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장원에서 손님들의 머리를 곱게 만져주는 미용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어린 소녀 같은 미용사입니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 가냘픈 몸매의 이 미용사는 세상일에 물들지 않은 순진하고 철없는 소녀 같았습니다.
손님의 머리를 만지는 손은 또 얼마나 보드랍고 따뜻한지 손님들은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잠시나마 세상 시름 모두 잊고 달콤한 꿈나라에 잠긴다고 칭찬을 하면서 미장원을 올 때마다 이 미용사를 찾는답니다.
소녀 같은 미용사는 의사 선생님에게서 아기가 생겼다는 진찰을 받은 날 곧장 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평소에 늘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기 위해서였지요. 꽃집에서 방울토마토 모종 세 포기를 샀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큼직한 화분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모종이지만 넓은 화분에서 편안히, 마음껏 자라라고요. 그리고 거름을 섞어서 모종을 심고 넘치지 않게 물을 주는 등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뱃속에 아이가 꼭 방울토마토 같이 예쁠 것을 상상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큰일이 났습니다. 모종을 심은 지 며칠이 되지 않아 거름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흙 속에 숨어 있었는지 달팽이란 놈들이 모종 두 포기를 잘라먹어 버렸습니다.
겨우 남은 한 포기 토마토 모종은 소녀 같은 미용사의 지극한 보살핌으로 줄기가 자라고 잎을 피우고 또 가지를 뻗는 등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앙증맞은 새 하얀 꽃이 옹기종기 모여 방긋 웃음을 지으며 피었습니다.
그리고 앙증맞은 하얀 꽃이 피었던 자리에 초록색 작은 열매들이 꽃 대신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소녀같은 미용사가 조롱조롱 달린 열매를 보면서 뱃속의 아이를 상상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배가 아파졌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대굴대굴 굴렀어요.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남편이 놀라서 병원 응급차를 불렀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아직도 몇 달은 더 있어야 한다는데 소녀같은 미용사의 아기는 태어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기는 엄마 뱃속에 아직도 더 있어야 한다는데요.
“살려 주세요. 살려주세요. 우리 아기를 살려 주세요.”
어린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을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을 붙들고 자기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처럼 애원을 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몸무게가 한 파운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기는 어른 손바닥만한 몸에 목과 손과 발에 주사 바늘을 꼽고 줄줄이 줄을 매달고 유리관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해야만 아기가 살수 있대요. 어린 엄마와 아빠는 아기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유난히 고운 노을에 세상이 온통 홍시감 색깔로 물든 어느 오후였지요. 아기 엄마가 조그만 아기를 강보에 싸서 조심조심 보듬어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서 보자기를 들추고 조그만 아기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머머! 이 쌍꺼풀 좀 봐. 눈이 예쁘기도 해라.”
동네 아주머니들의 소곤거리는 말소리를 들은 아기 엄마는 그 순간 아기의 작은 심장의 고동이 엄마 가슴속에서는 천둥소리로 들렸습니다.
아기 엄마는 아기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의사 선생님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었답니다. 아기 눈의 신경이 아직 만들어지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아기 엄마는 아기 눈이 예쁘다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듣는 순간 아기의 심장 고동이 엄마를 때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엄마는 아기의 눈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기 눈을 자기 눈에 담습니다. 엄마의 눈 하나는 아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마 눈도 아기 눈. 아기 눈도 엄마 눈......”
엄마는 아기 눈을 드려다 보면서 같은 말을 되 뇌입니다. 그럴 때 엄마의 가슴속에서는 장마 비처럼 눈물이 줄줄 흐릅니다.
아이참! 아기의 이름을 가르쳐 드리지 않았네요.
아기의 이름은 ‘제인’입니다. <제인>이란 이름은 예쁜 미국이름도 되고요, 한국말로도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이랍니다. 한국에 계신 아기 할아버지께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베푸는 어진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제인이는 너무 세상에 일찍 나왔기 때문에 쌍꺼풀 진 예쁜 눈은 있지만 보이는 신경이 눈에 도달하지 못했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어느새 제인은 자라서 손으로 벽을 짚고 일어서고 걸음마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인의 작은 아기침대 머리맡 창가에 올해도 방울토마토가 작년처럼 자라서 꽃을 피우더니 열매를 조롱조롱 달아 갑니다.
