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 관련 부패 스캔들이 계속 핫 뉴스이다. 아브라모프 스캔들이 보도되면서 자주 뉴스에 나오는 용어가 K-가(K-street)다. K-가 스캔들, K-가 프로젝트, 또는 K-가 문화 등 용어가 자주 나온다.
K-가는 워싱턴 DC의 백악관 서북쪽에 위치한 거리 이름이다. K-가는 동서로 달리고 있는데 백악관에서 세블럭 북쪽에 위치하고 있고 남북으로 달리는 15가와 25가 사이의 K-가가 가장 번잡한 거리로 사무실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엔 관공서, 국제기관, 변호사 사무실 및 로비업체들이 밀집해 있으며 언제부터인가 K-가 하면 로비업체를 말하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워싱턴 DC는 연방정부 소재지인 만큼 도시에 많은 정부 빌딩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데 정부 부처가 늘어감에 따라 정부 청사만 가지고는 모자라 민간인 소유 빌딩에도 많이 입주해 있다. 바로 이 K-가를 중심으로 한 I-가, L-가, M-가까지 정부 여러 부처가 산재해 있다.
필자가 일하던 사무실은 18가와 M-가가 만나는 코너에 있었는데 점심 때 거리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가 연방정부 공무원이라는 것을 다 안다. 내가 인사 한번 한적 없는데도 나를 아는 것은 그럴 만한 근거가 있다.
DC 다운타운에 출퇴근하는 사람을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하면 장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민간업체(주로 변호사, 국제기관, 로비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과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다. 그런데 몇년전 워싱턴포스트에 민간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과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들이 입고 다니는 옷과 신발을 보면 구분이 된다고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소위 K-가 문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구분이다.
첫째,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정장을 하고 다니고 연방정부 공무원은 주로 평상복 차림으로 출퇴근한다. 따라서 K-가 근방에 점심때 나가면 넥타이를 맺는지 안 맺는지만 보아도 어디서 일하는지 알 수 있다.
둘째, 신발을 보면 민간기업 사람들은 신사복에 맞게 반짝반짝 광이 나는 신발을 신고 다니고 공무원들은 막일하는 사람들이 흔히 신는 편하고 질긴 신발을 신고 다닌다.
셋째, 공무원들은 주로 아침 7시나 7시30분에 출근한다. 따라서 정부 청사는 오후 4시에서 4시30분이면 거의 다 퇴근한다. 반면 사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출근이 주로 8시30에서 9시30분 이고 저녁 6시나 7시까지도 사무실이 분주하다.
넷째, 공무원들은 대개 11시30분∼12시30분이면 점심이 다 끝나고 빌딩 지하층에 있는 델리(거의 다 한인들이 운영한다)에 가서 값싼 그 날의 스페셜 메뉴로 때운다.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점심시간이 보통 1시∼2시30분이고 주로 흰 테이블 보가 깔린 고급 식당에서 칵테일로 느긋하게 시작하며 업무상의 거래도 이 점심시간에 많이 논의된다.
다섯째, 공무원들은 대개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기업체 사람들은 자가용으로 출퇴근해 빌딩 지하실에 파킹한다.
이외에도 연방정부 공무원과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분간하는 방법은 여럿이 있다고 한다. K-가의 문화가 이런데도 공무원들에게 물어보면 정부에서 일하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면 K-가의 자부심은 무엇일까?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전문직 공무원들은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크다. 자기가 담당한 일들이 직접 나라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4년에 한번씩 갈리고, 하원의원은 2년에 한번 오고가고, 장관도 바뀌지만 연방정부 공무원은 대통령이 누가 되건, 장관이 누구로 바뀌건 상관없이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다. 그래서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지수들을 발표하게 된다.
예를 들어 상무부의 경제전문가들은 국내총생산량(GDP)을, 노동부의 통계 및 경제전문가들은 소비자 물가지수(CPI) 및 도매물가지수((PPI), 실업률을 발표하고, 농무부에서는 농산물 수요공급 예측표, 재무부에서는 국제 수지표 등을 발표한다.
따라서 연방정부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자기네 이름이 미디어에 오르내리지는 않지만 무대 뒤에서 나라를 움직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30년간 연방정부에서 일하고 보니 이런 자부심은 K-가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진국
연방농무부
전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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