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웨체스터)
올해가 개 해인데 개 만큼 사람과 가까운 동물도 없는데 왜 그처럼 전부 부정적, 그리고 비하하는 말로만 쓰였을까. 역설적으로 그만큼 친근해서였을까? 그 중에도 개똥은 제일 비천한 비유로 썼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고 했듯이 흔하고 천한 게 개똥이었는데 그런 개똥을
찾아 헤매던 사내가 있었다.어릴 적, 시골에서 자라다 보니 이맘 때쯤이면 그 추운 아침 어슴프레한 어둠이 채 걷히기도 전, 이른 아침에 흰옷 입은 사람들이 개똥 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가근방 냇가를 이리저리 다니
던 풍경이 눈에 선하다.하도 옛날 일이어서 개똥호미는 기억이 또렷한데 개똥 망태기라 했는지 개똥 소쿠리라 했는지 두 이름 다 귀에는 익는데 아물아물하다.
개똥 망태기, 개똥 소쿠리, 고향처럼 향수가 베어 묻은 말을 들어본 지도 50여년이 훨씬 지났다.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 옛날에는 지금처럼 화학비료가 흔치 않고 겨우내 보리밭에 분전을 해야 이듬해 보리농사를 잘 수확할 수 있었다. 지금은 분전이라는 말은 웬만한 국어사전에도 실
리지 않는 말이 됐지만 옛날에 농가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분전(糞田)이란 뒷간에 물을 채워서 인분을 썩혀서 보리밭에다 비료 주는 일인데 정초부터 웬 개똥같은 소리 한다고 핀잔할런지 모르나 지금 생각으로야 그게 비위생적이고 공해라고도 하겠지만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왔다.우리는 그 자손들인데 귀하게 길러놓으니 저 잘났다고 조상들 험난하게 살아온 길을 흉볼 수 없다.
농사를 짓다보면 보리밭이 좀 많아야지 뒷간 인분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농한기 겨우내 동네사람들은 개똥을 주워다 변소를 채웠다. 서양 격언에 ‘Early Bird Gets Warm”이라는 말이 있듯이 개똥도 남보다 일찍 일어나고 부지런한 사람이 더 많이 거두었다.그 시절에는 집집마다 개 없는 집이 없었는데 개란 놈들은 이상해서 꼭 새벽 일찍 일어나 먼
데까지 가서 볼일을 본다. 그 때는 개들을 방안에 키우는 법은 없었고 대개 부엌 한켠에 개 우리를 만들어 놓으면 제 스스로 알아서 자고 일어나고 했다. 점잖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도 개똥을 입에 담지 않겠다고 개X라고 하던데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실상 개똥은 우리 조상들에게 친근한 말이었다. 개똥참외, 개똥벌레 등등 많다.
옛날에는 더러 귀한 자식 이름을 개똥이라 지었다. 천한 이름을 붙여놓으면 귀신이 잡아가지 않는다고 믿어서 그렇게 했다. 지금도 출세한 사람들 이름 중에 ‘○개동’하는 이름이 있는데 개똥이 애명을 그대로 한자로 호적에 올린 것이다.개똥망태기는 또 요새말로 캐주얼 의상 구실을 할 때도 있었다. 가까운 이웃동네 누구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거나 의논할 일이 있어 잠시 들려야 할 때, 동저고리 바람으로 가기가 그 때
범절로는 좀 결례가 되고, 그렇다고 의관 갖추기는 번거롭고 할 때는 개똥망태기를 어깨에 걸치면 무난했다.그 시대는 농자 천하지대본(農者 天下之大本)이라 양반도 농사를 지었고, 농사에 관계되는 일이
면 다 너그럽게 생각하고 험보지 않았다. 그래서 선비도 개똥망태기를 어깨에 메고 나들이 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 메는 개똥망태기는 개똥이 담긴 냄새나는 망태기는 아니었다. 형식은 개똥 주으러 나왔던 길에 잠깐 들렸네 하는 식이지만 다들 그런 관례에 익숙해서 서로 통
하고 이해를 했다.
나는 어릴 때 미국은 깨끗한 사람들만 사는 천당 근처쯤 되는 줄 알았는데 정작 미국에 와서 개똥 때문에 좀 귀찮은 일을 몇번 겪었다. 아침에 가게에 나와보면 어떤 얌체가 꼭 가게 앞에다 개똥을 버려두고 가버려서 여간 화나지 않았다. 양동이로 물을 떠다가 씻어 내리는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았다. 두번 세 번을 그렇게 해서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나는 아주 간단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배웠다.
하루는 일요일 아침에 집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아마 동네에 사는 사람인 듯한 40세쯤 되어보이는 백인여자가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데 하필이면 우리집 가게 앞에서 개가 볼일을 봤다. 또 귀찮은 일이 생겼구나 하고 보고만 있는데 그 여자는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봉지를 하
나 꺼내더니 꼭 장갑 끼듯이 손에다 씌워서 그 손으로 깨끗이 집어서 다른 손으로 봉지를 뒤집어서 꼭 묶고는 또 다른 봉지 하나를 꺼내서 아주 돌돌 싸서는 그대로 외투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정말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처리하는 과정이 어찌나 민첩하고 자연스럽던지 감탄할
지경이었다.요즘은 개똥 만큼이나 흔한 게 플라스틱 봉지인데 개 데리고 나갈 때 하나 준비해 가면 잘못해서 개똥녀 소리 듣는 것보다 훨씬 현명할 것 같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