방울토마토가 초록 이슬같이 작은 열매 일 때는 희고 야들야들한 제인의 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바알갛게 물들게 될 때는 제인의 볼도 발갛게 건강해져서 방울토마토와 제인이는 서로 내기하듯 예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제인이네 가족을 사랑하는 아줌마가 한 분 계시는데 어느 날 그 아줌마가 제인이를 찾아왔습니다.
“헬로우, 제인! 하우 아 유-”
아줌마는 제인이의 볼에 입을 바싹대고 가만히 인사했지요. 제인이는 금새 미소를 띄고 아줌마의 얼굴을 더듬어요. 하느님의 제인이의 눈 대신 귀를 밝게 해주셨대요.
그러나 보통보다 훨씬 자주 깜박이는 속눈썹이 유난히 긴 쌍꺼풀진 예쁜 눈을 가진 제인이를 아줌마는 조심히 품에 안아 봅니다. 새털 같이 가벼운 제인이는 파란 하늘에 떠 있는 새 하얀 구름을 닮은 깨끗하고 귀여운 아기라고 생각합니다.
“제인이처럼 고운 아기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줌마는 제인이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드려다 봅니다. 아줌마의 볼을 만지작거리던 제인이는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줌마는 볼이 통통하고 발그레하며 따뜻하답니다. 그리고 귓불에는 은방울 귀고리를 달고 있습니다. 제인이는 아줌마의 목소리에서, 손으로 만지는 볼에서 자기를 너무도 사랑하는 아줌마의 마음을 읽습니다.
제인이의 돌잔치 초대장이 왔습니다.
아줌마는 진달래 색 원피스를 생일 선물로 마련하고 예쁜 종이로 포장하면서 중얼거립니다.
“제인이가 언젠가는 이 색깔을 볼 수 있어야 할텐데......”
이렇게 혼자 말을 하면서 머리를 들어 바깥 하늘을 바라보고 나서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세상인데, 머지않아 제인이의 눈도 볼 수 있는 세상이 틀림없이 올 거야.”
아줌마는 그런 세상이 틀림없이 온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제인을 위해서.
돌잔치에는 아기손님들이 많은 탓에 유난히 왁자지껄하지요.
아줌마는 길이 막히는 바람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복잡한 잔치 속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은 몸보다 훨씬 큰 색동 한복을 입고 족두리를 쓴 제인의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마이크를 잡고 소릴 치고 있던 덩치큰 아저씨가 색동옷을 덜렁 들고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가더니 마이크를 대고 왕왕 대더니 소리를 칩니다.?
“야아!! 제인이 실 꾸러미도 아니요, 달러도 아니요, 연필을 잡았습니다. 제인이는 다음에 커서 박사가 될 모양입니다. 박사요, 박사... 모두 박수......”
아줌마는 어른들이 하는 모습에 웬지 화가 나고. 슬펐습니다.
세상에 두 눈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못 보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고 느끼고 있는 아줌마입니다. 그래서 아줌마는 제인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또 했습니다.
“제인이는 파랑색 하늘을 마음 가득 담고, 샤갈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환상의 나라를 힘차게 달리고 있을 거야. 지팡이도 필요 없어요. 평생 필요 없어요. 제인이는 성한 눈을 가진 세상 사람들이 못 보는 밝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더 정확히 더 많이 볼 수 있을 테니까.”
엄마는 좋은 솜씨로 제인의 머리에 퍼머를 해주고 머리핀을 예쁘게 꽂아줍니다. 그리고 달랑달랑 귀고리도 달아 줍니다.
아줌마는 어느 날 방울토마토가 빠알간 색깔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 제인의 볼도 바알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아줌마는 빠알간 방울토마토 한 알을 제인의 손에 놓아주었습니다.
조그만 손으로 방울토마토를 만지작만지작 했습니다. 아줌마는 제인의 볼에 아줌마의 볼을 가만히 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빠알간 방울토마토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제인의 손에 입을 맞춰 주었습니다.
그때 아줌마의 입술이 방울토마토의 빠알간 볼을 살짝 건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인가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를 아줌마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 노래 소리는 아줌마의 귀를 간지럽게 스치고 지나가서 제인의 가슴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나 방울토마토는 빠알간 색으로 익어
제인의 조그만 손에 놓여 있어요.
나 방울토마토는 너무나 행복하답니다.
나는 가만가만 노래 불러요.
“아기장님 제인은 눈이 손이래요”
“아기장님 제인은 손이 눈이래요”
정해정<시인·소설가·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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