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한국에 전화가 일반에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40~50년 전에는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 전보였다. 다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을 때는 우체국에 가서 전보용지에 내용을 기재하여 요금과 함께 내면 우체국간에 전보를 쳐서 우체부가 긴급 배달을 해 줬다. 서울의 학교에 시험을 보러 간 학생이
합격 소식을 시골집에 알릴 때, 시골 부모의 사망 소식을 서울의 아들에게 알릴 때, 시골 부모가 상경하면서 마중을 부탁할 때는 으례히 전보를 쳤다. 전보 글자 한 자 한자의 값이 비싸서 글자 수를 줄이느라고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내용을 쓴 시대였다.
글자를 부호로 바꾸어 무선으로 송신하면 이 부호를 수신하여 다시 글자로 바꾸어 메시지를 받는 전보 시스템은 미국의 모스가 발명했다. 모스는 원래 화가였는데 유럽여행에서 돌아오던 배 안에서 어느 승객이 가지고 놀던 전자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전신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한
다. 그는 전문가에게 위탁하여 전신 시스템을 완성한 후 1856년 웨스턴 유니온 전신회사를 만들어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웨스턴 유니온은 역마차로 우편물을 전달하던 당시 혁명적인 통신수단을 제공했다. 10년 후에는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사업을 확장했고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모스의 부호를 채택했다.
이 전신이 구한말 한국에까지 들어왔으니 세계는 모스 부호로 통일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후 통신수단은 엄청난 속도로 발달하여 전화가 보편화 되었고 팩시밀리와 이메일을 사용하면서 전보는 고물이 되고 말았다. 결국 웨스트 유니온 회사가 지난달 설립 150년만에 문을 닫고 말
았다고 한다. 웨스턴 유니온 회사의 폐업은 오늘날처럼 기술 진보가 빠른 시대에서 나타나는 기업 흥망성쇠의 본보기이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혁신적 발명이 고물화 되는 것은 TV의 변화에서도 볼 수 있다. 라디오에서 TV시대로 넘어간 것은 큰 변화인데 TV는 흑백 TV에서 칼러 TV로, 또 고화질 TV로 개선됐고 앞으로 2009년부터는 디지털 TV로 완전히 바뀐다고 하니 종래의 아날로그 TV는 아예 상품이 될 수가 없게 된다. 컴퓨터도 매년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이 나오니 1년만 지나도 고물 취급을 받게되는 실정이다.
기술의 진보 뿐 아니라 소비자의 기호 또는 욕구의 변화도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코카콜라는 창설 119년을 맞은 미국 최고의 브랜드이다. 이보다 7년 늦게 출발한 펩시콜라는 100년이 넘도록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2등의 자리를 뒤쫓아 왔다. 그런데 작년에 처
음으로 펩시가 코크를 눌렀다고 한다. 매출액이 325억달러 대 219억달러로 펩시가 앞섰던 것이다. 펩시는 젊은층을 집중적으로 공략하였고 코크는 이런 노력없이 보수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어 시장을 빼앗겼다는 분석이다.
사업은 환경의 변화에 예민하다. 한 여름에 솜바지를 팔려고 하면 아무리 수완이 있어도 팔지 못한다. 무더위에는 선풍기와 에어콘이 불티나게 마련이다. 지난 주처럼 폭설이 내렸을 때는 언제나 걱정없다는 먹는 장사마저 망치고 만다. 겨울철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것은 여간 힘든 일
이 아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 그것을 제 때에 공급하는 것이 사업의 비결일 것이다.
한인들의 주종업종도 사업환경의 변화에 따라 흥망성쇠가 나타나고 있다. 한때 한인들이 많이 했던 원아워 포토샵이 디지털 카메라의 출현으로 큰 타격을 받고 가게가 많이 줄었다. 또 한때 괜찮은 비즈니스라고 했던 카드샵도 지금 한물 간 상태이다. 이메일로 카드를 주고 받는 시대가 되면서 카드를 교환하는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드라이클리닝이 필요없는 의류 소재가 보편화된다면 세탁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고, 소비자들이 쉽게 쓸 수 있는 네일 소재가 나온다면 네일업도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델리의 경우 고지방을 기피하고 올개닉 식품을 선호하는 추세가 늘어나면서 종래의 핫푸드에 대한 매출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인들의 비즈니스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런데도 언제나 하는 이야기처럼 대형화, 전문화, 고급화를 해야 하고 새 업종을 개발해야 한다는 과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소리없이 문을 닫는 가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 오죽해서 문을 닫겠는가. 오늘은 어제보다 낫겠지 하면서 1년을 하고 2년을 해도 낫기는 커녕 적자만 누적되어 하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리라.
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한인업계와 단체가 할 일이 태산같다. 한인 비즈니스의 활로를 모색하고 한인 경제력을 강화하는 일에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쓸데없는 일에 허장성세를 과시하고 논쟁을 일삼는 일은 없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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