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 사망1주기 맞아 들어본 ‘영원한 자유인’의 꿈과 노래인생
중경삼림의 임청하는 언제 비가 올지 또 언제 햇빛이 눈을 따갑게 할지 몰라 항상 선글라스에 레인코트 차림이다.예민한 사람들에게 선글라스와 레인코트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가 되기도 한다.록 아티스트 전인권은 낮이건 밤이건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 선글라스를 쓴다.
그땐 세상이 나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대마초 사건으로 마약 전과 4범인 그에게 선글라스는 소통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포즈였다.
전인권(52)을 만나다. 압구정의 ‘전인권 홍철규 club’에 먼저 도착해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사자 갈기처럼 한껏 부풀린 머리칼과 덥수룩한 수염,까만색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쓴 ‘전인권 스타일’로 오겠지.아니나 다를까 그는 축 가라앉은 머리 스타일만 제외하곤 예상한 그대로였다.
전날 지방공연을 끝내고 돌아와 삼청동 집에서 이날 오후까지 푹 쉬다가 오는 길이라고 한다.예전 같지 않게 의기 소침한 모습으로 ‘요즘 머리칼이 잘 서지 않는다’고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를 한다.‘이은주 사태’라 불리는 사건이 있은 후부터 말이다.
“은주와는 2000년 10월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나이 차이는 났지만 말이 잘 통하는 아이였죠.밤새 문자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친해졌고 제 공연 때는 늦게라도 와서 무대 위에 올라와 축하도 해주고 그랬죠.”
이은주는 이혼으로 힘들어 하던 그에게 또 다른 사랑을 알려주었던 존재였다.둘은 서로의 지친 영혼을 위로해주며 따뜻함과 격려,희망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던 사이.진한 우정이라면 우정이었고 또한 그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이었다.그들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났고 또한 이은주는 다름 아닌 전인권의 팬이기도 했다.
“은주의 자살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이 함부로 떠들어대는게 싫었어요.일부에선 정신질환 때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가족에게 그 책임을 돌리기도 하더라구요.산 사람도 이름이 있고,죽은 사람도 이름이 있는 거예요.”
전인권은 그 당시 인터뷰에서 미리 복선을 깔고 말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말했다.”은주를 사랑했다고.” 그리고 하루도 안 되어 ‘언론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처음 뼈저리게 느꼈다.그의 진솔한 한마디가 이은주의 죽음을 애틋하게 전하기는커녕 왜곡되어 네티즌의 온갖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황당했다.하지만 성과도 있었다.이은주의 죽음을 둘러싼 세상의 일부 오도된 시선이 그에게 쏠린 것만은 확실했으니까.일주일 후 그는 예정된 발리 여행을 떠났지만 여전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은주를 만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은주가 사람들이 많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달라는 거예요.그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어요.’얘는 연예인인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괜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면 은주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 있겠구나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사주겠다고 달랬는데….그때 오뎅 못 사준 게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그는 2월22일이 이은주가 죽은 지 일년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워 했고 그래선지 말을 아낀다.하지만 부끄럽지는 않다고 한다.
“사랑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거예요.만약 내 말로 불쾌했다면 노래로 보답하겠습니다.가수니까요.”
최근 ‘윤도현의 레브레터’나 ‘웃는데이’ 등에 출연하는 등 방송활동을 간간히 하는 그는 처음 해보는 코미디 연기는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전인권에게 또 다른 색다른 충격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창작 뮤지컬 ‘리어왕’이다.그는 리어왕을 맡았다.
“현대판 리어왕인데 리어왕은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거리의 노숙자가 되죠.뮤지컬은 해 본 적이 없어 거절했지만 이윤택 감독이 전인권의 원래 말투 그대로 해야 한다고 해서 승낙했습니다.”
이윤택 감독의 창작 뮤지컬 ‘리어왕’은 5월에 국립극장에서 막오른다.’리어왕’은 전인권의 말투,전인권의 노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간다.한마디로 ‘전인권 표’ 현대판 리어왕인 셈이다.리어왕을 맡은 그는 요즘 신이 난다.1막의 모든 역의 대사를 다 암기했을 정도다.
