미국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경제공황 당시 미 남부의 극심한 인종차별주의의 희생양이 된 무고한 흑인들을 돕는 한 변호사의 용기를 그린 작품으로 196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곧 영화화되어 변호사로 분한 그레고리 펙이 오스카를 탄 화제작이기도 하였다.
이 소설제목으로 쓰인 머킹버드는 착하고 억눌린 서민들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머킹버드 죽이기는 미국의 선한 양심의 타살과도 같은 의미다. 그러나 실제로 머킹버드는 목소리 흉내(mocking)를 잘 내는 입내새를 일컫는다. 개짓는 소리, 사이렌 등 40여가지 성대모사를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짝을 찾을 땐 수컷은 밤낮 쉬지 않고 노래 부른다. 서민들을 자기 존속을 위해 쉴 틈도 없이 목청을 돋우어야하는 머킹버드에 비견한 게 흥미롭다.
새들은 대개 착하고 부지런한 게 사실이다. 법정스님의 글에 자주 나오는 쏙독새도 정겹다. “차가운 개울물소리에 실려 어김없이 쏙독새가 쏙독쏙독 하고 한참을 울어댄다. 달밤이나 새벽에 많이 우는 쏙독새를 일명 머슴새 라고도 하는데 부지런한 이 새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대목을 읽으면 꼭두새벽에 나가 머슴새를 만나고 싶다.
그러나 미국 땅에서 가장 부지런한 새는 허밍버드가 아닌가한다. 한줌도 안 되는 몸을 꽃 앞에 곧추세우고 꿀을 빠는 모습을 보면 날개가 팔랑개비 같다. 초당 무려 오륙십 번을 저어대니 날개가 보이지 않는다. 날개를 사면팔방 돌릴 수 있어 방향전환도 총알 같다. 물론 체력 소모가 많아 하루 자기 몸무게의 두 배나 되는 꿀과 곤충을 먹어야 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겨울에 2천 마일을 캐나다에서 날아오는 이 작은 철새는 방향감각과 기억력이 비상하다고 알려져 있다. 꿀을 빤 꽃과 아닌 꽃의 위치를 며칠 후에도 정확히 알 정도라는 것이다. 길눈이 어두워 매번 골목을 잘못 드는 나는 새머리들이라고 얕볼 자격도 없다.
물론 새들이 다 착하랴? 까마귀 같은 흉조도 있고, 뻐꾸기처럼 조폭 수준의 얌체도 있다.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몰래 탁란(托卵)을 하는데 주인 새알을 밖으로 밀쳐 버리고 자기 알을 10초안에 재빨리 낳는다. 갓난 뻐꾸기 새끼도 에미 못지 않게 몰염치하다. 주인 집 알보다 2-3일 먼저 부화해 털도 안 난 등으로 주인새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왜 뻐꾸기는 탁란 해야만 할까? 오랜 세월 몸집은 커지고 다리는 짧게 진화되어 좁은 둥지에서 알을 품기 힘든 선천적 결함 때문이란 것이다. 사실 이런 기이한 뻐꾸기의 생존방식도 생태계에서는 작은 새들의 수를 조절하는 역할로 보고있다.
캐럴 발라드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자연을 자연에게 돌려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동임을 일깨워 준다. 어린 소녀 에이미가 늪지대 개발로 야생거위들이 떠난 뒤 버려진 알에서 깨어난 어린 거위를 돌보며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아빠와 함께 행글라이더를 띄워 드디어 하늘을 날 때 그를 어미로 알고 줄지어 따라가는 거위들의 비행은 행글라이더와 거위가 하나되는 장관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철새서식지를 되살리고 자연과 친화하는 것만이 인간성과 자연을 함께 회복하는 길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와 새들은 최악의 수난을 겪고 있다. 소위 조류독감 때문이다. 인류에겐 1918년 세계적으로 약 5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공포가 아직도 도사리고 있다. 일종의 조류 독감이었는데 현재 아시아에서 유행중인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와 변이 양상이 매우 흡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조류 독감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새에서 사람에게 바로 전염되기 시작한다면 약 4억의 인구가 목숨을 잃는 전대미문의 재앙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참 두려운 일이다.
사람과 새는 너무 가까워도, 또 너무 멀어도 안 되는 사이일까? 새들은 요즘 인간과 자연사이에서 「위태로운 비행」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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