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벗이여. 김규련 선생의「개구리소리」라는 전원(田園)수필을 읽어본 적이 있으신 지요? 70년대 중반, 황간 백화산 기슭 벽촌에서 교편을 잡으실 때 쓰셨다는 글입니다. 그 곳은 추풍령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산길을 겹겹이 돌아 겨우 당도할 수 있는 산골이라지요.
이 글을 놓고 운정 윤재천 교수는 자연 속에 선인(仙人)의 풍모가 피어난 걸작의 반열에 드는 작품이라고 평했습니다. 저도 마치 개구리소리가 귀에 들리듯 하고 산의 한기(寒氣) 같은 것이 몸에 번지는 감동 속에 읽었습니다. 가락도 없고 장단도 없이 그저 시끄러운 함성 같은 개구리 소리에서 열반의 경지를 느끼고 또 이를 은은히 드러내신 선생의 문정(文情)이 놀랍습니다.
“산골의 개구리는 진달래가 피었다가 지고 제비꽃이 논둑에 점점이 깔릴 무렵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개골개골 개골 가르르 가르르 걀걀 걀걀... 개구리소리에는 가락도 없고 장단도 없다. 그저 시끄러운 울음소리의 단조로운 반복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허허로운 빈 마음으로 가만히 들어보면 묘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설레 온다...
불가에서는 최고의 이상경을 열반(涅槃)이라고 한다. 열반이라 함은 번뇌의 불길을 불어서 끈다는 취소(取消)의 뜻이 아닌가. 개구리소리를 밤이 이슥하도록 혼자 듣고 섰으면 드디어 열반의 경지에서 불사선 불사악을 느끼는 순간을 맛보게 된다.... 문명의 소리가 동(動)이라면, 자연의 소리는 정(淨)이다. 그리고 개구리소리는 선(禪)일지도 모른다.”
벗이여. 미물의 소리를 통해 힘(動)과 마음(淨)과 정신(禪)을 꿰뚫는 선생의 통찰이 놀랍습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안타까운 것은 개구리소리가 점점 사라져 가는 사실입니다. 형도 아시다시피 1970년대부터 시작된 개구리 감소현상이 현재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지요. 코스타리카 같은 열대 중남미는 물론, 미국, 캐나다에서 멀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청개구리며, 황금 두꺼비, 노란 다리 개구리들이 일년에 10%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개구리가 생태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들의 파수꾼 같은 역할 때문이지요. 물과 뭍, 양쪽에 서식하는 양서류에다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한 피부, 그리고 다양한 식성으로 먹이사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 2억 년간 그 숱한 천재지변을 이기고 생존해 온 개구리가 왜 갑자기 실종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처음엔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지요. 개발로 늪지가 줄어들고 농약을 과다하게 사용한 까닭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산지대에서도 개구리들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에야 오존층 파괴로 인한 과다한 자외선이 개구리에게 치명적임을 알아냈지요.
그런데 최근엔 중남미와 아프리카 밀림 속의 개구리들까지 대량 죽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관찰 끝에 개구리 피부에 기생하는 곰팡이(Chytrid fungus) 때문으로 밝혀졌지요. 피부로 숨을 쉬는 개구리는 살갗에 구멍이 많고 늘 촉촉해야 합니다. 여기에 악성곰팡이가 서식하게 된 것이지요.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인류 모두의 큰 숙제입니다.
K형, 개구리는 왜 비오기 전에 우는지 아십니까? 옛날 할머니가 들려주신 청개구리 이야기엔 집 떠내려 갈 까봐 운다고 했지요.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비 오기전 습기로 피부가 촉촉이 젖어 기분 좋아 내는 소리라고 하지요. 언제부턴가 그 피부에 곰팡이가 기생해 숨을 못 쉬고 죽어간다니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선생은 예언처럼 글 속에서 물으셨습니다.”이제 자연의 소리는 차츰 문명의 소리에 밀려나고 있다. 개구리소리는 더욱 그렇다. 문명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조화를 잃을 때 인간 세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개구리 울음이 그친 이 세상에서 과연 인간들만이 누릴 열반의 기쁨이 남아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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