“리어왕이 노숙자여서 노숙자들과 2박3일 동안 생활할 거예요.그들의 삶과 생각을 알아야 연기를 하는데 이해가 금방 될 것 같아서요.사실 ‘거지’를 만나고 싶어요.‘거지’의 철학과 삶의 방식이 너무 궁금해요.왜 그렇게 사는지도 묻고 싶구요.”
전인권다운 답이다.노숙자 리어왕과 전인권의 이미지는 분위기상 새삼스럽지 않게 잘 맞는다.대사 하나 하나 전인권 어법대로 해야고 한다기에 요즘은 자신의 원래 말투가 뭐였더라,가끔 까먹는다고.
요즘 전인권을 설레게 하는 일과 행복하게 하는 일이 있다.드럼과 큰딸 인영이다.그는 요즘 초기 마이클잭슨 음악으로 다시 돌아가 드럼에 푹 빠져 산다.인터뷰 도중 탁자에 손을 올려놓고 드럼 연습을 하기도 한다.여자처럼 가지런하게 기른 손톱이 예쁘다.
그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전인권의 영원한 지지자 큰딸 인영 양 때문이다.“큰딸이 60대1의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세종대 미대에 합격했어요.딸이 원래 의상디자이너가 꿈인데 날 닮아 그림을 잘 그려요.” 미대에 편입학한 딸이 대견스럽기만 하다.“딸이 고3때 제가 이혼하는 바람에 그간 맘고생 많았는데 꿈을 위해 전진하는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고 그래서 행복하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등 돌리더라도 큰딸만은 ‘아빠 편’이다.그는 큰딸과는 매일 ‘사랑’을 하고 산다.딸 이야기를 할 때 철부지(?) 같은 그 조차도 어느새 ‘아빠 전인권’으로 돌아간다.
전인권은 최근 인생 설계를 다시 세웠다.노래 인생은 65세까지고 나머지는 외국에서 멋진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그러기 위해선 그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하겠단다.“유명한 점쟁이가 난 88세까지 산대요. 65세까지 노래 불러서 돈을 많이 벌 겁니다.”
그의 꿈은 노래인생의 말년 쯤에 뉴욕 무대에 서는 것이다.꿈을 위해 대마초도 도박도 딱 끊었다.적당히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 한다.야수 같은 머리는 그때쯤 올백으로 넘길 것이고 선글라스는 아마도 벗을 거라고.
그는 마지막 베팅의 스릴감이 뭔지 아냐고 묻는다.나로선 알 턱이 없다.“50이 넘으니 자신감이 생겨요.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여유도 생기고 요즘이 딱 마지막 베팅할 때의 기분인데 스릴있어요.살 만한 인생입니다.”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야생마 같은 전인권은 30년 동안 노래 인생 한 길만을 걸었다.그의 주변엔 소설 같은 인물들로 가득하며 그 또한 범상치 않은 존재다.예나 지금이나 ‘삼청공원의 왕족’이고 때론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며 불빛을 찾아가는 한 마리 부나방 같기도 하다.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하기 위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길 위에 선 그는 분명 ‘문제적 인간’이다.대부분 자신의 노래는 대마초에 빚졌다고 말하지만,우리는 자유와 희망을 갈구하는 그의 노래에 빚지고 있다.
복잡한 세상 살면서 더없이 복잡해질 때면 그의 노래는 이렇게 위로하곤 했다.그 특유의 어조로 ‘행진!앞으로!해가 뜨고 해가 져도 앞서다가 뒤서다가 돌고 도는 거라고.걱정말아요.그대여.’라고.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알 수 있었다.그가 누구보다 진실된 소통을 원한다는 것을.하여,이 록 가수는 상대를 볼 때 먼저 눈을 보며 이야기한다.그에게 말하고 싶다.세상을 향한 귀여운 반항은 그만 두고 반칙하지 말고 이야기하자고.선글라스를 벗고,서로의 눈을 보며. 그때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전인권 특유의 창법이 감질나게 나를 꼬셔댄다.’행진!’
/유혜성 주간한국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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