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건국 이념을 담고 있는 두 문서를 들라면 독립 선언서와 연방 헌법이 늘 뽑힌다. 독립 선언서가 인간의 자유와 평등, 행복 추구라는 미국이 추구해야 이상을 담았다면 연방 헌법은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해나갈 방법을 싣고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이상을 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좋은 뜻도 실천에 옮길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8년간의 독립 전쟁이 끝나고 파리 평화 조약이 체결된 1783년부터 연방 헌법이 제정된 1787년까지의 기간은 향후 미국 역사를 결정한 중요한 시기다.
미국은 처음부터 지금 같은 연방제 국가가 아니었다. 13개 주가 독립성을 유지한 채 국가 연합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들 대표가 모인 중앙 정부는 유명무실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 정부가 강해지면 독재로 흐른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됐지만 그런 식으로 몇 년 나라를 운영해 보니 세금은 걷히지 않고 돈 쓸데는 많아지는 바람에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를 메우기 위해 화폐를 마구 찍다 보니 인플레는 살인적인 수준으로 기승을 부리고 곳곳에서 농민 반란이 일어나는 등 사회 분위기가 흉흉했다. 더 이상 나라꼴이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한 몇몇 사람이 강한 중앙 정부 설립을 주장했고 그 열매가 현재 미국의 최고법인 연방 헌법이다.
이 헌법 초안자들이 가장 고심한 부분의 하나는 국방과 치안을 안심하고 믿고 맡길만한 강력한 정부를 만들되 어떻게 하면 이 정부가 국민을 탄압하지 못하게 할까 하는 문제였다. 고대 로마와 최근까지 유럽의 역사에 정통했던 이들은 누구든 장기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들이 그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 “야심(ambition)으로 야심을 견제케 한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의 선의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서로 권력을 잡으려는 야심가들을 대립시켜 서로를 감시케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인 부패 및 독재 방지 수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연방 정부의 3권을 분리하고 지방 정부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 것, 양당이 권력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한 것 모두 이같은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가장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미국의 성공은 인간의 본성을 올바로 파악하고 이에 근거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은 창업자들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연방 헌법의 초안자인 매디슨은 “인간이 천사라면 정부가 필요 없을 것”이라며 “정부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가장 위대한 성찰”이라고 말했다.
최근 공화당의 행보가 불안하다. 부시의 낮은 지지율부터 탐 딜레이 연방 하원 공화당 원내 총무의 기소, 스쿠터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의 기소, 잭 아브라모프 로비 스캔들, 그리고 최근 체니 부통령의 총기 오발 사고와 입 꾹 다물기까지 지난 1년 간 스캔들의 연속이다.
지금 미국은 겉으로 보기에는 공화당 판이다. 백악관과 연방 상하원, 그리고 최근 2명의 연방 대법관까지 공화당 계가 진출하면서 사법부까지 장악했다. 이런 공화당의 욱일승천이 시작된 것은 1994년이다. 당시 소수당 하원 원내 총무였던 뉴트 깅그리치는 ‘미국과의 계약’을 내걸고 40년간 민주당 손아귀에 있던 하원을 탈환했다. 이 때 미국인들이 민주당을 몰아낸 것은 반드시 공화당의 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었다. 짐 라이트 하원의장을 비롯, 댄 로스텐코우스키 세입세출 위원장 등등 민주당 실세들의 부패 스캔들에 진저리를 낸 탓이 더 크다.
조세나 금융 정책의 세부 사항에 관심 있는 일반 미국인은 많지 않다. 그러나 어떤 정치인과 정당이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가는 금방 안다. 지금 공화당은 12년 전 민주당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주요 인사가 줄줄이 기소되고 귀한 세금을 특정 이익 집단의 피리 소리에 맞춰 흥청망청 써대고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부시는 단 한번도 비토 펜을 사용하지 않은 채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유권자들에 버림을 받기 전 공화당이 정신을 차리길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