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모국방문의 마지막 날 오후의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면서 그날 오전에 있은 황 우석 교수의 국민에 대한 “사죄” 기자회견을 TV에서 전량 보고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그분을 실시간으로 보는 게 처음이었고 한 시간 가량 진행된 회견은 주의깊게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회견이 끝나고 나서 느낀 감회는 이랬다. 그분은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를 했어야할 분이구나.
학술지에 이미 실렸던 두 논문이 취소되는, 학자로서는 거의 사형선고를 받은 분이 한다고 하는 사죄는, 실제로는 사죄가 아니라 대중관계 개선용 설명회였다. 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부분, 연구결론에 쓴 데이타의 조작에 대해서는 그는 가볍게 넘어갔다. “예, 사실 데이타가 조금 부풀려진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타가 “조금 부풀려진” 것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보면 데이타의 조작으로 그 결론이 난 다음엔 그 학자에 대한 심판은 끝이 난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생된 소중한 학자”였던 그분은 연구의 핵심부문에서는 그렇게 가볍게 넘어갔다. 그 회견을 보고나서 필자는 강정구씨의 어처구니없는 공개발표내용들과 이분의 얘기들, 한국의 관행들이 한꺼번에 연관이 되어지면서 이런 가상들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하게 되었다.
황우석씨가 실제 연구과정에서 더 자세히 자기가 실제 모든 걸 알고 일을 추진하였더라면 어땠을까. 자기는 “큰 틀만 짜고 세세한 부분은 사실 잘 알지 못했다”고 하는 얘기가 하도 충격적이라서 든 생각이었다. 아무리 큰 프로젝트를 책임 맡은 학자라도 그럴 수는 도저히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정구씨 생각이 났다.
사회학 교수로 그도 과학자다. 황교수는 자연과학자이고 강교수는 사회과학자이다. 사회과학에서 실증을 할 때 여러 수준의 실증법이 있다. 여러 연구대상들에게 서베이로 실증할 수도 있고, 통제된 실험장에서 연구대상으로 뽑힌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 하는 실험도 있고, 사회 어느 필드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을 대상으로 실증을 하는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실증은 나라전체를 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6.25가 민족통일전쟁이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강정구씨. 그가 국내 좌파들이 허술한 바탕으로 늘어놓는 이상한 궤변 대신 국제적으로 공인된 사회학 부문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열심이 연구하는 학자다운 학자였다면, 이미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증적으로 실패한 공산주의를 찬양할 수 있었을까.
어떤 (공인된) 실증으로 그의 이론을 방어할 수 있었을까. 그가 배운 지도교수들도 이미 옛날에 버린 이론으로 수 십 년을 국내문제에 그렇게 편협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없었을 것 아닐까.
그리고 필자가 무척 슬퍼하는 관행 얘기 한 가지. 힘들게 열심이 하지 않으면 학점 받기 힘들게 코스를 디자인하고, 숙제 매 강의시간 마다 체크하고, 시험 제대로 내고 채점하는 그런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더라면, 한국에 계속 운동권이 생겼을까. 학창시간 대부분을 ‘투쟁’만하고, 수업시간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도 과목마다 ‘B’ 학점을 받고 제대로 졸업한 운동권이라고 들었다.
교수들마다, 과목마다, 제대로 숙제안하고 시험 제대로 못 보면 ‘F’학점 주고 낙제시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관행 없는 미주에 사는 걸 행복하게 생각해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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