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량(플러싱)
196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주의 한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던 동양계 남성이 경찰의 제지를 무시한 채 도망을 시도하다 진로를 차단하고 대기중이던 경관에게 체포되었다. 백인과 흑인 두 경관은 운전자를 포박하며 X할 노란둥이(F. Yellow Monkey)로 비하했고 이에 대해 언론은
부당한 인종편견이라고 비판했다.
뉴스는 중국의 석학 임어당 박사의 비위를 자극했고, 박사는 석학적 감각으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요약> 창조주는 당초 지구상에 단일 인종만 탄생시켜 분쟁 없는 영세낙원을 건설키로 했다. 전지전능의 영감을 살려 인간의 모상을 최첨단 기법으로 설계했고 흙으로 형상을 빚은 다음 만수무강의 비책으로 가열공법을 채택, 생명력과 체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화덕에 넣고 난 후 자신의 위대한 작품 구상에 조금은 상기된 나머지 자제능력을 잠시 잃고 서두른 탓에 탈색된 옥양목처럼 희끄름한 미완제품을 자초했다. 뒤늦게 제정신으로 돌아온 창조주는 아뿔사 “긴 장작이 웬말이냐 “라고 말하였다.
다시 하나를 빚어 넣고 시간을 조금 넉넉하게 잡았다. 결과는 당연히 오버쿠킹, 숯검정이 되었다. 이에 실망과 더불어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한 말은 ‘실패작’이라고 했다. 내친 김에 완전한 작품을 만들어야 된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어 두 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시도한 마지막 작품이 천혜의 이상형, 황색이었다. 매우 흡족한 창조주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대
했던 ‘성공작’이라고 기뻐하였다. 박사의 전말은 인류의 참된 주인은 황인종이고 여타는 덤으로 태어난 만큼 시비 걸지말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편견이나 차별과 같은 심리작용은 인류 공통의 분모라고 한다. 다만 개방지향 또는 그와 반대(폐쇄)의 문화와 환경여건에 따라 완만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심리학자의 견해도 있다. 강경일변도의 전형적 우리 민족성 또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다.
돌이켜 보면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쉴 틈 없이 외침에 시달리며 방어에 급급한 쇄국 지상주의는 다양한 이질문화 교류의 통로를 차단했고 폭넓은 교류와 체험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인격 도야의 훈련장을 앗아버렸다. 하지만 조상 탓으로 돌리며 과거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구태의연은 고립과 쇠락의 질곡을 피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지금 우리는 개방의 시대, 즉 화합과 협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나친 편견과 차별의식을 떨쳐버리고 글로벌사회에 동참해야 한다. 스스로 존경을 받으려면 상대를 먼저 챙겨야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에 익숙해져야 한다.
당연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첫 단추는 사회의 냉대 속에 사각지대에 버려져 학대의 포로로 신음하고 있는 혼혈 인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그들의 족쇠를 계속 조이고 있고 언제 풀어줄지 기약이 없다. 이러한 현실 앞에 우리 모두 죄인이고 속죄의 잔을 마셔야 할 때이다.
이들에게 평등한 지위와 사회 참여의 길을 열어주어야 함은 물론 미래가 보장된 가시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성공신화의 주역으로 연일 집중 조명을 받고있는 수퍼보울의 영웅 하인스 워드에 대한 한인사회의 열정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영광은 내 몫이고 굴욕은 남의 것으로 치부하는 이분법은 우리 사회에 편리한 전용물로 자리잡았고 지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인스는 유아시절(2세)에 아버지 나라 미국으로 건너와 혼혈의 핸디캡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극복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내의 혼혈인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다.어머니의 각별한 애정을 느끼며 자란 그는 자신의 출생지 한국에 대한 향수가 남다른 것 같다.
편견의 철옹성을 알고난 다음에도 지금의 심경에 동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긍정적 기대는 매우희박해 보인다.
하인스의 어머니(김씨)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생활고도 힘들었지만 정작 더 큰 고통은 남편의 피부색깔을 이유로 사회적 냉대와 압박에 밀려 친족까지도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 밖에 없었던 숙명적인 운명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
다.
우리 사회는 그녀의 심장에 칼집을 냈고 얼굴에는 노비의 철인을 박은 셈이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하인스 가족이 있다. 그들을 이제 우리의 품으로 껴안을 때이다. 편견의 요새를 허물자. 이러한 결단 없이 혈통을 챙기고 화합과 협력을 거론하는 것은 위선이요,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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