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숙(유스앤 패밀리포커스 대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모처럼 시간이 만들어져 친분이 있는 친구들 몇몇이 분식집에
서 만두와 떡볶이 등을 먹으려는데 느닷없이 내가 아는 한 청년이 들어서며 인사를 해서 반갑
고 놀라웠다. 더구나 난데없는 선물꾸러미를 내놓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그를 만났기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는 친구들과 나온 음식을 먹는데 먹는 맛보다는 그
가 그 선물을 주려고 몇 날 며칠을 차에 가지고 다니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상황에 내미는 선물
에 받은 그 감동은 나를 감격하게 만들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여자친구와 식사를 하러온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4명이
먹어치운 음식값까지 살짝 지불하곤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세상에 산타가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질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내내 음식을 먹는 중에 갑자기 나타난 근사한 청년산타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며 신나는
저녁식사를 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그와의 만남의 긴 시간들을 한번 되짚어 보았다. 지금은 서른이 다 된
나이인 어른이지만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털이 보송보송한 미소년같은 틴에이저였다. 유난히
피부가 깨끗하고 눈이 까맣던 그는 뉴욕주 한 교도소 안에서 자신의 한 일에 대한 자책과 깨달
음의 괴로움을 가지고 언제 출소할지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내일과 출소한 후에도 무엇을 어
떻게 해야할지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염려로 고통스러운 그런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지면으로 다할 수는 없지만 8,9년이라는 시간을 그곳에서 수감생활을 하는 그를 면회하면서 그
와 그를 사랑하는 가족들의 아픔의 긴 시간들을 보며 나는 가정에서 한 자녀가 겪는 아픔과 고
통이 온가족을 아픔과 고통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하다는 것과 가족은 정말 내 몸의 한 일부분처
럼 고통에도, 기쁨에도 하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그리던 출감날이 왔지만 출감 후 그에게 기다리는 고통은 또다른 힘겹고 무거운 고
통 뿐이었다. 적당한 직업을 찾는 일과 문화적 충격으로 오는 적응문제도 힘겨운데 설상가상으
로 추방이라는 무서운 명령이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지난 4,5년간
을 변호사를 세워 계속 싸우고 있는 그는 아직도 넘어야 할 가파른 산을 늘 눈앞에 두고 사는
그런 삶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해결되지 않는 어정쩡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잘 가다
듬으며 안정감을 보이며 성실히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그렇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이다.
이제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꿇리지 않고 당당하게 성실한 청년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살고 있는
그의 지난 10여년의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마음을 갖게 했는지… 이를
아는 사람들은 가족과 친한 이들 몇명 외에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의 지난 한 해, 한 해는 수렁과 고통과 절망의 늪에서 한 걸음 빠져나오는 힘겹지만 의미있
고 발전이 있는 엄숙한 삶의 행진이었던 것이다.
내게는 이런 이웃이 많이 있다. 연말을 며칠 앞둔 어느날 “전도사님, 더 이상 콜걸을 연결해주
는 직업으로 많은 돈을 버는 그 직장은 양심에 부끄러워 못하겠어요” 하며 찾아온 23살 여자
청소년은 14살 때 갱과 도벽으로 도저히 사람이 될 것 같지 않았던 그 아이가 철든 어른이 되
어 가정이 너무 어려워 돈 때문에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 직장에 나갔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다 떨쳐버리고 나온 자기를 자랑스레 여겨달라며 내 앞에 나타난 그 아이 또한 한걸음
한걸음 인생의 엄숙한 행진 가운데 있는 그런 아이였다.
새해 둘째날이 되던 날, “전도사님, 저 드디어 검정고시 패스했어요. 그리고 요즘 레슬링 대학
가려고 매일 연습중이예요”라는 전화를 해 와 포커스의 스태프들이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게
한 그 18살의 청소년은 13세 때부터 거리의 다른 갱아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피하게
만들던 그런 골치아픈, 그야말로 대책이 안 서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 아이도 지난 4년간 힘들
고 고통스럽지만 그 진구렁텅이를 딛고 일어서 걸어나오는 인생의 엄숙한 행진을 해왔던 것이
다.
나는 새해에 내게 그리고 인생의 문제와 고통과 아픔 속에 있는 모든 가정들에게 소망을 주고
싶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문제의 고통과 아픔 속에 우리가 주저앉아 있지만 않는다면 우리
의 작고 미약한 한걸음 한걸음을 시도만 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주는
엄숙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대행진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서 그 청년산타처럼, 두 청소년처럼, 더럽고 추한 인생의 누더기옷을 벗어버리고 소망의 날
개를 단 생명의 삶으로의 행진이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의 소식을 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와 함께하는 포커스의 일꾼들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어깨를 곧추 세우고 내일을
향해 아름다운 행진을 함께 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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