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 프랑스 혁명이 터지자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당시 29살이었던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그 날 새벽에 살아 있다는 것만도 행복이었고 젊었다는 것은 천국 그 자체였다”(Bliss was it in that dawn to be alive. But to be young was very heaven!)고 노래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혁명에 대한 짝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전쟁과 사회 혼란이 계속되자 그의 희망은 환멸로 바뀌었다.
1776년 미국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영국의 국회의원이었음에도 이를 지지했다. 그러던 그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180도 태도를 바꿔 이를 규탄하는데 앞장섰다. 사람들이 그의 이율배반을 비판하자 그는 미국 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전통과 관습을 이어받아 영국인으로 타고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과거와 단절한 채 몇몇 지식인의 머리 속에서 나온 추상적인 관념을 이상으로 내걸고 체제를 뒤집었다며 그 결과는 지상낙원이 아니라 유혈참극과 독재로 끝날 것으로 내다봤다.
처음 그를 비웃던 사람들도 프랑스의 혁명 상황이 그의 예측과 비슷하게 돌아가자 그를 다시 보게 됐다. 각 나라의 정치 현실은 소수 이상주의자의 꿈이 아니라 과거 오랜 세월 쌓여온 역사와 문화가 좌우하는 것이며 따라서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고 이를 강제로 바꾸려 하는 것은 비극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은 정치적 보수주의의 근간이 되는 믿음이다. “모든 국민들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드 메스트르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1991년 봄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이던 시절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몰아낸 미군은 손만 내밀면 이라크를 점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어째서 사담과 같이 흉악 무도한 자를 간단히 처치해 버리지 않고 가만 놔두는지 의아해 했다. 그 후 15년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대답을 아들 부시가 해주고 있다. 이라크 사태가 내전으로 치닫지 않고 있으며 호전되고 있다는 부시 행정부의 주장에도 불구, 여야 지도자와 국민들은 이를 믿지 않고 있다. 친미파로 임시정부 수반을 역임했던 알라위는 “하루 50~60명의 이라크 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이것이 내전이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라크 침공 3주년이 되는 지금 미 국민의 55%는 이라크는 결국 내전으로 귀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안정된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보는 사람은 40%에 불과했다. 이라크 전쟁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37%,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60%였다.
이번 이라크 전은 소위 ‘네오콘’으로 불리는 지식인들의 성원과 정통 보수파의 반대 속에 치러졌다. 네오콘들은 대부분 개과천선한 ‘진보적 지식인’들로 이뤄져 있다. 전통적 보수주의가 전통을 중시하고 “잠자는 개를 차지 말라”를 모토로 삼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네오콘들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미국식 체제로 세계를 개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를 고치라’(tikkun olam)는 유대교의 가르침이 이들의 지상 명령인 셈이다(실제로 네오콘의 상당수가 유대인이다).
이라크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상황은 처음 지지자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북쪽 쿠르드족들은 안정적인 자치를 누리고 있고 합법적인 정부를 세우기 위한 선거 등이 치러졌지만 이것만으로 수만 명의 미군 사상자와 그보다 더 많은 이라크 사상자, 무엇보다 내란으로 치닫고 있는 이라크 정국을 수습하기는 역부족이다.
처음 이 전쟁을 지지했던 지식인들도 속속 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현 미국 보수파의 대부로 불리는 윌리엄 버클리 주니어,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명 칼럼니스트의 하나인 앤드루 설리번 등이 그들이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라크 싸움에서는 정통 보수파가 네오콘에게 일단 승리한 것 같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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