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인 은행계가 한국 정치판처럼 어지럽다. 원칙도 없고 신의도 없다. 너무 혼란스러워 현기증이 날 정도다. 심지어 ‘개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사들이 행장 갈아치우기를 밥먹듯 하더니 행장은 부임한지 1년도 안돼 경영위기 상태에 있는 은행을 내팽개치고 자기사업을 한다며 사표를 내던졌다. 또 다른 행장은 정치인처럼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더니 결국 이사들은 마음에 안 든다고 은행감독국에 진정서를 내 감사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아직은 앞만 보고 전진해야할 작은 한인은행에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가.
리더의 도덕성 부족이다. 이사들은 이사로서, 행장은 행장으로서 지켜야할 도덕이 있다. 도덕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원칙은 곧 선(線)이다.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은행 경영진들은 한결같이 이사들의 간섭을 하소연한다. 간섭은 각자가 지켜야할 선을 넘는다는 말이다.
1년전에 잡힌 은행 송년 모임을 이사장 일정과 겹친다며 행사연기를 지시하고 직원의 실수로 송년모임 안내장을 못 받은 이사가 ‘음모’라며 두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것은 간섭이다. 은행내 자체 심사에서 불가결정을 내린 대출을 이사들이 나서서 시행하라고 하고 일부 간부들에게 사적으로 보고를 하도록 하는 것 등은 이사로서의 원칙 선을 넘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약팽소선’(若烹小鮮)이 선정됐다. 노자가 이른 이 사자성어는 ‘치대국(治大國), 약팽소선’에 나오는 글귀의 일부로 ‘나라를 다스릴 때 작은 생선을 삶듯이 그대로 두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코앞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기며 삶아지는 작은 생선을 그대로 두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급한 마음에 빨리 삶아지고 잘 삶아지도록 이러 저리 데치고 싶다. 그러나 작은 생선을 이러 저리 데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과는 으깨지고 부스러져 먹지 못하고 만다.
이사들은 경영진을 믿고 맡겨야한다. 사소한 일까지 간섭하여 지치게 해서는 안된다. 척박한 이민사회에서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이사들의 시각에서 볼 때 경영진의 행태가 썩 마음에 안들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득함과 여유의 격식을 갖고 맛있는 냄새는 식욕을 돋구는 즐거움쯤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리더로서의 행장의 도덕성은 더 중요하다.
행장의 도덕성으로서의 선은 책임과 의무다.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요구하기에 권위와 부(富)도 동시에 제공한다.
“개인사업을 위해 사표를 냈다. 작년말에 그만둘려고 했으나 1년 결산을 마무리하는 것이 의무일 것 같아 지금 사표를 냈다”는 나라은행 양 호 행장의 사임의 변은 도대체 책임감 있는 행장의 말로 들리지 않는다. 부임한지 1년도 안돼 경영위기의 은행을, 그것도 개인사업을 한다며 사표를 냈다면 책임감 차원을 넘어 커뮤니티를 우습게 본 것이다. 차라리 18억달러 규모의 커뮤니티 2위 은행을 끌고 갈 힘이 부친다고 했어야 했다.
“1년 쉬다보니 은행에 있으면서 이렇게 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한 점도 있었다. 지금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벤자민 홍 행장의 복귀의 변 또한 금융계 원로로서의 책임감있는 말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수 많은 후배들의 존경과 환송을 받으며 은행계를 떠났다면 후배들을 위해 한 수 가르침을 주는 것 또한 선배들의 의무다. 지금하면 잘 할 것 같아서 또다시 행장자리를 차고앉는다면 한인금융계의 원로는 누구이며 리더는 누구인가.
경영진 스스로 선을 지킬 때 권위는 저절로 생겨난다. 행장이 가십성 뉴스를 부풀리며 떠들어대 ‘사우나 앵커’라는 소리를 듣고 이사들의 비위 맞추는 데만 급급해 직원들로부터 ‘2중대’라는 말을 들어서는 곤란하다.
한인 금융계가 이제 도약의 시대를 지나 주류은행과의 경쟁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내적인 질적 변화 없는 성장은 한계가 있다. 리더들은 아집과 편견을 버리고 서로 이해하고 섬겨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있다. 프로크루테스는 나그네를 집안으로 유인해 침대에 눕혀보고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죽였고 길면 머리와 다리를 잘라서 죽였다.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아집과 편견의 무서움을 말해주고 있다.
아집과 편견이 없는 주류사회에 우뚝 선 한인은행을 기대해본다. 그것은 한인은행 리더들의 몫이다.
권기준 부국장·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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