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가장 기다려지던 잔치는 뭐니뭐니 해도 동네 어른의 회갑잔치였다. 잔칫날 찾아가서 큰 절 한 번 올리고 나면 적어도 그날만큼은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추억이 지금도 새롭다. 왜 생활 형편이 좋은 사람은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회갑잔치만큼은 그토록 성대하게 치렀을까?
1960년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52세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 시절에 부모님이 60세까지 사시게 되면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성대한 회갑 잔치를 해서 축복해 드릴만큼 경사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이미 77세를 넘어섰다. 이제는 회갑잔치는 고사하고 예로부터 드물다 해서 ‘고희(古稀)’라 불리는 70세 생일 잔치마저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기 쑥스러워 가족만의 조촐한 잔치로 치르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 의학의 발전 등을 생각하면 머지 않아 90세까지는 살아야 천수를 누렸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 한국인의 삶의 공식은 ‘30+30+α(알파)’였다고 할 수 있다. 즉, 태어나서 30년을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공부하고 취직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다음 30년은 부모들이 그러했듯 돈 벌고 아이 낳아 시집, 장가 보내면서 산다 . 환갑 이후의 생은 남은 삶, 즉 여생으로서 잠시 자식의 부양을 받으며 살다가 끝난다.
그런데 이제 이 삶의 공식이 바뀌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 평균수명이 90세까지 연장됨으로 해서 마지막 알파가 더 이상 여생이 아니라 알찬 30년이 될 가능성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 바뀐 인생의 사이클을 21세기 새로운 삶의 공식 ‘30+30+30’, 일명 트리플 30(triple 30s)으로 정의해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네 인생의 성패는 이 마지막 30년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 30년 동안 또 다른 30년을 준비해 둔 사람에게는 이 기간이 축복일 것이다. 시간적, 경제적 여유도 생기니 마음의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젊은 시절 일에 쫓겨 제대로 누리지 못했던 인생의 아쉬운 부분을 채워가면서 멋지고 보람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또 나보다 못한 이웃 사람들을 돌보는 나눔의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손자 손녀 돌보면서 힘들게 자식 키울 때와는 달리 느긋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동안 미처 준비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마지막 30년이 악몽 같은 기간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러면 자식들에게 부양 받으면 되지 않겠나 하고 생각할 독자분이 계실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세대가 노후를 맞을 때 과연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여성 한사람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숫자를 합계출산율이라고 하는데, 1965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6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1.2명 이하로 낮아졌다. 자녀가 여섯 명쯤 된다면, 그 중에 형편이 괜찮은 자녀가 있거나, 아니라도 장남에게 다른 형제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보조해 부모님을 모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이제까지 보아 온 효도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가정에 장남 또는 장녀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가족 먹여 살리고 자식 키우기도 힘겨운 현 세태에서, 하나 뿐인 자녀가 퇴직한 부모를 부양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참으로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현재 40~50대 세대를 일명 ‘낀 세대’라고 한다. 효도를 한 마지막 세대이면서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의미에서 ‘말초세대’라고도 불린다. 이렇게 따져보니 자식이 더 이상 마지막 30년의 노후보험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우리의 노후는 우리 스스로 준비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유명한 극작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에는 자신이 남긴 다음과 같은 유언이 쓰여있다고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69세에 노벨 문학상을 받고 90세가 넘게 살다 간 그의 말년은 결코 악몽이 아니었겠지만 , 우물쭈물 하는 동안에 노후는 소리 없이 우리의 발 밑으로 기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때 가서 아차! 하고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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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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