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나는 고래입니다. 북극에서 캘리포니아 연안을 자주 거쳐가는 험프백(humpback) 입니다. 유영할 때 등이 혹처럼 굽는다고 붙여진 이름이지요.
노래는 내 특기입니다. 자랑 같지만 바다의 성악가라고도 불리지요. 상사병에 걸린 수컷 친구들과 짝을 찾아 애절히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주곡목입니다. 사실 우리 고래들 사이에선 신곡이 유행하기도 하는데 얼마전 호주의 해양학자가 알아채곤 말았습니다.
우리 고래들은 춤도 잘 춥니다. 성격이 밝고 명랑한 편이지요. 나도 온 몸을 공중으로 솟구쳤다가 물보라를 튀기며 낙하하는 회오리 춤을 좋아합니다. 우리들의 힘은 꼬리지느러미(Fluke)에서 나오지요. 수평으로 달려있어 상하로 움직입니다. 물고기는 수직으로 달려있고 좌우로 흔들지요. 그래서 우리 고래들이 물고기보다 추진력이 훨씬 강합니다.
잘 아시지만, 우리는 수염고래에 속합니다. 이빨고래들보다 비교적 몸이 크고 점잖은 편이지요. 돌고래 같은 이빨고래들은 일부다처이지만 우리 수염고래들은 일부일처를 견지합니다. 고등동물이란 자부심이 크지요. 게다가 우리들은 사냥도 지능적으로 합니다. 한번에 1톤 정도의 크릴새우를 먹어야하기 때문에 재빨리 맴을 돌아 만든 공기방울을 이용합니다. 크릴들이 공기방울과 함께 위로 뜰 때 우리들은 큰 입을 벌리고 쓸어 담지요.
이런 성향들과 지능을 보면 우리는 사람과 많이 닮았습니다. 모성애가 강한 포유동물로 새끼들을 애지중지 키우는 것도 비슷하지요. 그러나 옛 포경선들은 새끼고래를 먼저 잡곤 주위를 돌며 안타까이 우는 어미 고래들을 손쉽게 포획하는 잔인한 짓을 했습니다. 같이 새끼 키우며 살아가는 처지에 이런 인간들의 잔학성은 참 불가사이 합니다.
우리 수염고래의 왕초는 이 세상에서 제일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 (Blue whale)입니다. 몸길이 약 25미터에 무게가 100 - 200톤. 저보다 너 댓 배나 커서 대왕고래라고도 불리지요. 보통 백세까지 삽니다. 그런데 이젠 4, 5천 마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기름이 많고 용연향이 있어 주 사냥감이 되었던 향유고래(sperm whale)도 19세기 초 만해도 150여만 마리나 서식했는데 지금은 다른 고래들처럼 멸종위기에 처해있지요.
고래들이 자꾸 줄어드는 이유는 옛날엔 물론 포획이었습니다. 1962년 한해만 약 7만 마리를 죽였지요. 우리 동족들은 포경선의 작살을 수십 차례 등에 맞고 폐와 숨구멍으로 붉은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며 고통 속에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근래 와선 우리의 먹이인 크릴새우와 플랑크톤이 빠른 속도로 바다에서 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해양학자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이라고 하지요. 바닷물의 온도가 올라가 위 아랫물이 섞이는 업웰링 현상이 중단되면서 먹이사슬이 파괴된 탓이라고 합니다. 매우 걱정스런 공해문제입니다.
또 하나 심각한 것은 어부들이 곳곳에 쳐놓은 어망(漁網)에 얽혀죽는 위험입니다. 제 체험담을 들어보세요. 작년 겨울, 샌프란시스코 외곽 연안을 지나다가 게잡이 어망에 걸렸습니다.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 수록 내 몸은 자꾸 바다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숨을 쉬지 못해 고통이 엄청났지요. 그 때 갑자기 환경 지킴이 청년들이 나타나 내 몸에 얽힌 어망을 잘라내기 시작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구출한 것이지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쉰 뒤, 배에 탄 청년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한 사람, 한 사람 가볍게 그들의 손등을 내 입으로 다독였습니다. 2005년 12월 14일자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컬엔 내 구조 장면과 함께 한 청년의 소감이 실려있었습니다. “내가 어망을 그 험프백 고래의 입에서 잘라내는 동안 그의 눈은 사랑과 감사의 빛을 띈 채 나를 끝까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풀려 난 고래가 다시 바다로 춤추며 가는 모습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포유동물의 귀향(歸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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