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한국의 유신시절과 5공시절에는 국내에서도 반체제, 반정부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지만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도 한국 정치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운동이 활발했다. 한인사회에서는 한국의 독재정치를 비판하는 출판물, 정기 간행물도 있었고 때로는 한국의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도 있었다. 12.12와 5.18 등 무리한 집권과정을 통해 독재 권력을 잡은 전두환대통령이 방미 중 뉴욕에 들렀을 때는 숙소인 월돌프 아스토리아호텔 앞에서 한인들이 데모를 벌여 그는 호텔 지하주차장의 엘리베이터를 통해 객실로 올라가기도 했다.
이런 반한 정서와 시위를 YS와 DJ 시절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두 사람이 독재시절에 민주 투사로 인정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부를 독재정부라고 비판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대통령의 집권 이후 이런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노정부의 친북 좌경화와 북한의 인권탄압, 폭정에 대한 비판의 목청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플러싱 공용주차장 부근에 노무현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린 적이 있었다. 또 최근에는 피납 탈북 인권연대와 납북자 가족모임, 그리고 이들과 함께 한 한인들이 워싱턴 백악관 뒤의 공원에서 한일 납북자 송환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고 이어 뉴욕의 북한 유엔대표부 앞에서 시위를 벌였
다.
이러한 비판과 반대운동은 한국에서도 매우 활발하다. 이제는 보수단체를 구심점으로 하는 반 노무현 바람이 촛불시위로 여론을 일방적으로 압도했던 좌경 세력에 대응하는 큰 세력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젊은층이라면 무조건 좌경진보그룹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와는 달리 노정부의 친북좌경정책에 비판적인 젊은층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반독재운동과 마찬가지로 반친북, 반좌경운동도 국내의 운동에는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신념이 매우 투철한 사람들이나 정치적으로 정부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야당 정치인들이다. 그밖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이란 특정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정치권력의 압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마음 속으로는 정권이 나쁘다고 생각하더라도 손해를 보면서까지 반정부운동을 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한국의 국내문제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미국 시민권자인 한인은 한국의 국민이 아니며 영주권자라고 하더라도 생활기반이 미국이기 때문에 이미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을 강건너 불보듯 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인들에게 한국이란 나라가 아무 관계도 없는 남의 나라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시민권을 받았건 영주권을 받았건 한국은 한인들에게는 조국이고 고국인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만이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일본과 독도 분
쟁이 발생하면 한국 국내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흥분하는 사람들이 한인들이다. 월드컵에서 한국팀을 응원하는데도 국내의 사람들에 못지 않다. 그러니 한국의 국내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는 한국내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사건이나 대수롭지 않은 정책 등에 관해서는 우리가 말할 입장이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분야에서 열심히 하게 맡겨두
는 것이 좋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조국의 근본과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일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 사회정의를 지키는 일에는 국적이 따로 없다. 특히 우리 조국의 일인데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정부의 집권 이후 한국의 정치는 지나친 좌경화로 사회 전체가 혼란을 겪고 있고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또 북한의 북핵 카드, 인권 탄압, 독재정치에 대해 아무 말을 못하고 질질 끌려만 다녀 친북일변도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재미 한인들이 과거 독재시대처럼 한국을 향해 목청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목소리가 국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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