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전 승패를 넘어서…월드컵 풍년을 향하여”
되돌아본 4강신화 그해, 2002년 첫승이 있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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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열흘밖에 안남았다. 아직 열흘이나 남았다. 오는 11일(토) 오후 3시 오클랜드 콜리시움에서 울려퍼질 한국-코스타리카 축구평가전 킥오프 휘슬을 기다리는 북가주 한인들은 달아올랐다.
태극전사들도 물이 올랐다. 속도위반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올해 첫판(18일 아랍에미레이트전, 0대1) 마수걸이 패배뒤 21일에는 04유럽선수권 챔피언 그리스와 1대1 무승부로 기운을 차리더니 25일 핀란드를 1대0으로 누르며 첫승을 신고하고 29일엔 98프랑스월드컵 3위 크로아티아를 2대0으로 격파, 푸짐한 설 선물을 안겼다.
그러나 평가전은 평가전이다. 중요한 것은 본선 큰 승부다. 웃자란 승리감에 본선을 그르치게 하는 어설픈 승리보다 헐거운 구석을 찾아내 꼼꼼하게 꿰매고 다듬어 독일 잔디에서 펄펄 날게 해주는 패배가 유익하다. 4년전 이맘때 경험이 이를 말해준다.
2002년 1월 초,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태극군단은 남가주 샌디에고에 훈련캠프를 차렸다. 아시아최초 월드컵본선 개최국으로서 본선진출 48년만의 첫승과 16강진출이란 염원에 불타는 태극팬들의 눈길이 온통 거기에 쏠렸다. 드높은 기대는 초장부터 어긋났다.
19일 LA 콜리시움에서 벌어진 북중미골드컵대회 미국과의 개막전 1대2 패배. 월드컵본선 같은조 맞수이므로 미리 기를 꺾어놓으려던 태극군단은 샘스군단(미국팀 애칭)의 신병기 랜던 도노반과 다마커스 비슬리에게 연타를 맞어맞고 비틀거렸다. 그 사흘전, LA 갤럭시와의 비공식 평가전에서 어이없는 0대1 패배를 당할 때만 해도,“골드컵에서 미국만 잡아주면…” 하고 입맛을 다신 태극팬들의 실망은 컸다.
그것은 약과였다. 야구 복싱은 몰라도 축구와는 담을 쌓은 줄 알았던 쿠바와의 2차전(23일)에서는, 서너골 차이로 이겨도 시원찮을 판에, 헛발질 대행진을 거듭하다 0대0 무승부로 물러섰다. 시련은 계속됐다. 각조 3팀 중 2팀이나 올라가는 인심좋은 진행요강 덕분에 8강티켓을 받아든 히딩크사단의 상대는 멕시코. 98프랑스월드컵 맞대결(한국 1대3 역전패)에서 우리 골문과 선수들을 농락한 루이스 에르난데스(2골) 콰테목 블랑코(2어시스트) 등 차포들이 줄줄이 빠졌음에도 태극전사들은 기를 못폈다. 연장전 포함 120여분 사투를 벌였으나 0대0 무승부.
수문장 이운재의 선방으로 승부차기에서 이겨 꾸역꾸역 4강고지에 기어오른 한국은 준결승(30일)에서 또 임자를 만났다. 오는 11일 오클랜드에서 맞붙는 코스타리카였다. 축구종주국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활약하던 스트라이커 파올로 완초페를 앞세운 코스타리카의 파상공세에 한국은 맥을 못추고 허둥대다 1대3 완패를 당했다.
그것이 졸전의 끝은 아니었다. 축구후진국 캐나다와의 3-4위전(2월2일)마저 1대2로 졌다. 한국은 12국이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단 1승도 못거두고 4강에 드는 진귀한 기록(승부차기로 끝난 게임은 규정상 무승부)을 남기고 우루과이와의 원정평가전(2월13일)을 위해 보따리를 쌌다. 1대2 패. 쿠바에 비기고 캐나다에 진 처지에 그나마 잘한 셈이었다.
축구에 목숨을 건 듯한 태극팬들이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비난화살이 빗발쳤다. 히딩크 퇴진론이 속출했다. 83멕시코청소년축구 4강신화의 조련사 박종환 전 감독, 떠벌이 신문선 SBS해설위원 등이 말로 글로 히딩크 때리기 굿판에 기름을 부었다. 98월드컵 본선부진으로 하루아침에 국민적 영웅에서 대역죄인처럼 추락(대회도중 퇴진)했던 차범근 전 감독(당시 MBC해설위원)은 그 쓰라림을 잊고 히딩크 옹호론을 폈다가 “지 아들(차두리)을 (대표팀에) 뽑아줬다고 x소리를 한다”는 등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로부터 한달뒤(3월13일), 북아프리카 강호 튀지니 원정평가전에서도 승리소식은 없었다(0대0). 다시 1주일뒤(3월20일), 만신창이 히딩크사단으로부터 마침내 첫승 낭보가 날아들었다. 공교롭게도 올해 첫승 제물인 핀란드가 그 상대였다. 후반에 투입된 황선홍의 연속골로 2대0 승리를 거둔 히딩크사단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체력강화와 팀웍향상에 초점을 맞춰 거듭해온 지옥훈련 효과를 서서히 드러내며 월드컵 4강신화의 불씨를 키워갔다.
<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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