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 다양한 장르 히트작, 전문사이트 우후죽순…
미성년에도 공급·명예훼손 우려도
5인조 그룹 동방신기가 팬들을 위한 특별 이벤트로 ‘제1회 동방신기 팬픽 공모전’을 개최한다. 또 당선작은 향후 동방신기가 출연할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될 예정이다.
팬픽(Fan Fiction),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 영화ㆍ드라마 등의 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패러디하거나 재창작한 작품. 그러나 보통 가수, 배우, 프로게이머, 축구ㆍ야구선수 등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쓰는 창작 소설로 통용된다.
팬픽은 god, 신화, 동방신기, SS501, 슈퍼주니어 등 주로 남자그룹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이 다수이며 팬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는 인터넷 등 통신의 발달과 함께 히트작을 낸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의 등장과 팬들의 조직화 등을 통해 수많은 작품이 양산되고 급속도로 퍼져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이러한 아마추어 작가의 소설은 팬들의 상상력을 통해 창작물이 생산되고 스타의 이미지를 형성, 팬 확보 차원에서 순기능을 하지만 동성애, 야설(야한 소설) 등을 소재로 한 팬픽이 미성년자들에게 제재 없이 공급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 장르와 소재 다양, 팬들끼리 히트작 추천
팬픽 편수는 스타의 인기도에 대략 비례한다. 현재 최고 인기를 누리는 동방신기의 팬픽은 새드, 연애, 코믹으로 장르도 다양하고 팬들끼리 ‘크리스마스는 있다’ ‘사랑의 동물병원’ ‘러브스토리 in 하남고’ ‘그에게 반(叛)하다’ ‘김재중 보고서’ ‘아빠가 둘이야’ ‘박유천 비극사’ 등 히트작을 서로 추천하기도 한다.
이밖에도 god의 팬픽으론 ‘플레이어스’ ‘풍월애가’ ‘무당’, 신화의 팬픽은 ‘넌 우리에게 영원한 신화가 되어버린 거야’ ‘T.O.P’ ‘컴 온 나우(come on now)’ ‘신화네 파출부’, H.O.T 팬픽은 ‘관계’ ‘파애’ ‘샤콘느’ ‘360도’ ‘소유’ 등 기상천외한 제목들 일색이다.
팬픽 전문 사이트도 셀 수 없을 정도. 그룹 SS501의 전문 팬픽 카페인 팬월드쥬얼리아에선 전속 아마추어 작가 모집도 한다. 이 카페에선 ‘전속 작가의 게시판에서 2개월간 2개 이상의 소설을 연재할 수 있으며 3일 이상 잠수 기간이 있을 땐 공지를 올려야 한다’는 자체 규정도 있다.
팬픽을 즐겨보는 한 네티즌은 팬픽의 원조는 H.O.T의 ‘협객기’다. 그 후로 많은 발전이 있어 지금에 이르렀다며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팬픽전문 사이트나 팬페이지에 올리니 많은 팬들이 애독하게 된다. 인터넷에 팬픽을 연재해 인기를 얻으면 책을 제본하는 것도 이미 널리 퍼졌다고 설명했다.
많은 팬들이 보는 만큼 팬픽은 가수의 이미지 정립에 영향을 미친다. 한 팬픽 애독자는 동방신기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내가 글 실력 좋은 작가의 동방신기 팬픽을 읽고 동방신기에 빠져버렸다. 이런 일은 매우 흔하다고 입증해줬다.
◇ 멤버간 동성애물 인기… 초등학생도 접해
주로 팬픽은 이성애(異性愛)물과 동성애(同性愛)물로 나뉘는데 영화 ‘왕의 남자’ 신드롬이 일었듯 동성애물이 더욱 인기 있다. 팬픽 작가들은 그룹 멤버들끼리 공식커플도 만든다. SS501은 현생(김현중+허영생)과 더블HJ(김현중+김형준), 생준(허영생+김형준)으로, 동방신기는 유수(믹키유천+시아준수), 윤재(유노윤호+영웅재중) 같은 조합이다.
동방신기의 팬픽 중 ‘사랑의 동물병원’은 믹키유천이 동물병원에서 일하게 되고 수의사인 시아준수와 사랑에 빠진다는 코믹 스토리. 이밖에도 책으로도 제본된 히트작 ‘가시연’은 유노윤호와 영웅재중을 은밀한 사랑 구도로 그렸으며 농도 짙은 성적 표현으로 수위가 꽤 높다.
’가시연’의 팬이라는 한 네티즌은 많은 사람들이 ‘가시연’의 수위에 대해 걱정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높은 수위와 엄청난 퀄리티의 소장본이 아니라 선정적인 장면속에서 저자의 문체,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 팬픽의 선정성에 우려를 표하는 네티즌도 있다. 아이디 빨강머리는 이러다간 ‘야오이’(동성 연애물 등을 창작하고 즐기는 문화를 통칭) 문화가 판칠지도 모른다. 미성년자의 경우 작가의 사상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음란하고 비현실적인 소설 속에 갇혀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선정적인 팬픽이 사이버상에서 성인 인증을 거치지 않고 초등학생까지 접할 수있으며 제본화돼 팬들 사이에 소장본으로 널리 팔린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책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사이트도 생겨났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명예훼손 우려도 있다.
◇ 연예인 소속사는 실태 파악도 못해
그러나 정작 이들 그룹의 소속사는 멤버들을 주인공으로 한 팬픽의 수와 내용의 수위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이버상에서 여과 없이 유통된다는 점에 대한 심각성도 느끼지 못한다.
동방신기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H.O.T 시절부터 팬픽에 대해선 알고 있다. 멤버들을 소재로 해 팬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팬픽 공모전을 펼치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멤버간 동성애를 선정적으로 다룰 경우 멤버들의 이미지 타격은 물론, 초등학생 팬까지 접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다. 팬들의 자제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신화의 소속사인 굿이엠지도 신화 멤버들도 팬픽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팬들이 재미로 소설을 쓰는 걸로 안다. 멤버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라면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소속사에서 모든 팬픽을 일일이 읽어보지 못해 아직은 심각성과 제재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누리정신과&소아청소년상담클리닉의 이호분 원장은 성적 판타지가 많은 미성년자들이 성적인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소설을 접할 경우 가치관 형성, 도덕성 발달에 저해 요인이 된다. 또 성적 자극을 강하게 받을 경우 성장은 물론 집중력 저하, 학습장애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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