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프랑스 파리의 무슬림 거주 지역에서 인종폭동이 일어난 것을 기억한다. 비슷한 사건은 최근 호주에서도 발생했고 그 동안 영국 등 여러 곳에서 일어났다. 다인종이 섞여 사는 시대이다 보니 인종간의 갈등과 분쟁은 이제 미국만의 일이 아니고 전 세계의 문제가 되고 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다인종 사회에서 인종간의 화합과 융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민을 받아들이는 그 나라의 정부가 공평하고 효율적인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이민자들 스스로의 책임도 막중하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그런데 우리 한인들 중에는 ‘미국 시민권’이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면서도 그 말이 갖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깊은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가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주류와 중심에 나아가 더 큰 발전을 이루기 원한다면 ‘미국 시민권’의 의미에 대해서 한 번쯤 깊은 생각을 해 봄직하다.
우선 미국 시민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단순히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이민/귀화로 시민권을 취득하는 사람은 일정한 서약을 하도록 되어 있다. “I hereby declare on oath that...”이라고 시작하는 이 서약은 시민선서라고 하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지금까지 국민으로 있었던 다른 국가, 통치체제 또는 권력에 대한 충성을 무조건 포기하고 미국의 헌법과 법률을 지지할 것이며, 법이 요구할 경우 미국을 위하여 무기를 들 것이며, 미국 군대를 위하여 비전투 임무를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시민이 됨으로써 미국의 헌법과 법률을 지킬 것은 물론 자기가 전에 살던 나라를 버린다는 것을 서약하는 것이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한국에서 살다가 미국에 이민와서 미국시민이 되는 사람은 우선 한국에 대한 충성과 성실을 전적으로 포기하고 부인해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심각한 서약인가. 그러니까 얼마전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한국계 미국 시민권자의 경우는 이 서약을 위반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가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고 동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가 풀려나 귀국하자 마치 큰 애국자나 영웅인 양 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그 본인으로서는 미국에 오기 전에 살던 나라(한국)에 대한 충성과 성실을 포기하겠다는 서약을 어긴 것이다.
시민선서의 내용 중에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시민이 됨으로써 “미국을 위해 무기를 들 것”을 서약하고 있는 점이다. 즉 미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거나 또는 테러리스트 같은 적과 싸우게 될때 미국을 위해 총을 들겠다는 서약이다.
얼마 전 이민 당국이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한인들에게 “만일 한국과 미국이 싸우면 어느 편을 들 것인가”라는 난처한 질문을 해서 다소 말썽(?)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물론 극단적인 경우라고 해야겠지만) 따지고 보면 대답하기 난처할 것도 없고 또 말썽이 될 이유도 없다. 시민선서를 옳게 이해하고 진정으로 서약한다면 미국과 한국이 싸울 때 어느 쪽을 위하여 총을 들어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미국시민이 되는 것은 미국의 자유와 평등과 풍요로움 등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아울러 이처럼 엄중한 책무를 약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미국시민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 쉽게 말해 버리고 쉽게 결정해 버릴 수 없는 일이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원정출산이니 이민사기니 하는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얻으려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고 불법체류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미국시민권의 진정한 의미도 모르는 채 무조건 시민권을 따고보자는 이런 행태가 각종 폐단을 빚고 있는 것이다.
작년 11월 뉴저지주의 에디슨시 시장으로 뽑힌 한인 동포 준 최씨는 당선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내가 한국계임은 분명하지만 그에 앞서 미국인”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서 “미국 땅에서 동포들이 진정한 미국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일할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포들끼리 몰려만 다니지 말고 진정한 미국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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