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자신을 위한 일
여성핫라인 유경란 사무총장
15년전 서버브에 위치한 한 한인 식품점에서 어린 두 딸아이와 장을 보고 있던 한 한인여성의 삶은 계산대에서 보게된 작고 귀여운 분홍색 저금통과 함께 인생의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잔돈을 넣어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진 계산대 옆 저금통은 바로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위한 한인 기관 ‘여성핫라인’의 모금통이었다. 간호사로 미국땅에 이민와 두 딸을 키우며 가정주부로 살아가던 이 한인여성은 무언가 끌리는 힘에 10달러에 가까운 잔돈을 모두 저금통에 넣게 된다. 그때를 회상하며 인연이 맞으려고 그랬나보다라고 말하는 이 여성은 바로 현재 여성핫라인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유경란씨다.
그 후 신문 광고에 나온 여성핫라인의 봉사자 훈련 모집을 보고 당장 신청했다는 유씨는 15년간을 여성핫라인과 함께 했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는 동분서주하며 경찰서, 병원, 법원 등을 드나들었다. 파트타임 직원 1명에 불과했던 여성핫라인은 유씨와 함께 올해로 16년째 시카고 한인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 작게는 가정폭력, 성폭력을 당한 여성을 돕는 기관으로 넓게는 소외당하는 피해자들을 돕는 기관으로 성장하고 있다.
내 자신이 너무 좋아서 했습니다. 봉사는 사실 자기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거든요.
파란만장했던 사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5년여전 자녀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이춘임 사건’이란다. 이씨는 미국인과 결혼해 사회로부터 소외된 생활을 하며 함께 나누지 못하고 혼자 고생하다 궁여지책으로 자살을 선택했으나 아이만 사망하고, 자녀를 살해하려 했다는 죄목을 받아 현재 감옥에 가있는 상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인 여성들과 어려움을 나누며 아픔이 줄어들도록 하는 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의 일’ ‘끼어들어서는 안될 일’이라며 건드리려 하지 않는 일들에 귀를 기울여주고 피해자가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바로 여성핫라인의 일입니다.
지난해 초에 벌어진 ‘구은주씨 살해사건’도 여성핫라인의 존재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 중 하나였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가버릴 수 있었던 구씨는 여성핫라인이 준비한 기자회견 등을 통해 미국 주류신문과 한국에까지 전해졌다.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기 위해 밤마다 머리맡에 전화를 두고 자던 때도 있다고 말하며 유씨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4년 전부터 셀폰을 사용하면서 일은 쉬워졌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은 더욱 늘고 있다.
최근 그는 가정폭력 가정의 자녀들이 부모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는 ‘아동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일종의 가정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이 프로그램에 등록된 아이들은 2세나 3세 자원봉사자 언니 오빠들과 함께 박물관도 가고, 에어쇼도 보러가고, 겨울엔 스테이트도 타러 다니면서 웃고 즐기는 법을 배운다. 가정 안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의 역할, 남성의 역할 등을 형과 언니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사연은 물론이고 사무실의 위치마저 비밀에 붙일 정도로 ‘철저한 비밀보장’의 원칙을 고수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유씨는 피해자가 자기 마음의 치유가 완벽하게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치유가 된 사람들은 ‘승리자’입니다. 승리자들은 자신있게 남들에게 자신의 사연을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로 당당해지곤 합니다. 유씨는 그러기 때문에 여성핫라인 공개용 사무실이 매우 필요한 실정이라는 작은 소망을 밝힌다.
여성 및 아동 교육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하기 위해서라도 공개된 주소를 가진 사무실이 필요합니다. 시카고고 좋고 서버브도 좋고, 남는 사무실이나 교회의 한 공간에서 여성핫라인의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공할 독지가를 기다립니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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