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PD들이 선정…
’저음 가수’ 이수근 ‘별난 남자’ 김범용 ‘걸쭉한 걸’ 윤지영
개그맨들의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방송 3사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KBS 2TV ‘개그콘서트’,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MBC ‘개그야(夜)’에 출연 중인 개그맨들은 각각 생존을 위해 타 프로그램뿐 아니라 같은 프로그램의 동료들과도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 치열한 경쟁 속에서 프로그램의 ‘간판’으로 인정받고 있는 개그맨들은 누굴까? 각 프로그램 연출자들이 ‘왕 중 왕’으로 꼽은 개그맨들을 만났다.
# ‘개그콘서트’ 이수근
KBS ‘개그콘서트’ 김석현 PD=이수근이 주도하는 ‘고음불가’는 방송 3사 개그프로그램 코너 중 최고라고 자부한다. 아이디어와 연기력이 탁월하다. 개인 신상에 불미스러운 일도 있었는데 훌훌 털어버리고 제 자리를 확고히 잡은 점이 더욱 기쁘다.
세명의 개그맨이 무대 위에서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번’을 부른다. 처음 노래를 부르는 것은 좌우에 선 두 사람이다. 수준급 노래 실력에 객석에서는 감탄이 터진다. 그러나 가운데 선 키 작은 남자가 ‘와이 와이 와이’ 라는 부분에서 얼토당토 않은 저음으로 끼여들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개그콘서트’의 ‘고음불가’ 코너가 웃음을 이끌어 내는 공식이다.
이 코너의 리더는 키 작은 남자 이수근이다. “행사 진행을 맡아 몇차례 노래를 불렀는데 고음 처리가 안될 때 사람들이 웃는 것에 착안해 이 코너를 기획했어요”라는 게 이수근의 설명이다. 이 코너 덕분에 이수근은 ‘개그콘서트’의 간판으로 떠올랐다. 지금은 가수들이 “우리 노래를 불러달라”며 요청을 해올 정도가 됐다.
이제 전성기를 맞았지만 이수근은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수근의 데뷔작은 지난 2000년 촬영된 영화 ‘선물’이다. 극중 무명 개그맨 이정재의 라이벌로 개그맨 김병만과 함께 등장했다. 이후 ‘개그콘서트’에서 러브콜을 받고 출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밋밋한 외모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도 항상 주변에 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초 ‘신 동작그만’에서 브라보 병장으로 인기를 얻던 찰나에 불미스런 일로 방송을 떠났다. 무혐의 처분을 받고 ‘개그콘서트’에 복귀하기까지 7개월여가 걸렸다.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니 ‘이대로 무너지면 안되겠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잠도 안자고 아이디어를 짜냈죠.”
아이디어에는 자신이 있다는 이수근이다. 이수근은 “다시는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개그맨으로서 평생 팬들 옆에 남아있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웃음을 찾는 사람들’ 김범용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박상혁 PD=‘누구야’ 코너에서 미운 역할인데도 귀엽게 보이도록 소화하는 것은 김범용이기에 가능한 연기인 것 같다. 애드리브 실력도 뛰어나다. 개그뿐 아니라 MC 등 다른 분야에서도 빼어난 활약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누나랑 내가 떡볶이 집에 가서 쫄면사리 추가한 지 100일 되는 날이야.”
정말 별걸 다 기억한다. 연상의 연인에게 애교를 부리면서도 이 같은 기억력을 바탕으로 “나랑 그런 적 없는데 그럼 그 남자는 누구야?”라며 의심을 한다. ‘웃찾사’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누구야’ 코너의 김범용이 그 주인공이다.
실제로도 김범용은 ‘별걸 다 기억하는 남자’다. 올해 서른살인데 초등학교 교가와 1~6학년 담임선생님, 짝꿍의 이름까지 기억한다. 그러나 이 같은 기억력만으로 ‘누구야’ 코너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이 코너의 결정적 아이디어는 1년6개월여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제공했다.
“여자친구가 어리광과 애교를 많이 떨거든요. 그걸 개그에 인용했죠. ‘3초만에 후회할 짓을 왜 해요. 이유 10가지만 대봐요’라는 대사도 말싸움을 하다가 여자친구가 한 말이에요.”
이쯤 되면 김범용에게 여자친구는 그야말로 ‘복덩이’다. 여기에 김범용의 끊임없는 노력이 보태졌다. 일상 대화 속에서도 재미있겠다 싶은 말은 휴대폰에 문자메시지로 저장해 놓는다. 또 연기가 안된다 싶으면 비슷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비디오를 보며 연구를 한다.
하지만 인기를 얻으면서 부담이 늘었기 때문일까? “전에는 후배들에게 근엄한 선배였는데 지금은 ‘누구야’에서처럼 애교가 늘고 있어요. 또 여자친구와는 PC방에서 데이트를 하며 ‘웃찾사’ 게시판만 보고 있어 ‘‘웃찾사’랑 사귀어라’라는 핀잔도 듣네요”라는 한탄도 했다.
그럼에도 김범용은 ‘누구야’ 코너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보통 연인이 등장하는 코너는 연인사이에서 끝나잖아요. 하지만 시청자들이 사랑해 주는 한 이 코너를 계속 하고 싶고, 더 나아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은 후에 아기까지 의심하는 것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 ‘개그야’ 윤지영
MBC ‘개그야’ 노창곡 PD=윤지영은 무대를 장악하는 파워가 있다. 걸쭉한 대사의 톤이 개성 있고 좌중을 압도한다. 외모도 호감형이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개그야’의 간판이다. 이경실, 조혜련 등을 잇는 개그우먼으로 성장을 보증한다.
남자들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못하겠다는 일에 “난 해! 내가 해!”라고 외치며 대범하게 나서는 여자가 있다. ‘개그야’의 ‘안해 안해’ 코너에 출연 중인 윤지영이 그 주인공이다.
윤지영은 ‘안해 안해’ 코너에서 허스키한 목소리와 남자들에 뒤질 것 없는 과격한 연기로 승부수를 띄워 방청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덕분에 ‘개그야’가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단숨에 올해 방송연기대상 신인 개그맨상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방송 출연은 이제 시작이지만 대학에서 코미디 연기를 전공했고 3년여 간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개그 공연을 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안해 안해’ 코너도 대학로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검증을 받은 코너다. 윤지영은 “대학로에서 이 공연을 보고 ‘나도 개그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개그공연 극단에 가입한 팬도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제 안방 시청자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윤지영은 요즘 하루하루가 신난다. 방송이 새로운 환경인 만큼 어색하고 동료들과 밤늦도록 아이디어를 짜는 것도 쉽지는 않을 텐데 즐겁기만 하단다.
윤지영은 개그맨으로서의 자질을 진작부터 인정받았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던 덕분에 고교 3년간 인기투표 만으로 내리 반장을 했고 3학년 때는 학생회장까지 했다. 학교에서는 이미 인기 개그맨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김은구 기자 kingko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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