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학생 어디로 갔나 고교 중퇴 심각하다
버밍햄 고교 통해본 문제점 분석
괜찮은 학교지만 4년 졸업생 절반수준
문제점 많은 대수학 교육 ‘아이 돈 노우’
거의 4년반 전인 2001년 9월. 약 1,087명의 9학년 학생들이 기대와 우려가 섞인 가슴을 설레며 밴나이스의 버밍햄 고등학교 교정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지난 6월 실제로 4년 후 버밍햄 고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58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절반의 학생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LA타임스는 지난 8개월간 6명의 기자와 2명의 사진기자가 버밍햄 고교를 다녔던 수백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 교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층 취재한 기획 시리즈를 지난 주 나흘에 걸쳐 톱기사로 게재했다. 버밍햄 고교를 통해서 본 오늘날 미국 고등학교의 문제점을 분석한 LA타임스의 기획 시리즈를 계기로 결코 남의 일이라고만 할 수 없는 고교 중퇴 문제를 살펴본다.
입학생 1,087명중 582명만 졸업
버밍햄 고교는 비교적 괜찮은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졸업생의 4분의3이 칼리지나 대학에 진학할 계획으로 약 60명이 UC계열로 진학했다.
LA 통합교육구는 버밍햄 고교의 졸업률(4년내)이 80%이고 중퇴율은 3.5%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LA 교육구 전체는 연방기준을 따라 계산한 졸업률이 66%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LA타임스가 이번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버밍행 고교의 4년 졸업률은 53%에 더 가까웠다. 2001년에 입학한 1,087명 가운데 582명이 졸업장을 받았는데 이중 425명은 버밍햄 고교에서, 다른 110명은 다른 전통적인 고등학교에서, 나머지 47명은 직업학교 등 대안학교에서 졸업했다. 다른 505명은 아직 졸업하지 못했거나 기록이 없다.
전체 졸업반 학생 가운데 9%는 향후 졸업할 목표를 갖고 아직 교육을 받는 중이었으나 다른 12%는 전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나머지는 추적하지 못했으나 지역 학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바에 의하면 대부분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육 관계자들에 따르면, 많은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버밍햄 고교의 경우 학생이 4,000명으로 이처럼 거대한 시스템에서 무관심 아래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쉽다. 임신, 재정적 압력, 마약, 탈선 등 학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어 졸업에 필요한 230점 학점을 받지 못하고 뒤쳐지면 이를 만회하기 어렵다.
무단결석에 벌금티켓도
버밍햄에서 9학년 첫 학기를 마치고 중퇴한 마이라 멘데즈는 노블 초등학교에 다닐 때 영재학생이었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버밍햄에 왔을 때 반항적이 되어 얼마나 거역할 수 있는지 한계를 밀어붙여 봤는데 아무도 자기를 훈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학기에서 모든 과목을 낙제한 마이라는 아무도 학교에 남아있으라고 격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지만 누군가가 참견해 줬으면 하고 후회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나름대로 엄청난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200명의 학생들 중에 절반이 낙제위험에 있는데 과연 얼마나 구제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학교측에서도 중퇴로 이어지기 쉬운 무단 결석을 단속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버밍햄 고교는 무단 결석하다 걸린 학생들에게 250달러짜리 벌금 티켓을 발부하고 부모와 함께 법원에 출두하게 한다.
학교 당국은 과거 하루에 한 번씩만 출석을 점검했던 것이 부족해 지금은 매시간 마다 체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00명이 무단 결석 티켓을 받았다.
에릭 빈델이라는 학생은 11학년 때 무단결석 티켓을 3∼4장 받고서 아예 학교를 떠나버렸는데 상황이 너무 복잡해졌다는 설명이다.
졸업기준 엄격, 낙제 급증
더욱이 고등학교 졸업기준이 갈수록 강화되는 근래 추세도 중퇴문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부터 졸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고교졸업시험(CASHEE)은 영어가 미숙한 이민학생들에게 높은 걸림돌이다.
캘리포니아 의회는 2004년에 대수학(algebra)을 고등학교 졸업 필수과목으로 채택하고 가주 고교졸업 시험에 대수학 문제들을 포함시켰다. 한편 LA 교육위원회는 2016년부터 고교 졸업 자격 기준으로 현재의 UC 입학자격 기준을 채택할 예정으로 장차 고급 대수학(algebra II)까지 고교 졸업에 필요하게 될 전망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학생들을 21세 글로벌 경쟁시대에 준비시킨다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됐으나 로이 로머 LA 교육구 교육감은 대수학이 “다른 어는 과목보다 중퇴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가브리엘라 오캄포라는 학생은 대수학 클래스를 6번 택했으나 번번이 낙제했다. F학점을 반복할 때마다 졸업의 꿈은 점차 멀어져 갔고 결국 12학년 1학기 때 중퇴하고 말았다. 문제는 오캄포의 케이스가 평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04년 가을학기에 LA 교육구에서 대수학을 공부한 4만8,000명의 9학년 학생들 가운데 44%가 F학점을 받았는데 이는 영어 클래스의 낙제율보다 2배로 높은 수준이다. 봄학기에 대수학을 다시 이수한 학생들 가운데 거의 4분의3이 다시 낙제했다.
자격미달 교사 수두룩
교육 전문가들은 학생들만 대수학을 배울 준비가 안됐을 뿐 아니라 학교측에서도 이를 가르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학교들은 수학 교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수학 클래스를 갑자기 늘려야 했다. 샌타크루즈의 미래교수학습센터(CFTL)에 따르면, 가주 8학년 대수학 교사들 가운데 40% 이상이 수학 교사자격증이 없거나 전문분야가 아닌 것을 가르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LA 교육구로 가장 많은 교사를 배출하는 칼스테이트 노스리지에서는 지난해 초등학교 교사 지망생들의 35%가 수학 클래스에서 D 또는 F학점을 받았다.
교육학계에서는 중퇴 문제를 놓고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논란이 한창이다. 교육제도나 사회문화에 문제가 있는가. 교사나 학부모들에게 잘못이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학생들의 문제인가.
고등학교 중퇴는 학생 개인을 떠나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연구자들은 세입 감소, 웰페어 및 의료보험 비용 등 중퇴 문제가 수천억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온다고 추정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중퇴자들은 고교 졸업자들이 1달러를 벌 때 37센터밖에 벌지 못하고 평균수명도 9년이 더 짧다. UC버클리 경제학자 엔리코 모레티는 고교 졸업률이 1%만 더 높아도 미국에서 범죄가 연 10만건이 줄어들고 재정적 이득이 14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테마 중심 작은 학교 바람직
LA타임스에 따르면, 그러나 학교측에서는 낙제학생들을 학교에 남게 하려고 크게 노력하지 않는다. 이들 학생을 도와줄 자원이 없을 뿐 더러 교육개혁법아래 학교 성적을 높여야 하는 압력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학생들을 쫓아내고 싶은 동기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을 다른 학교로 보내버리면 중퇴율이 올라가지 않으므로 직업학교 등 대안학교에 떠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대안학교에 간 학생들 가운데 졸업장을 받는 경우는 3분의 1도 못 미친다.
버밍햄 고교의 마샤 코테스 교장은 학교 내에 테마 중심의 작은 학교들을 구성해 소규모 학업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중퇴 문제를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앨런 버신 캘리포니아 교육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현재의 고등학교 시스템이 교외 지방에서는 아직 효과적이지만 도심과 시골지역에서는 성공적이지 못한 체계”라며 미국 교육체제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리 우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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