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믿어주는 부모와 가족이 있기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말 오후 퀸즈의 한 커피 전문점. 얼굴 한 가득 머금은 미소 때문에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감겨 버린 한 남학생이 들어섰다.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처음 만난 자리를 무척 어색해하면서도 상큼한 웃음을 잃지 않던 그 학생의 이름은 곽우용(17·미국명 케빈). 타운젠드 해리스 고교 12학년 졸업반이다.항상 미소를 지으며 사는 비결을 물었을 때 곽군은 뜬금없이 지난해 친구 30명과 함께 참여했던 30시간 기아체험 얘기를 꺼냈다. 우간다 아동을 돕기 위한 기금모금 차원에서 지난해 기독학생 클럽인 ‘Seekers’를 통해 30시간을 쫄쫄(?) 굶으면서 ‘내가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을 살고 있는지 너무나 큰 감사를 느꼈다’고 한다. 당시 30명이 기아체험으로 총 6,000달러를 모금해 월드비전에 전달했던 일은 고교생활에서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곽군은 친구들 사이에서 ‘행복한 아이’로 통한다. 잠시라도 웃고 있지 않으면 친구들이 걱정할 정도다. 자신의 가라앉은 기분 때문에 혹시라도 주변 사람들의 기분까지 망치게 될까봐 울적할 때면 혼자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달랠 만큼 사려가 깊다.
1세 때 미국에 이민왔지만 풍요롭게 마냥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만은 아니다. 군대에서 부상을 당한 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철없던 시절에는 친구들을 아예 집에 데려오지도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어느새 아버지를 이해하는 나이가 됐고 이제는 친구들이 곽군보다 아버지를 만나려고 문지방이 닳도록 쉴 새 없이 집을 찾아오고 있다. 개그맨을 능가하는 유머와 후천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밝은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가 그래서 지금은 너무나 자랑스럽다. 또한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살림 탓에 어릴 때에는 피아노나 바이얼린 등 갖가지 재능과 기술을 배우러 이리저리 학원 다니기에 분주한 친구들이 마냥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앨러지에도 불구하고 네일 업소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들 뒷바라지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오히려 부모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배웠다.
“부모님은 제게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내 자신이 지고가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셨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무엇을 하든 저를 늘 믿어주신다는 것, 그런 믿음을 주는 부모
님이 제 곁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든든한 힘이자 행복의 원천입니다”라고 말한다.
MS 74 중학교 시절 7학년 성적이 99점, 8학년 성적도 99.8점으로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기록했다. 뉴욕시 특수고교 입학시험에도 합격했지만 최고의 우등생들만이 누릴 수 있는 퀸즈의 명문 타운젠드 해리스 고교 입학을 결정한 것도 자신의 선택이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자
식에 대한 부모의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올 가을에도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과 코넬 대학에 일찌감치 합격해둔 상태지만 진학할 대학을 결정하는 것 역시 여전히 곽군의 몫으로 남아있다. 장래 외과의사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는 의예과를 전공한 뒤 의대에 진학할 예정이다.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외과 의사를 진로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아는 공부벌레는 결코 아니다. 재즈, 왈츠, 힙합 등 장르별 댄스에도 일가견이 있고 학교에서는 중·고교시절 내내 배구 대표선수로도 눈부신 활약을 했다. 남들이 대학 입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고교 11학년 때에도 학교에서는 배구선수로, 학교 밖에서는 뉴욕시 남학생 배구팀인 ‘Stellar’의 주전선수로 매주 훈련과 토너먼트 대회에 바삐 뛰어다녔다. 동시에 자신의 수학·과학 분야 재능을 살려 인텔 과학 경시대회도 준비했다. 개인학습지도 교사로 일도 병행하며 시간에 쫓기기도 했지만 성적 하락은커녕 오히려 학교 공부에 더욱 충실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열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곽군의 설명이다. 기회가 된다면 올림픽 배구선수로도 활약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췄다.
한 번도 밤을 새우며 벼락치기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으며 과목별로 나름대로의 흥미를 찾는 것이 학습효과를 높이는 자신만의 요령이라고 후배들을 위해 조언했다. 이외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기상예보관’으로도 유명하다. 왠지 모르게 날씨 예보에 관심을 많이 갖다보니 친구들이 오늘과 내일의 날씨는 물론, 한 주간의 날씨까지 꼬박꼬박 곽군에게서 챙겨 들을 정도가 됐다. 고교시절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한 친구들이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곽영석, 곽혜문씨 부부의 1남1녀 중 둘째.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후 멋진 외과의사로 성공해 있을 곽군과의 인터뷰가 기다려진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