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중국 북산(北山)이라는 지방에 법운사(法雲寺)라는 큰 절이 있었다. 절에는 스님이 수백 명이나 되었고, 신도들도 매우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가 집을 옮기는 듯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절 안에 큰 뱀이 한 마리 기어 들어와 몇 사람을 물어 죽였다.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뱀을 피해 도망가고 신도들도 찾아오지 않게 되자 절은 오래지 않아 폐허로 변했다. 큰 뱀 한 마리로 인해 사람이 들끓던 절이 졸지에 아무도 얼씬하지 않는 흉가가 되어 버
린 것이다.몇 년이 지난 이른 봄,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 떠돌이 거지가 그 절에서 묵게 되었다. 밤이 되자 추워져서 땔감을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것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거지는 절간 마당에 흩어져 있는, 스님들이 신다가 버린 나막신을 주워 모아 불을 지폈다. 나막신들은 모두 녹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불 힘이 세고 타면서 진한 향기가 났다. 거지는 불 곁에서 따뜻하게 잠을 잤다.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거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로 옆에 거대한 뱀 한 마리가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뱀은 배를 하늘로 향한 채 죽어 있었다.
법운사에 있는 큰 뱀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죽은 뱀을 보기 위해 몰려 왔다. 사람들은 큰 뱀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궁금했다. 그중에 생각이 깊은 한 사람이 말했다. “이 뱀은 녹나무가 타는 향기에 질식되어 죽은 것이 틀림없어. 겨울잠을 자고 나온 뱀이 따뜻한 불 옆에 몸을 녹이러 왔다가 질식된 것이지. 녹나무 향기가 뱀을 죽이는 효능이 있는 게야.”녹나무 향기가 뱀을 죽인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사람들은 이른 봄이 되면 집집마다 마당에 녹나무를 태워 나쁜 벌레와 병마를 쫓는 풍습이 생겨났고 이 풍습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녹나무를 태우면 뱀, 개구리, 지네, 모기, 파리같은 해로운 벌레들이 죽거나 가까이 오지 않는다.
▲귀신을 쫓는 나무
녹나무는 한국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다. ‘장목(樟木)’ 또는 ‘예장나무’라고도 부르며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는 상록활엽수이다. 나무 전체에서 솔향기를 닮은 향기가 나며 껍질은 회갈색이며 세로로 갈라진다. 어린가지는 연한 갈색이며 매끄럽고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다. 잎은 달걀꼴로 가죽질이며 어긋난다. 잎의 윗면은 연한 녹색이고 뒷면은 회록색이며 어린잎은 담홍색이다. 4-6월에 연한 녹색의 꽃이 피어서 가을에 지름 1센티미터쯤 되는 까맣고 둥근 열매가 달린다. 키 40미터, 밑동 둘레가 4미터 넘게까지 자라므로 매우 덩치가 크게 자라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수명도 길어서 나이가 천 살이 넘은 것도 드물지 않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만 자라지만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는 매우 흔하여 토오쿄오 시내에서도 녹나무 가로수를 흔하게 볼 수 있고 중국의 남방지방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녹나무와 비슷한 생달나무를 대신 약으로 쓸 수도 있는데 생달나무는 우리나라 남해안 지방에 흔하게 자란다.
영어로는 camphor tree(캄파 트리)라고 하며 미국에는 백여 년 전에 중국에서 들여와 따뜻한 지방에서 가로수로 심는다. 로스엔젤레스, 아틀란타, 달라스 같은 데서는 아름드리로 자란 녹나무 가로수를 흔히 볼 수 있다. 추위에 약해서 뉴욕과 뉴저지에서는 자라지 않는다.녹나무는 숲의 왕자라고 할 만큼 나무의 모양새가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더러 쓰임새도 매우 많
다. 제주도에서는 녹나무를 집 주변에 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녹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에 귀신을 쫓는 힘이 있어서 조상의 혼백이 제삿날에도 이 나무 때문에 집으로 찾아오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이다.또, 녹나무로 목침을 만들어 베면 잡귀가 얼씬할 수 없어 편안하게 잠잘 수 있다고 해서 지금도 나이 많은 이들은 녹나무 목침을 즐겨 쓰고 있다.
