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정(회사원)
요즈음 한국은 인구가 줄어든다고 걱정하는 사회가 된 모양이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인구 폭발을 걱정하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래서 우리 세대는 인구축소정책인 ‘가족계획’이란 말을 귀가 닳도록 듣고 자란 세대이다. 그리고 또 그 정책에 잘 호응해서 거의 대부분이 자녀를 두 명 정도만 낳아 기른 첫번째 세대이기도 하다.그런데 그 중에서는 나와 같이 세 명의 자녀를 기르는 가정도 가끔씩은 볼 수 있다. 그런 가정들의 속사정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딸만 둘인 경우, 가계는 이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가계 존속’형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아들이 하나 있으면서도 아들 하나를 더 바라는 ‘아들 욕심’형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딸을 막내로 가진 나같은 경우는 굳이 세
분하자면 ‘아들욕심-실패’형에 속한다.
막내를 가졌을 때 말은 하지 않아도 벌써 내가 속으로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꿰뚫어보고 있던 아내가 “딸이라도 괜찮겠느냐”고 사전방어망을 치는 질문을 해 왔을 때 나는 “딸이면 어때!” 하고 대꾸했었다. 그것이 지금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내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그 말은 딸은 별로 달갑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아
들 욕심을 내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토록 사랑스러운 딸을 가질 수 있었겠느냐고 지금은 나 자
신을 퍽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그런 사연으로 태어난 막내딸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누구보다도 즐기는 듯 항상 생글생글
웃음을 띄고 귀엽게 자라났고 그런 세월 또한 빨리 지나가서 2000년 6월 어느 날, 고등학교 졸
업날이 닥아왔다.
졸업식장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막내가 졸업생 대표 연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온 관심을 쏟았
다. 스피치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미국에는 불행하게도 불치병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린아이들을 모아 죽기 전에 소원
성취를 시켜주는 ‘Make-Wish Foundation’이 있는데 자기가 그 재단에 사회봉사활동의 일환
으로 나가서 도우면서 만난 7세 된 ‘에릭’이란 소년의 이야기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평소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었던 값비싼 장
난감이나 ‘디즈니월드 여행’ 같은 소원을 얘기하는데 이 ‘에릭’이란 소년은 아이스크림 차
를 동네로 몰고 나가서 공짜로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누어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소원이
었다. 다른 아이들의 소원과는 너무나 달랐고 특별했다.
그는 자라면서 골목길에 아이스크림 차가 와서 특유의 음악을 울리면서 아이들을 불러낼 때도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게도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부모에게 조르지 못하고 오히려 음악소리를 못 들은척 했던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상기하면서 다른 모든 하고 싶은 것을 제치고 그것을 자기의 소원 성취로 정했고 그의 소원대로 어느날 그는 아이스크림 차를 타고 가난한 아이들이 사는 동네로 찾아가 음악을 크게 틀었고 공짜라는 소리를 듣고 구름같이 몰려온 아이들에게 신이 나서 아이스크림을 나누어주는 ‘자기 생애의 가장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불치의 병에 걸려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고 더구나 채 철도 들지 않은 어린애까지도 자기의 소원성취 기회를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을 위해서 썼다는 대목에 가서 스피커는 끝내 목이 메었고, 곧 이어 졸업생도, 학부형과 축하객들도 울음바다가 된 채 기립박수가 한참 이어졌으며 장내는 숙연해졌다.이튿날 일간신문에는 ‘울어버린 졸업식’ 기사가 보도되었고 참석했던 교육감은 자기의 15년 교육감 생활 중 가장 감명적인 스피치였다고 감사와 격려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그 착하디 착한 ‘에릭’은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천사의 날개를 달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그리고 그 날의 스피커는 ‘하바드’대학을 졸업하고 제 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나의 경험으로 볼 때 딸이고 아들이고 낳을 수만 있다면 요즘 젊은이들도 가능한 많이 낳아 역
량대로 잘 길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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