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부 한국 정치인들 사이에 돈과 정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고 한다. 돈이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청빈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가 그 논쟁의 요지다.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지려면 권력이 부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가 공유해온 문제의식이다. 그렇지만 부패와 금권정치를 방지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동서양간에 재미있는 차이가 있다.
동양에서는 자고로 관리가 청빈, 즉 깨끗하고 가난해야만 유교정치의 이상인 ‘왕도정치’가 이루어 질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에 대한 유혹에 빠져서 권력을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사용한다면 ‘공명정대’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유가에서는 올바른 정치를 위해 정치인들로부터 높은 도덕성을 요구해왔다.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기 자신을 먼저 다스릴 수 있어야 남을 다스릴 수 있다는 이론이다. 훌륭한 정치인은 가난을 명예롭게 생각하는 그야말로 돈을 돌 보듯할 줄 아는 군자여야 한다.
반면에 서양에서는 옛부터 돈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금권정치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다. 이미 개인 재산이 있는 사람은 권력을 잡더라도 그 권력을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악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그들은 우선 정치(politics)와 경제(economics)의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였다. ‘이코노믹스’는 ‘이코스’(oikos) 즉 집안/가계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일컬었다. 집안에서는 ‘가부장’(despot)이 가족과 노예들을 부려서 노동을 시킴으로써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한다.
이처럼 ‘전제권력’을 휘두르는 가부장이 경제를 잘 운영하여 잉여를 창출하면 그는 잉여가 가져다주는 ‘여가’(leisure)를 이용하여 정치가 이루어지는 ‘폴리스’(polis)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그리고 폴리스에 진출한 이들은 더 이상 가부장이 아닌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며 서로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면서 ‘폴리틱스’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폴리틱스는 돈을 철저하게 배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은 폴리틱스란 돈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그리스인들이 현대인들에게 물려준 대표적인 유산인 민주주의와 올림픽스포츠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웅변과 연설, 토론 등의 수사학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서사시, 비극, 희극, 역사 등 인문학적인 지식을 매우 중시하였다. 모두 돈과는 상관없는 것들이다.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제전은 아마추어 정신을 구현하는 장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운동경기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여가시간에 갈고 닦은 기량을 공명정대하게 평가받는데서, 그리고 참여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았다.
고대그리스인들은 돈 때문에 하는 일은 가치가 떨어지는 일인반면 돈과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의미있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하였다.
요약하자면 동양의 정치가 청백리의 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면 서양의 정치는 경제적 여유를 가졌기 때문에 돈과는 상관없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시민을 이상으로 삼았다. 모두가 가난한 상황에서 권력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이권을 물리치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국민 대부분이 경제적 잉여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중산층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서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하지 않을 만큼 경제적인 기반을 갖춘 시민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주의 사회가 돈이 없는 사람만 정치에 참여하도록 한다든지 돈 자체를 죄악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심 없고 공명정대한 청백리 역시 여전히 유효한 이상이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더 많은 이권을 챙기고 또 돈으로 권력이나 표를 사려고 하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돈과 정치의 고리를 끊으려는 동서양의 해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다.
함재봉
USC 한국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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