실제로 녹나무에서 나오는 향기는 사람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또 물질을 하는 해녀들도 갖가지 귀신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모든 연장을 녹나무로 만들어 썼다. 바다에서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상처를 입었을 때에는 녹나무로 만든 낫자루를 깎아 태워서 연기를 쐬면 곪지 않고 잘 낫는다고 한다.이렇듯 하찮은 미신처럼 보이는 풍습에서 조상들의 깊은 의료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제주도에서는 큰 상처를 입었거나 중풍, 혼절 등 갑작스런 병으로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환자를 방 안에 녹나무 잎이나 가지를 깔고 그 위에 눕힌 다음, 방에 뜨겁게 불을 지핀다. 이렇게 하면 녹나무에 들어 있는 정유 성분이 뜨거운 열기와 함께 증발되어 나와서 환자의 땀구멍과 폐 속으로 들어가 나쁜 균을 죽이고 염증을 치료하며 심장을 튼튼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작용을 해서 병이 빨리 낫게 한다는 것이다.
녹나무에 들어 있는 향기 성분은 캄파, 사프롤, 찌네올 등의 정유이다. 정유 성분은 녹나무 목질과 잎, 열매에 1퍼센트쯤 들어 있다. 정유는 나무줄기를 토막 내어 수증기로 증류하여 얻는데 이렇게 해서 얻은 정유를 ‘장뇌(樟腦)’라고 부른다. 장뇌는 향료로 매우 귀중하게 쓰인다. 살충제, 방부제, 인조향료의 원료, 비누향료, 구충제 등으로 널리 쓰고 약용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신경쇠약, 간질, 방광염, 신우신염 등에 치료약으로 쓰고 흥분제나 강심제로도 널리 쓴다. 특히 일본에서는 장뇌를 매우 귀중히 여겨 우리나라의 인삼처럼 국가 전매품으로 취급하고 있다.
▲족제비와 함께 쓰면 암 치료약
제주도에서는 민간에서 녹나무를 암 치료약으로 쓴다. 갖가지 암에 족제비 한 마리를 털과 똥을 뽑지 않은 채로 녹나무 잔가지 1백-1백 50그램쯤과 한데 넣고 대여섯 시간 푹 고은 다음 천으로 물만 짜서 마시면 매우 효과가 크다고 한다. 족제비는 몸의 원기를 크게 도와서 체력을 회복시키는 효능이 있고, 녹나무는 암세포를 죽이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방법으로 족제비 몇 마리를 먹고 현대의학이 포기한 암 환자가 회복된 사례가 여럿 있다. 녹나무 잎은 그냥 차로 달여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녹나무 잎 차를 늘 마시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뱃속의 기생충이 없어지며 감기, 두통, 불면증 등이 잘 낫는다고 한다.
녹나무는 맛이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이 없다. 간과 폐에 주로 작용하며 바람과 습기를 몰아내며 기혈이 잘 순환되게 하며 관절을 부드럽게 하는 효능이 있다. 심장의 여러 가지 통증, 통풍(痛風), 타박상, 식욕부진, 토사곽란 등을 치료한다. 갖가지 기생충을 죽이며 담을 삭이고 독을 풀어주며 통증을 멎게 한다. 줄기, 뿌리, 잔가지, 잎, 껍질, 열매를 모두 약으로 쓸 수 있다. 협심증, 심근경색 등의 여러 심장병과 설사, 복통, 식욕부진 등에는 녹나무 잎이나 잔가지 10-15그램에 물 1되를 붓고 물이 절반이 되게 달여서 하루 3-5번에 나누어 마신다. 관절이 아프거나 여러 가지 피부병에는 녹나무 40그램을 잘게 썰어 물 1되에 넣고 30분 동안 끓인 다음
그 물을 욕조에 붓고 그 물로 목욕을 한다. 녹나무 껍질이나 잔가지 잎을 달여서 차 대신 조금씩 늘 마시면 심장이 튼튼해지고 혈액순환이 좋아지며 소화기능이 튼튼해지고 관절이 튼튼해지며 몸이 따뜻해져서 추위를 타지 않게 된다.녹나무 껍질로 담근 술도 심장질환과 위장질환에 매우 뛰어난 치료효과가 있으며 맛과 향도 각별하다. 녹나무 껍질을 35도 이상 되는 증류주에 담가 3개월쯤 우려내어 소주잔으로 한두 잔씩 식사 때 반주로 마시면 된다.
