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전 동네의 하드웨어 전문점 ‘홈쿼터’가 점원 부족과 불친절로 소비자들을 골탕 먹이더니 결국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어느 날 ‘크로스로즈 커뮤니티’(Crossroads Community) 교회가 들어선다는 사인이 세워지더니 공사가 시작되었다.
2년여전 대여섯 가족이 동네에 안내지를 돌리면서 시작한 교회여서 그렇게 큰 땅에 교회를 세우는 게 의아스러워 공사현장을 눈여겨보았다. 몇달의 내부공사를 하고 밖엔 새 페인트만 칠하더니 예배를 시작한다는 사인이 걸렸다.
방문하라는 권유속에 호기심을 키우던 어느 일요일, 그 교회로 나섰다. 교회 입구의 큰길에서부터 수많은 차량에 밀려 꼼짝하지 못하다가 주차원의 지시로 3,000여대의 차량 속에 주차할 수 있었다.
공항처럼 생긴 로비에 각종 고급 커피가 담긴 10여개의 보온병이 늘어선 커피 바가 서너군데 있었다. 그 앞엔 어른들이, 어린이들은 탄산음료수를 내는 기계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남들처럼 커피를 들고 예배실에 들어서던 난 멈칫했다.
마치 콘서트 홀처럼 조명이 현란하게 비춰지는 무대 위에서 밴드가 연주를 했고, 4,000여석을 메운 사람들이 몸을 흔들며 가수와 함께 노래를 하고 있었다. 어떤 자리엔 테이블까지 있었다.
무대 양쪽의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글 속에서 ‘God’이란 단어를 찾아낸 다음 컴컴한 복도를 엉금엉금 지나 빈자리를 찾았다. 푹신하고 넓은 극장식 의자 주위엔 성경책, 찬송가책, 헌금봉투 놓인 곳은 없고 커피 컵 놓는 곳만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청바지와 골프 셔츠 차림의 젊은 목사가 공구 허리띠를 차고 무대로 뛰어나왔고 스크린엔 교회의 예산 내역이 비춰졌다. 근처에 사놓은 부지에 세워질 교회 부속건물의 예산이었다. 그는 건축을 맡은 유명 설계사를 백만장자라 소개하면서, 2,400만달러 예산 중 반만 모금되었으니 열심히 모금하자며 헌금순서를 알렸다. 헌금주머니가 돌려졌다.
목사는 부동자세로 노트를 거의 읽다시피 하는 동네의 교회 목사들과 달리, 노트는커녕 즉흥적으로 하듯 편한 말로 힘차게 설교를 시작했다. 무대를 휘저으며, 널빤지도 썰고, 못질도 하면서 삶을 건축에 빗대는 설교였다.
교인들은 중간중간 스크린의 가사를 보며 밴드에 맞춰 찬송가로 분류하기 힘든 찬송가를 불렀다. 예배 후 보니 교인의 대부분이 놀랍게도 20~30대들이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로 보였다.
최근 7~8년동안 미 전역 곳곳에 ‘크로스로즈 커뮤니티’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 이 신형 교회들은 리빙룸에서 몇가족의 첫 예배로 시작했지만 금방 교인의 수, 특히 청소년 교인의 수를 엄청나게 늘렸고, 외형은 가건물 식이지만 실내는 고급 콘서트 극장식 교회를 짓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교단의 구별없이 하나님을 성경 문자대로 믿으며 이웃과 함께 ‘쿨’한 현대식 삶을 추구한다.
‘쿨’한 건물에서 ‘쿨’한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며 ‘쿨’한 목사의 ‘쿨’한 설교를 듣는 동안 나를 위해 죽은 예수의 고통과 그의 단벌 옷자락 끝이 스치며 흘려주는 사랑의 고귀함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것은 내가 ‘쿨’하지 못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페어 트레이드 커피’(Fair Trade Coffee)가 생각났다. 커피 값의 대부분이 중간상인 몫이 되기 때문에, 농부에게 많은 수익을 돌리기 위해 북미 NGO가 산지의 지도자들과 함께 커피와 농부의 생활의 질을 검토하면서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커피다. 그런데도 몇년전 갔던 니카라과의 커피농장엔 아직도 10평 남짓한 흙바닥 오두막집에 20여명의 남녀노소가 가구 하나 없이 비참하게 살고 있었다.
교인이 6,000명에 달하고 주일 아침예배만 3번이어서 커피 소비량이 엄청날 터이니 이 커피를 안 쓰고 있다면 권해야겠다는 생각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설명을 한참 듣고 난 그는 관심 없다며 뚝 끊어버렸다. 성경공부는 물론 미술, 음악, 사교댄스, 재테크 등 수십개의 모임으로 이웃과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이 교회로선 남미의 이웃이 너무 멀었나보다.
김보경
북 켄터키 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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