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반이면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까지 자질구레한 사건들만 다루는 나의 처지가 55세의 나이로 대법원 판사로 지명되어 상원 법사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있는 새무엘 알리토 연방 공소법원 판사의 경우와 너무 천양지차라서 청문회 실황중계를 아예 안보기로 했었었다. 그러나 심한 감기인지 몸살에 걸려 낮에도 소파에 길게 누웠기가 일쑤였기에 졸면서 깨면서 CNN이나 WETA의 방송을 쳐다보게 되었다.
언감생심의 질투에서 나온 헛소리인지는 몰라도 내가 받은 알리토의 인상은 그가 프린스턴 대학과 예일 법대의 아이비리그 출신의 수재로 너무 심하게 출세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적이 출중해서 연방검사(보)로 뽑혀 활동하던 중 레이건 행정부 시절인 1985년에 법무부 고위직에 이력서를 내면서 그는 자기가 ‘우려하는 프린스턴 동문들’(Concerned Alumni of Princeton: CAP) 조직에 속했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던 모양이다. 문제는 지금은 해체된 CAP가 극우파적인 조직으로서 예를 들면 프린스턴 대학에 소수민족 출신들과 여자학생들이 많이 들어와 학교 질이 떨어졌다는 투의 궤변을 일삼았다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민주당 상원의원의 질문에 답하면서 알리토는 “머리를 아무리 짜내어도 그런 조직에 속했다는 것을 기억 못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보기에는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 35세의 나이로 정부 요직에 응모하는 이력서에 강조한 내용을 기억 못한다면 기억상실 증세가 심한 사람이라 종신직, 더구나 헌법을 해석하는 대법원 판사로 승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욱 심한 것은 CAP에 속했었다는 사실이 민주당 법사위원들의 맹공을 초래할까 두려워 기억을 못한다는 거짓말 답변을 했을 가능성이다. 만약 그랬다면 황우석 씨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경향 때문에 진실성이 결여된 사람이 대법원 판사가 된다는 게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이번 주 월요일과 화요일 두 날 동안의 청문회는 졸립기까지 한 평온스런 수면이었다면 수요일의 것은 폭풍우가 몰아닥친 격이었다. 8명의 민주당 법사위원들이 돌아가며 알리토의 CAP 소속 역사와 15년 동안 공소법원 판사로서의 기록을 미주알고주알 다 파헤치니까 알리토 자신은 물론 알리토 증언석 뒤 첫줄에 앉아있던 그의 부인, 자녀들, 부모, 그리고 제수씨 등의 안색이 변할 정도였다. 그래함 공화당 상원의원이 스펙터 위원장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9명의 공화당 법사위원들이 그리해왔던 것처럼 알리토를 감싸주는 발언을 하는 가운데 “당신이 골방 속의 인종편견주의자입니까?”라는 질문을 하자 알리토 부인은 눈물을 터뜨리면서 청문회장에서 한 시간 동안 나가있는 촌극도 있었다.
법사위 자체는 10-8, 그리고 상원 전체로는 55-45로 공화당이 다수당이기 때문에 인준 자체가 위태로운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예견한다. 물론 가장 큰 쟁점은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란 대법원 판례다. 연방대법원은 (그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헌법상의 프라이버시 개념이 여성들의 낙태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판결함으로써 낙태를 합법화시켰던 바 있다. 그후 약 33년 동안 1년에 백만 건 이상으로 추산되는 낙태가 있었다니까 무려 3,300만 명의 생명이 빛도 못 본 채 죽임을 당했다는 게 낙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공화당 크로신 상원의원의 주장대로 “내가 자동차로 임신부를 치어서 임신부는 살았지만 태아가 죽는 경우 나는 태아 살생으로 처벌을 받지만 어떤 여자가 자기 태아를 낙태로 지우면 처벌을 받지 않는 모순을 어찌 해소할 수 있느냐?”고 알리토에게 질문을 한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부시와 공화당, 그리고 미국 보수진영의 바램은 알리토가 현 대법원 보수파 판사들과 합세해서 ‘로우’ 판례를 번복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그러나 소수민족계와 여성권익을 적극 대변한다는 민주당은 소위 여성의 선택권(Pro-Choice) 지지파와 호흡을 같이 하여 알리토가 그렇게 할까봐 그를 반대하는 것이다.
종교심이 강하다는 알리토는 내심 ‘로우’ 판례를 뒤엎는다는 것이 자기가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신 있게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가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걸려 인준을 못 받을까봐 말을 사리고 있는 듯하다.
좌우간 필자의 천견으로는 일단 지명되었다가 판사 경력이 전무하다는 등의 혹평으로 자진 철회를 했던 해리엇 마이어스 여사가 차라리 더 바람직한 대법원 판사가 되었을성싶다. 우선 대법원이 아이비리그 출신에 연방 공소법원 판사 출신들로만 채워진다면 너무 미국사회와 이질적일 것이다. 마어어스 처럼 이류대학 출신으로 변호사로서 갖가지 민형사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이 좀더 균형잡힌 판단력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헌법에 의하면 대법원 판사가 하급 법원 판사는커녕 변호사일 필요조차 없이 자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전혀 법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느 의미에선 더욱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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