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파티 효과’라는 말이 있다. 큰 홀에서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그룹 지어 웃고 떠들고, 왔다 갔다 하는 칵테일 파티장 - 웅성웅성, 하하하 … 온갖 잡음들이 칵테일처럼 뒤섞인 소란스런 환경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속에서 어려움 없이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 저편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 용케도 알아듣고 그쪽을 돌아보게 된다.
무성한 소리다발 속에서도 자신과 상관 있는 소리를 찾아내 듣는 이런 현상을 ‘칵테일 파티 효과’라고 한다.
우리 가족과 오랜 친구였던 백인 할머니가 오래 전 아들의 합창 공연을 보러 간 이야기를 했다. 해군 합창단원이었던 아들이 200명이 넘는 단원들과 무대에 서서 합창을 하는데, 할머니는 그 아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는 ‘지나친 아들 사랑 탓’이라고 웃어 넘겼지만 칵테일 효과를 적용하면 할머니의 착각이라고 단정할 수만도 없다. 사람은 자기와 관계 있는 정보,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를 가려내 들을 수 있는 인지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과학적 근거와는 별도로, 나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끈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와 ‘너’를 이어서 ‘우리’로 만들어 주는 끈이다. 아픈 너를 보면 내가 아프고 기쁜 너를 보면 내가 더 기쁜, 그래서 하나가 되게 하는 끈 덕분에 우리는 인생 길을 외롭지 않게 간다.
새해의 신선했던 각오도 시들해진 3월, 우리는 단체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무료하게 흘러가던 시간의 흐름 한 모퉁이에 환호하고 흥분하고 감동하는 가슴 벅찬 시간들이 숨어 있었다.
지난 한 주 한인사회는 멕시코, 미국, 일본을 파죽지세로 물리치며 승승장구하는 한국 대표팀의 야구경기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국이 이겨서 신나 하다 보면 다음 경기, 그 경기에서 또 한국이 이겨 신나 하다 보면 또 다음 경기 … 그렇게 한 주가 지났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라는 낯선 대회는 어느새 월드컵만큼이나 친근해졌다.
우리는 왜 그렇게 흥분했을까. 경기를 어느 채널에서 볼 수 있는지, 경기장 티켓은 어디서 살수 있는지 신문사로 문의가 쇄도했고, ‘같이 봐야 더 재미있다’며 대형 TV 갖춘 식당마다 손님들이 몰렸고, 애나하임 에인절스테디엄에는 사상 최대의 한인관중이 각지에서 밀려들었다.
그리고는 나와 하등 상관없는 박찬호가 던질 때 내 손에 땀이 나고, 일면식도 없는 이종범이 때릴 때 내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경험을 했다. 한국팀이 득점을 하면 너무 흥분해서 생면 부지의 옆 사람과 얼싸안아도 어색하지가 않았다. 민족이라는 끈이 너와 나를 묶어 ‘우리’라는 혼연일체를 만들어낸 결과이다.
미국이 15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패해 4강에서 깨끗이 밀려난 다음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존 도노반 기자는 이런 지적을 했다. 미국 팀이 ‘우리 고유의 운동경기를, 우리 땅에서, 우리편인 심판을 가지고도’참패한 원인은 ‘열정 부족’이라는 것이다.
미국팀이라고 이기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지만 기어이 이기겠다는 의지, 승부에 대한 집념에서 한국을 비롯한 4강팀에 훨씬 못 미쳤다고 그는 분석했다. 승리를 위해 너나 없이 하나로 뭉치는 ‘우리’ 의식이 미국 팀에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미국이며 일본에서 뛰다가 조국의 대표로 뛴다는 가슴 뭉클함 때문이었을까, 이번에 특히 똘똘 뭉쳤다. 선수들이 한 몸처럼 자연스럽게 팀웍을 구사했다. 거기에 역시 ‘우리’로 뭉친 수만 한인 관중들의 응원 열기가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인생도 운동경기처럼 응원이 필요하다. 하나로 뭉친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경기장에서 내가 뛸 때 같이 뛰고 내가 싸울 때 같이 싸워주는 ‘우리’는 몇이나 될까. 우리 집, 우리 학교, 우리 교회, 우리 이웃, 우리 나라 …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우리의 인연으로 살지만 진짜 ‘우리’는 많지가 않다. 나를 허물고 너에게로 가는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하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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