녹나무는 목재도 쓰임새가 많다. 결이 치밀하고 아름다워서 불상을 만드는 조각재로 많이 썼으며 집안에 쓰는 가구나 배를 만드는 데도 아주 좋다. 조선시대에는 배를 만들기 위해 녹나무와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기도 했다.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도 녹나무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녹나무는 무늬와 색깔이 아름답고 목재 속에 들어 있는 정유 성분 때문에 오래 지나도 잘 썩지 않고 벌레가 먹지 않아서 악
기나 고급가구를 만드는 데 쓴다. 녹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귀중한 나무다. 그런 까닭에 제주도에서는 녹나무가 수난을 당했다. 옛날에는 몇 아름씩 되는 큰 나무가 흔했으나 목재로 쓰기 위해 다 잘라 버리고 지금은 작고 볼품없는 나무들만 드물게 남아있을 뿐이다. 남제주군 중문면에 가슴 높이 둘레 1미터쯤 되는 큰 나무 네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나 관리가 매우 소홀한 상태이며 그 밖의 다른 큰 나무들은 모두 잘려 없어졌다. 녹나무는 제주도만이 가진 우리나라의 보물 중의 하나이다. 사람들이 이 나무에 관심을 갖고 아껴 주었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녹나무를 이용한 치료법
▲중이염
용뇌(龍腦) 9그램, 사향(麝香) 1그램, 장뇌(樟腦) 12그램, 고백반(枯白礬) 용골(龍骨) 각 1.5그램을 부드럽게 가루 내어 섞어서 쓴다. 먼저 과산화수소로 귀 안의 고름을 깨끗하게 닦아내어 고름이 마른 다음 이 약가루를 조금씩 귀 안에 불어 넣는다. 급성은 7일, 만성은 12일 치료하면 대개 낫는다.
▲위장의 통증
잘게 썬 녹나무 잔가지 20-30그램에 물 1되를 붓고 물이 절반이 될 때까지 약한 불로 달여서 하루 3-5번에 나누어 마신다. 녹나무는 염증과 통증을 없애고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음식이 내려가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며 가래를 토할 때 생강즙을 발라서 노랗게 구운 녹나무 껍질 40그램을 곱게 가루 내어 3-5그램씩 쌀죽에 타서 하루 3-4번 먹는다.
▲식중독으로 구토와 설사를 할 때
녹나무 껍질 30-40그램을 물 반 되에 넣고 달여서 따뜻하게 해서 한 번에 마신다.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녹나무속껍질 15-20을 짓찧어 물 1되에 넣고 물이 절반이 될 때까지 약한 불로 달여서 하루 3-5번에 나누어 마신다.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한 통증
녹나무속껍질 30그램, 골담초 뿌리 30그램에 물 1되를 붓고 물이 절반이 될 때까지 약한 불로 달여서 하루 3-5번에 나누어 물이나 차 대신 마신다.
▲술에 취해서 잘 깨지 않을 때
녹나무껍질 15-30그램을 물로 달여서 마시면 술이 깨고 숙취가 남지 않는다. 녹나무는 알코올중독을 풀어주는 작용이 있다.
▲냉증, 손발이 시리고 아랫배가 차가울 때
녹나무잎이나 속껍질 15-30그램을 물로 달여서 차 대신 수시로 마신다. 혈액순환이 잘 되고 온 몸이 따뜻해지며 추위를 타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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