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어느새 겨울이 다 지나간 듯 주변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그러나 따뜻한 햇살이 시샘바람에 온기를 빼앗겨 몸과 마음은 여전히 시리기만 하다. 겨울의 긴 터널이 아직도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봄다운 봄이 어서 빨리 와야 할 텐데...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차갑게 불지라도 우리는 봄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나 봄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만 오고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는 그냥 스쳐갈 뿐이다. ‘모란이 피기 까지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김영랑의 시에서와 같이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는 찬란하고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는 슬플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온 길이 다 그렇지 않은가. 만리타향 먼 이국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며 살았을까? 그렇다. 우리가 기다린 건 분명 봄이었다.
그 기다리던 봄은 왔는데 따뜻한 봄볕을 가로막는 시샘바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게 불고 있다. 크게 보면 미국의 경제정책이 그것이요. 대 북한, 대 이라크 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리같은 소수민족에게는 이민정책도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보면 타민족과의 사이에
서 시달리는 경쟁도 우리에게는 시샘바람이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비즈니스가 잘 안 돼 불안 속에 사는 사람들, 건강을 잃고 병석에 누운 환자들, 자녀나 가족문제로 아픔을 겪는 한인들, 가족으로부터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들, 누구 하나 눈여겨 주지 않는 서류 미비자들, 이민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마음에 병든 사
람들,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는 실직자들, 생각지도 않게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이산가족 등, 이들 모두는 다 이제까지 따뜻한 봄을 기다리면서 살아왔고, 또 지금도 그 따스한 봄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해도 우리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아무리 좋은 경치라도 식생활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우리의 이민생활은 풍요롭지 못하다.
생활의 기본인 의식주가 해결돼야만 여유도 생기고 주변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때문에 기본만 해결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너도나도 다 출세하고, 돈도 더 벌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봄이 왔다고 좋아는 하지만 기지개를 켜기에는 아직도 봄은 우리에게 너무 멀다. 우리에게 진정 따뜻함을 주는 그런 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는 맨손으로 시간 투자하고 두 발로 뛰기만 하면 웬만한 것은
헤쳐 나갈 수 있었고 봉급이 적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맨손으로, 맨발로 열심히 뛰어도 되질 않는다.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이 요즘 생활이다.
물가는 오를 대로 올랐는데 수입은 반대로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점하다 시피 하던 비즈니스도 이제는 거의가 다 타민족의 유입으로 업종마다 우리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옛날에는 가발에서부터 이태리 사람들이 하던 야채 가게를 우리가 다 점령하다 시피 했고, 또
주이시나 그리스인들이 하던 세탁소도 우리가 거의 점령했고 하다못해 구두수선 가게도 한인들이 다 점유하다 시피 하였다.
그리스인들이 하던 델리도 우리 한인들이 거의 독점하다 시피 하였으며, 살라다 바나 네일업종의 경우 우리가 개발해서 한동안 우리의 텃밭으로 잘 닦아 놓았다. 그런데 지금 월남, 태국, 중국, 인도, 필리핀, 파키스탄 등의 민족들이 이 땅을 최근 몇 년 사이 많이들 침투했다.
예를 들어 이제는 어느 분야든, 독점이 아니라 네일 살롱은 월남인들과, 세탁소는 중국민족과, 잡화상이나 모텔, 개스 스테이션, 스테이셔너리 같은 곳은 인도계 사람들과 경쟁을 안 할래야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데도 과연 나에게 겨울의 긴 터널을 지나 화사한 봄이 올 수 있
을까? 반가우면서도 왠지 한구석에서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다리는 것이 봄이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 봄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김영랑씨의 시에서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라고 말했듯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면 될 것이다. 꽃 중에서 가장 큰 꽃, 모란은 반드시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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