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인 타운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에 참석했었다. 인사말, 축사, 저자 소개 등으로 여러 명이 강단에 오르내리면서 30분 이상이 이미 진행된 후에, 책 내용을 소개하는 발표자가 10분 정도로 예정되었던 발표 연설을 40분 이상 하는 것이었다.
길어지는 연설에 80명 이상 모인 기념회가 술렁거리면서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시계만 쳐다보거나, 아예 행사 도중에 나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무리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주어진 시간 안에 간추려서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누가 다시 연설해달라고 초청하겠는가?
한번은, 한인 1세 중심의 작은 네트워크 단체의 회장단 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30여명이 모인 중에 타민족이 몇 명 안되고 참석자들이 주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았는데, 프로그램이 시작하면서 사회자가 갑자기 아직도 한국말이 훨씬 편할 것 같이 들리는 영어로 행사를 진행하니까 회장단이 약간 당황하였다.
영어도 서투르고 인사말도 어색하게 하는 장면도 불편했는데, 회장의 기조연설인지 인사말인지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치 전화로 친구한테 얘기 하듯이, 그것도 서투른 영어로 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자는 굳이 소수의 타민족을 위해 행사 전체를 무리하게 영어로 진행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얼마전 한인 단체의 행사에 다녀오신 분에게, 전체 행사를 완전히 이중 언어로 진행하여 행사 참석자들이 똑같은 말을 한국어와 영어로 반복해서 두번 들어야 하는 괴로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행사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서 무척 지루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행사 참석자 중 외국 손님은 별로 없었기에 한국말로 행사를 진행해도 별로 무리가 없을 것 같았고, 또 영어로 행사 진행을 했어도 참석자들이 그 정도 영어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완전히 이중 언어로 진행하여 무리가 있었다고 하였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5백명 이상 모인 한인 커뮤니티 비영리 단체 모금 행사에 타민족들은 2~3% 도 안되었는데, 이중언어 사회자가 한국어와 영어로 본인의 사회하는 내용 뿐만 아니라 행사 순서에 동원된 여러 명의 인사말, 축사, 기조연설 등 행사 전체 프로그램을 전부 영어와 한국어로 다시 반복하여, 길고도 긴 행사 진행에 질린 적이 있었다. 사회자가 마치 한국어와 영어를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는지 한 시간 반 이상 관중 앞에 자랑하듯 열심히 했건만, 잘못하면 사회자가 자기도취에 빠진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중 문화를 고려해 이중언어 행사를 고집해서 너무 길고 지루해지면 누가 다시 참석하겠는가? 크고 작은 한인 커뮤니티 행사의 독특한 해프닝들은 이중언어, 이중문화 혼동, 한인 커뮤니티의 시간 지키기 무감각, 대중 연설 이해 부족, 행사 계획의 경험 부족 및 전문성 부족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미주류 사회단체나 기업들은 행사가 크고 작건 간에 경험 많은 전문인 행사 계획가들이 마치 무대에 연극을 연출하듯이 2분 3분까지 쪼개서 행사 계획과 진행을 준비하고, 무대에 서는 연설자들의 정확한 시간 배정을 제일 중요시하여 행사를 짧고 간단 명쾌하게 하며, 또 모든 것을 주어진 시간내에 끝내는 것을 우선시 한다.
각 행사의 목적과 청중을 고려하여 한국어와 영어를 잘 병합해서 세련되고 지루하지 않은 행사 진행을 위해 사전의 치밀한 계획과 연습이 필요하며, 타운 내 작은 행사는 청중의 대다수가 한국어가 편할 경우 영어권 손님이 소수 있더라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옆 사람에게 대강 설명해주라는 부탁을 하고 한국말로 진행되어도 크게 실례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인 커뮤니티를 미주류 사회에 알리는 대형 행사는 영어로 진행하되, 간간히 한국말 인사나 축사가 끼어도 굳이 일일이 통역할 필요가 없이 미리 영어로 준비한 프로그램 책자를 참고로 하라고 부탁을 하면서 진행하고, 기존 연설자도 한국어를 전부 사용할 때에는 기조연설을 영어로 번역해서 프로그램에 삽입하는 방법도 있다.
행사 내용과 청중을 고려하여 이중언어 행사 진행이 꼭 필요한 경우는 동시 통역자가 헤드폰을 이용해서 통역이 꼭 필요한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게 하여 같은 내용을 이중 언어로 반복하는 것을 피하는 방법도 있다.
케이 송
USC 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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