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잊지 못할 테니스 시합이 있었다. 내가 회원으로 있는 한인 테니스 모임에서는 전통적으로 두 달에 한 번씩 자체 대회를 연다. 그때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게임을 하는 데 A조가 상위 그룹이고 B조가 하위 그룹이다. 전례를 보면 A조에 속한 사람은 항상 A조이고 B조에 속한 사람은 항상 B조에 배정되었다. 한 번 자기 소속이 정해져 버리면 그 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회원들 마음속에 각자의 수준이 고정 관념으로 굳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근래에 와서 내가 항상 B조에 배정되는 게 불만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도 이제는 꽤나 테니스를 잘 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체 대회가 있을 때마다 A조에서 뛰고 싶은 나의 바람은 언제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나의 테니스 수준은 주최측에서 볼 때 나의 소견과는 달랐던 모양이다. 내가 나를 평하는 것이 남이 나를 평하는 것과 이처럼 다르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나는 자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한동안 삼가 한 적도 있었다. 그것은 조 편성에 대한 나의 말없는 항의였다. 그러나 그런 시위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일요일마다 테니스 치는 버릇으로 내 몸과 마음이 길들여져 있는 데 그날 테니스를 못 치면 일주일 내내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더 많이 쌓이는 것 같고 마음은 이유 없이 우울해 지기 때문이다.
올해 마지막 자체 대회 때에는 이변이 생겼다. 내가 자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참가비를 내려고 할 때 테니스회 회장이 나에게 이번에는 A조에서 한번 뛰어 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그 제안이 내 귀에는 마치 경쾌한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회장은 전부터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다. 나의 글쓰는 일에 관심을 가져 주었고 자기도 언제인가는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나를 A조에서 뛰라고 한 것은 나의 테니스 수준에 맞춘 결정이라고 믿지만 어쩌면 나에게 베푸는 호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어쨌든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이 되었지만 나는 신이 났다.
관례대로 심지를 뽑아 나의 파트너가 정해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불상사가 생겼다. 그는 내가 자기 파트너로서 못마땅했던지 회장에게 대 놓고 불만을 터트렸다. 자기는 게임에 참가하지 않고 집에 가겠다고 했다. 승부욕이 누구보다 강한 그 친구에게는 내가 실망스러운 파트너로 낙인찍힌 모양이다. 나는 겉으로 태연한 척 했지만 속에는 더운 김이 서렸다. 이런 상황에서 회장은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넘겼다. 그는 자기에게 배당된 파트너를 그 친구에게 양보하고 대신 나를 파트너로 삼았다. 회장은 즉석에서 해결사 노릇까지 한 셈이다. 이럴 때는 백 마디 말보다 우리 팀이 승리해 나의 끓는 속을 냉각 시켜보리라 다짐했다.
게임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중, 대진표를 붙여 둔 장소 근처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들어 보니 두 사람이 다투고 있는 주제가 바로 나였다. 한 사람은 내가 A조 자격이 있다는 것이고 한 쪽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 또한 예상치 못한 불상사였다. 마음이 착잡했지만 못 들은 척 하고 서 있었다. 회원 한 분이 내 곁에 다가와 저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에게도 해 줄 말이 없었다. 저런 일은 저절로 사그라지도록 내버려두는 게 상책 일 듯싶었다.
얼마 후 첫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팀의 첫 번째 상대는 공교롭게도 나를 거부한 그 친구 팀과 맞붙게 되었다. 게임을 시작해 끝 낼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우리 팀은 별로 저항도 못해 보고 6:2로 패하고 말았다. 게임에 꼭 이겨야겠다는 집착이 오히려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했고 그것이 패인으로 단단히 한 몫 한 것 같았다.
우리가 하는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많은 회원들이 우리 팀이 형편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도 대 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도 내가 왜 A조이냐 라는 불평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되어 나의 귀청을 마구 난타했다. 차라리 지옥에라도 떨어져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무언과 무표정으로 그런 분위기에 대응 해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파트너에게 여러모로 미안했다. 그래도 내 파트너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다음 게임에 잘 해 보자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이번에 상대할 팀도 평소에 보아 왔지만 만만치가 않은 팀이다. 시작도 해보기 전 자신감이 오그라들고 있었다. 기왕에 승산이 없는 경기라면 재미있게라도 치다가 끝내야겠다고 나는 마음을 먹었다.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경기는 시작되었고 우리 팀은 처음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상대 팀은 우리를 무시하는 가벼운 농담까지 해가며 여유있게 우리를 몰아붙였다. 요행히 우리 팀이 반격을 가해 간신히 스코어가 4:4 동점을 이루었다. 그때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나서 나는 주위를 한 번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회원 모두가 자기들 게임은 하지 않고 철망으로 된 테니스 담장에 모두들 등허리를 기대고 한 줄로 쭉 앉아서 우리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약 서른 명 가까운 회원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테니스 게임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가슴 뿌듯한 행운이었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니스 게임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 광경이 일생일대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경기 도중, 간간이 나를 응원하는 소리도 들리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어쨌든 나는 그날의 흥밋거리가 된 모양이다. 회원 중, 한 분이 앉아있는 사람들 들어라고 “강치범씨 테니스 굉장히 늘었어”라고 한 말이 내 귀에까지 들렸다. 우연히 들려온 그 한 마디에 내 마음이 고무되었던지 평소 때보다 시합을 더 잘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팀이 상대방 팀을 6:4로 꺾었다.
상대방 팀과 악수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나오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내가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더니 그들은 박수로 응답해 주었다.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다. 알고 보니 첫 번째 경기에서 우리를 이긴 팀이 우리에게 패한 팀과 경기를 해서 지고 말았다. 오늘 경기는 동물들의 먹이 사슬처럼 물고 물리는 한판 승부였다. 언제나 살아남는 일이란 그토록 절실한 것이다.
강치범
<수필가·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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