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보울 챔피언에게 수여되는 트로피가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이다. 초대 챔피언전에서 우승을 이끈 그린베이 패커스의 감독이며, 그것도 오합지졸 같은 선수를 이끌고서 3번이나 우승을 이끈 감독이다.
경기장에서 두 명의 친구가 빈스 롬바르디 감독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A가 “와, 저기 롬바르디 감독이 지나간다”고 하니까 B가 하는 말 “아냐, 롬바르디 감독이 아냐. 신(神, God)이 롬바르디로 둔갑을 해서 지나가는 거야” 했단다. 이 꽁트 같은 대화는 나의 형이 즐거운 흥분으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나의 형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어디서 읽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번스 롬바르디 감독을 좋아하는 것 같고, 그린베이 패커스의 팬이다. 이번 수퍼보울에는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우승을 꽤나 바라고 있다.
형에게 왜 그 팀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블루칼라(Blue Collar·노동자)들의 팀이니 그렇지 한다. 사실 그 두 팀의 이름을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그린베이 소백정들’이라고 해야겠고 ‘피츠버그 대장장이들’이라고 불러야 할지니 블루칼라임에는 틀림없으리라.
나는 어쩐고? 물론 워싱턴이 제2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레드스킨스’를 좋아하나 그의 못지 않게 ‘인디애나폴리스 콜츠’팀을 은근히 응원한다. 거의 15년 전 볼티모어에서 성적도 형편없고, 수입도 별볼일 없어 밤에 버스를 타고 도망치듯 볼티모어를 떠나는 모습을 보아서였을까?
나의 두 팀의 애정은 나 스스로 어느 정도 이유가 있어 보이나 그러나 나의 형이 그린베이 패커스나 피츠버그 스틸러스를 블루칼라 팀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나의 형은 1950년도 초반에 오하이오 주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그냥 한눈 팔 사이도 없이 2000년대 초 은퇴할 때까지 대학교수 생활로 생을 살아온 학자 중에 학자이고, 소 잡는 곳이나, 쇠 뽑아내는 제련소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렇다고 ‘노동자’ ‘자본’ ‘사회주의’ 등등 인문과학이 아니라 ‘물리학’을 전공한 분이니 정말 블루칼라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는 분이니 왜 그리 두 팀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사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好), 싫어하고(不好) 하는 것은 논리(論理)가 아니고 각기 인간들의 마음속에서 설명이 안 되는 감정(感情)에 의해서인 것 같다.
그날 형과의 즐거운 대화 중 짓궂은 질문을 해봤다.
“형, 미국과 한국이 축구시합을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소?” “한국을 응원하지.” “그러면 미국과 북한이 축구시합을 하면 어디를 응원하겠소?” “북한을 응원하지.” “역시, 20대에 미국 와서 70대가 되도록 50년간을, 생의 3분의 2 이상을 미국에 살았다해도 한국사람임에는 틀림없군요.” “아냐, 나에게는 그런 것 아무 의미가 없어. 단지 자그마한 나라가 미국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이 대견해 응원할 뿐이야.” “형, 그러면 한국과 중국이 축구시합을 한다고 합시다. 북한 주민은 남한을 응원할 것 같소, 아니면 중국을 응원할 것 같소?” “글쎄, 잘 모르겠으나, 당연히 북한 주민들이 한 동포들이라고 전부 남한을 응원하리라는 것만은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고, 꼭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남한 사람들의 생각이 미래에 아주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몰라. 마술사의 주술에 걸린 것 같이, 모두 ‘한민족’ ‘통일’이란 주술에 전부 걸려든 것은 아닌지…”
형과 헤어지고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내 스스로 자꾸 질문해 보았다.
“내가 중학교 때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있었지. 그런데 외세(外勢)에 의해서도 아니고 전쟁을 해서도 아니고 좌우간 체코라는 나라와 슬로바키아 라는 나라로 나뉘어서 사이좋게 잘 사는 것 같아. 세계 뉴스에 두 나라가 서로 싸운다는 것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유고슬로바키아? 지금 우리와 축구 시합을 했던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어쩌구저쩌구 몇 토막으로 갈라져서 사는 것 같고, 소련도 그들의 세계 제2차 대전의 영웅(?) 스탈린이 그루지아 인가 뭔가 하는 곳의 출신이고, 그 그루지아가 독립해 나라를 세웠고, 그 당시 소련 외무상이 대통령으로 되었지.
이거 뭐 어찌된 거야? 세계의 대세, 그 대세가 통일의 흐름이야. 편하게 갈라져서 사는 것이 대세야. 아휴 모르겠다. 왜 내가 이 골치 아픈 생각에 빠졌지…”
“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 제주도, 독립운동 본부입니다. 지금 제주 공화국 설립 추진위원회에서 인재를 영입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제주 공화국 설립에 적극참여 지원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이영묵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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